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외치다

by 신혜정

누군가 이어폰 없이 동영상을 보고 있나 보다. 이렇게 큰 소리로 지하철에서 소음을 유발하다니 배려가 없어도 너무 없다. 주변의 누군가가 장본인에게 이야기를 해 줄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인지 소음의 출처를 파악해 보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소음을 잠재우려 하지 않는 듯한 이 분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소음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이제야 조용해 지나 싶더니 이번에는 더 크고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와 객차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댔다.

목소리의 정체는 20대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날카롭고 격앙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려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장식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사건 사고들을 많이 본 폐해였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여러 가지 공포스런 시나리오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객차 안의 누구도 성급히 일어나 내리려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더 고요히 객차를 장악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백팩을 꼭 끌어안고 자신을 망상 환자라고 소개했다.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치료해 주겠노라 이야기하며 응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아지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자신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단다. 지나치게 커다란 목소리와 날이 선 듯한 뾰족함으로 인해 그녀의 긴장이 느껴졌다. 떨리고 긴장되지만 앞칸에서도 이야기했고 다음 칸으로 이동해서도 계속 말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이 행위를 그만두려는 자신을 다그치는 목소리 같았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던 나도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막바지에 이르자 그녀의 목소리는 처연하기까지 했다. 몇 분간의 짧은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박수를 쳤다. 나는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을 뻔했다. 응원하겠다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서 날 선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음 칸으로 가고 이미 들어 익숙한 목소리가 그곳에서 보란 듯이 또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용기가 놀랍기도 했지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마음에 더 놀랐다. 마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면식도 없는 그녀에게 힘껏 박수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긴장되고 어색했던 공기가 사람들의 박수로 인해 일순간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눈을 맞춰 뚫어져라 본다든지, 불쾌함을 표시한다든지, 함부로 손을 잡으며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의 박수에는 자신만의 응원과 위로가 담겨 있는 듯했다. 섣부른 위로나 응원이 때로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기에 지하철 안 사람들의 행동이 더 뭉클했다. 걱정이라는 말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거나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사람 사이의 조심스러운 터치와 다가섬은 그래서 더 귀하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따스함을 믿고 싶다. 옆집 사람의 얼굴도 모르고 누군가가 내미는 음료수나 사탕을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누군가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 심폐소생술을 함께 하고, 또 누군가는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기도 한다. 다소 두렵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내 안에 있는 따스함을 꺼내어 더 큰 온기로 불려 나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망상 환자라던 그녀는 오늘도 지하철을 탔을까? 이 칸 저 칸을 다니며 오늘도 사람들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이 둘러친 벽을 깨부수고 있을까? 무엇보다 오늘의 그녀는 어제보다 더 나아졌을까? 우리가 함께 친 박수가 그녀에게 진심어린 응원이 되길 바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홀로 방안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길 원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데 마을이 필요하다던 옛말처럼 그녀의 병을 낫게 하는데 불특정 다수의 지하철 인파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을 가득 안고 객차 안을 데운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수많은 우리들 옆에 앉아 함께 박수치고 있으면 좋겠다. 홀로 서서 가지 않고 우리와 뒤섞여, 받았던 따사로움을 돌려주며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날 받았던 수많은 박수의 힘을 믿고 그녀가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넨 다정함이 우리 서로를 살게 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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