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완성시킨 소크라테스의 진리
'변명'이란 단어가 호기심을 끌었다. 서양 철학에서 단연 맨 처음 거론되는 인물이 소크라테스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직접적인 말을 남기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준법정신이 투철했음에서 기인할 정도로 그의 죽음 또한 드라마틱 했다.
표지에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독배를 앞에 두고도 여전히 힘차게 무언가 설파하고 있는 그의 자신감은 복근에서 나올까? 일흔이 넘은 나이임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근육량이 저리 많진 않았겠지만 죽음 앞에 당당한 그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한 다비드의 찬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의 주변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거나 차마 보지 못해 고개를 돌리고 벽 뒤로 숨는 제자들의 슬픔을 통해 그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권력이나 정치에 뜻한 바 없이 그저 철학만을 설파한 그에게 내려진 가혹한 형벌 앞에 그는 어떤 변명거리가 있었을지 궁금하고 조급해졌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법정에서의 자기 변론 내용인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시작으로 그를 포함해 그를 둘러싼 이들의 대화다. 대화 내용을 플라톤이 4가지 이야기로 묶은 내용이다.
내용은 그가 있던 감옥의 상황이 생생히 그려질 만큼 직접적인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읽기 편하지만 일정 철학에 대해 논박하는 내용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내가 무지하다는 걸 아니 나도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만일 당신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선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p40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판단 기준이 '쓸모'라니 참 씁쓸하다. 그의 준법정신이나 도덕적 의무 같은 걸 보여주긴 하지만 사실 그 법을 지키는 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집행자의 도덕적 판단 기준으로 하는 게 과연 도덕적이고 준법일까 싶다. 집행자의 법률적 신념이나 도덕적 해이는 누가 판단할까? 현재 대한민국 사법부도 그러지 않나?
물론 그가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정의롭다는 걸 충분히 알지만 법정에서 자신에게 '사람들의 무지를 깨닫게 하라'라는 신탁을 빙자(딱히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변론은 신념을 넘어 자만에 가깝게 느껴져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만큼 재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하게 말하면 죽음을 자초했달까.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이미 독배를 마신 이후 그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제자 에케크라시스가 파이돈을 만나 그 과정을 묻는 내용이다. 이에 파이돈이 그때의 장면을 회상하는데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나눈 이야기는 철학자가 아닌 내가 이해한다는 건 솔직히 어렵다. 그저 그들의 대화는 텍스트일 뿐이다.
특히 케베스와의 대화식 논증, 상반된 것으로부터의 진리를 밝히는 내용, 삶과 죽음을 통한 산자의 정신과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모르게 좀 비어 보이는 논증이랄까. 딱히 철학을 알지 못하는 이유겠지만 반박을 하고 싶지만 딱히 풀어낼 수 없는 답답함이 좀 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와의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어차피 죽음을 앞둔 마당에 철학 마당 한판 거하게 펼쳐보자는 개념으로 펼쳐지는 철학적 논증은 분명 개인적으로 어려워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내게는 아주 긴 호흡으로 일어야 할 책이다. 하지만 철학에, 소크라테스의 논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