플랫폼 자본주의 시대, 하나의 대안이 된 OTT의 이야기 (2/6)
MUBI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하루에 한 편씩, 총 30편의 영화를 엄선하여 제공하는 큐레이션 모델이다. 이용자는 매일 갱신되는 “오늘의 영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발견할 수 있으며, 각 영화는 최초 공개 후 최대 30일 동안만 스트리밍할 수 있다. 이러한 제한된 상영 기간은 콘텐츠 과잉 시대에 선택의 부담을 줄이고, 마치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는 의도로 설계되었다.
“보고 싶다면 기한 내에 보라”는 식의 시한성은 이용자들에게 영화 감상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플랫폼에 꾸준히 방문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30일 회전 상영 방식을 통해 MUBI는 소수의 작품을 큐레이션하여 깊이 있게 소개하는 전통을 구축했다.
예를 들어 특정 감독 특별전,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고전 복원 상영, 국가별 영화 주간 등 테마 기획전 형태로 30편을 구성함으로써, 단순한 나열이 아닌 맥락 있는 감상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는 넷플릭스 등의 “무제한 카탈로그” 모델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서, MUBI만의 브랜드를 형성하였다.
LA타임즈 등 업계 평가는 “MUBI는 심지어 크라이테리온 채널마저도 대중적이라고 느끼는 골수 영화팬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선별 기준의 준엄함을 특징으로 들고 있다. 다시 말해 MUBI의 큐레이션은 작품성, 예술적 실험성, 문화적 다양성에 가치를 두며, “적은 수의 보석 같은 영화”를 발굴해 낸다.
한편, 초기에는 30편의 상영작만 제공되고 기간이 만료되면 내려가는 구조였으나, 2020년부터 “라이브러리” 섹션이 도입되어 과거에 상영되었던 다수의 작품들을 지속 제공하기 시작했다. 라이브러리에는 그간 MUBI가 큐레이션했던 수백 편의 영화 아카이브가 축적되어 있으며, 현재 대부분의 작품은 30일 기간 종료 후에도 권리가 허용되는 한 라이브러리에 남아 지속 감상이 가능하다. 이로써 이용자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30편 외에도 원하는 때에 광범위한 지난 큐레이션 작품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이브러리 도입은 “엄선된 메뉴”에 익숙한 기존 이용자뿐 아니라, 스스로 탐색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용자층까지 포용하려는 전략 변화로 풀이된다.
현재 MUBI 라이브러리에는 고다르, 베리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고전부터 세계 각국의 최신 독립영화, MUBI 자체 배급작 등 폭넓은 작품이 구비되어 있다. 다만 모든 작품이 영구 제공되는 것은 아니라서, 지역별 판권 조건에 따라 일부 영화는 일정 기간 후 카탈로그에서 빠지기도 한다.
MUBI는 온라인 스트리밍에 머무르지 않고 극장 체험을 결합한 독특한 서비스 모델 “MUBI GO”를 운영 중이다. 2018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MUBI GO는 유료 회원에게 매주 한 편의 극장 영화 관람권(무료 티켓)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MUBI 큐레이터들이 그 주에 극장에서 개봉하는 신작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영화 한 편을 선정하면, 회원들은 제휴된 로컬 극장에서 해당 영화를 추가 비용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런던에서는 MUBI가 주간 추천작으로 지목한 독립·예술영화를 BFI Southbank, Picturehouse 등의 제휴 상영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 관람을 스트리밍 밖 현실 극장으로 확대함으로써, OTT 이용자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시도로 평가받는다. 현재 MUBI GO는 영국을 비롯해 미국 뉴욕과 LA, 인도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향후 다른 대도시로도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MUBI는 MoviePass 등 과거 무제한 관람권 모델과 달리 엄선된 1편을 제한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지속 가능성을 확보했다. 또한 주류 멀티플렉스 체인보다 독립 예술영화관을 주로 제휴하여, 관객들이 동네의 소규모 상영관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MUBI GO 이용자의 약 80%가 44세 이하의 비교적 젊은 층으로 집계되어,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위주였던 예술영화관에 새로운 청년 관객을 유입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이러한 노력은 “스트리밍 vs 극장”의 대립 구도 속에서 스트리밍 플랫폼이 오히려 극장 관객 저변을 확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는다. 영화 배급 담당자 메이슨 웰즈는 “마케팅 예산이 적어 관객이 몰랐을 뛰어난 영화들을 우리의 큐레이션을 신뢰하는 회원들에게 극장에서 보게 해 준다”며 MUBI GO의 의의를 설명했다.
MUBI는 영화 비평과 담론 형성을 플랫폼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단순히 영화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전문적인 영화저널 ‘Notebook’을 통해 이용자들이 영화예술을 더 깊게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Notebook은 MUBI 웹사이트 내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영화 매거진으로, 전 세계 유수 필자들의 기고를 통해 영화 리뷰, 감독 인터뷰, 영화산업 동향, 영화제 리포트 등을 매일 발행한다. 2008년 서비스 초기부터 존재했던 Notebook은 MUBI의 큐레이션 철학을 뒷받침하는 비평적 맥락을 제공해 왔으며, 플랫폼의 정체성 형성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이용자들은 Notebook 기사를 자유롭게 읽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나누며,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이러한 비평과 토론의 장은 MUBI가 단순 스트리밍 사업자가 아닌 “영화 문화 플랫폼”으로 인식되게 하는 요인이다.
2021년에는 온라인을 넘어 반년간의 인쇄 잡지 《Notebook Magazine》도 창간했다. Notebook Magazine은 MUBI로부터 편집상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문화지로서, 매호 다양한 주제의 영화 에세이, 사진, 예술적 레이아웃을 담아 한정 발행된다. 구독 서비스나 전 세계 일부 서점에서 별도 구매를 통해 입수할 수 있으며, 영어로만 출간된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매체를 발행하는 이 시도는 영화예술을 소장하고 음미하는 문화를 북돋우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크리에이티브 리뷰 등은 “MUBI의 Notebook 잡지는 영화에 대한 인쇄 매체의 경이로움을 되살리는 축제”라고 호평했다.
Notebook의 콘텐츠들은 이용자들에게 맥락 제공과 교육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MUBI의 큐레이션된 영화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감상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MUBI가 이란 영화 특별전을 편성하면 Notebook에서 관련 감독의 인터뷰와 이란 영화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글을 동시에 제공하는 식이다. 이는 비평과 시장을 연결하는 MUBI만의 구조로, 콘텐츠와 해설이 결합된 종합적 이용자 경험을 창출한다.
결과적으로 MUBI 플랫폼에서는 “영화 감상 – 비평 읽기 – 커뮤니티 토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적 영화문화 소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략은 이용자 충성도를 높이고, 플랫폼을 하나의 영화 동호회이자 아카이브처럼 느끼게 만들어 타 경쟁사와 차별화를 이끌어낸다.(계속)
*글의 내용에 일부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승환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시장과 독립․예술영화, 글로벌 영화시장에 대해 질문하고 글을 씁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과거 글들은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