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는 무게​

결코 가볍지 않은.

by 암시랑

"잘 먹고 잘 살아라! 퉤! 퉤!"


누가 그랬다. 우리 민족은 참 인간적이라고. 정말 꼴두 보기 싫은 인간과 의절할 때조차도 그 인간의 잘됨을 빌어주는 민족이라고. 그 말이 사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한 부류의 인간들을 만나면서 드는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잘됨을 빌어주는 건 고사하고 그냥 침만 뱉어주고 싶달까.


나는 요즘 복지관에서 관내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국에 경사로 설치 지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어 제작업체 담당자와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국들을 실측을 하고 설치하면서 여러 약사들을 만난다.


입구에 턱이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모 기업의 지원으로 복지관에서 경사로 설치를 해주고 있다는 취지를 설명할 때는 '공짜'라고 해도 설치하든지 말든지 시큰둥해한다. 그런데 막상 입구에 삐까번쩍하게 설치된 경사로를 보면 약사들 열이면 열 모두 입이 귀에 걸린다.


그런데 가만 보면 사실 경사로가 없어 그동안 이용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의 불편이 해소된 일에 흡족하는 게 아니라 소위 말해 바싸고 보기 좋은 공짜 경사로가 좋은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설치하고 난 후에는 이왕이면 넓고 크게 할 것 그랬다고 아쉬워한다. 밉상 그런 밉상이 없다.


또 어떤 인간은 '인도가 좁고 턱이 높아 설치를 할 수 없다'라고 설명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설치를 요구한다. 심지어 휠체어가 뒤집힐 수 있다고 하는데도 누구는 해주고 누구는 안 해주냐고 짜증을 있는 대로 내는 인간도 있다.


"여기는 도로 경계석이 높아서 설치를 해도 휠체어가 이용할 수 없어요."

"들어 올리면 되지 않아요? 저기 옆에 약국도 비슷한데 해주고 왜 우린 안 해줘요? 무조건 해주세요!"


평소 아파도 쉽게 이용하지 못하던 장애인이나 노인, 유모차 등 불편함을 겪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다가 설치가 안 된다고 하니 "우리 약국은 장애인도 많이 오고 어르신도 많이 오신다"라고 하며 꼭 해달라고 뗑깡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땡볕에 경사로 설치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피로회복제 하나 건네지 않는 인간들의 눈에는 그저 삐까번쩍한 경사로만 보일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장애인에게 정말 중요한 권리 중에 하나가 바로 이동권이다. 턱이 있어, 계단이 있어,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가 있음에도 있어도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은 사회참여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에 대한 권리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접근권이다. 어찌어찌 이동은 했지만 턱이나 계단에 막혀 아예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면 그들에겐 그림에 떡이 아닌가.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장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갖다 주면 되지요."


비가 오고 눈이 오면 밖에서 비를 맞고 눈을 감상해야 할까? 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걸까. 턱이 없다면 당연히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할까?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함이 옳지 않겠는가.


인식의 문제다. 그들이 보는 건 장애뿐이지 사람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거나 스틱을 짚었거나 보청기, 인공와우, 의족이나 의수 혹은 기타 그밖에 자신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장애만 보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사람처럼 여긴다.


물론 모든 약사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친절하게 고맙다고 화답하거나 설치하는 과정을 지켜 봐 주며 땀을 흘리는 작업자에게 시원한 음료를 건네는 약사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약국을 돌며 설명하고 설치하면서 만난 많은 약사들은 설치를 하거나 말거나 나와 보지도 않고 기존의 낡은 설치물까지 제거해달라고 당연하게 요구한다. 먹고살만하고 배울만큼 배운 약사들의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인격은 찾으래야 찾을 수 없어 아쉬워도 너무 아쉽다.




공짜, 누군들 싫어하겠냐만은 공공의 목적이 있는 공짜는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 누군가의 불편을 해소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관리하고 또 약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겼으면 한다.


공짜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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