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회복지사인가

인권 실천가로서의 사회복지사

by 암시랑

사회복지,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다. 인권은 그동안 복지관을 통해 세미나나 교육 등을 통해 학문적 접근을 해왔다. 복지관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과 권익옹호 업무를 맡고 있지만 장애인을 포함한 이용자의 인권이나 권익옹호를 위해 전문적인 인권 옹호적 업무 영역은 아니다. 그저 이름만.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만 있다 보니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장애인이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인권’이라는 같은 곳을 보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경계에 서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21년을 비장애인으로 살았다. 그 후에는 장애인으로 29년을 살고 있다.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 저렇게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있을까” 싶은 날 선 장애인의 반응에서 그들의 인권은 종종 폄하되거나 무시된다.


또 장애인의 입장에서 비장애인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더 자주 있다. 이런 걸 보면 분명 대한민국에서의 장애인 인권은 분명 갈 길이 멀다. 어쨌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거나 장애인주차구역 같은 사회적 지원을 탐탁지 않게 치부하거나 “부럽다”라고 표현하는 비장애인을 볼 때 말이다. 그럴 땐 “부러우면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무심히 뇌까리던 조제의 강력한 한방을 날리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조체처럼 따귀를 맞고 싶지는 않으니까.


대학원에서 인권 수업을 듣고 인권에 대한 스펙트럼이 장애 부분에서 소수자의 부분까지 좀 더 넓어진 점이 있다. 특히 성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부분은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사실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았는데 좀 더 공감의 폭이 생겼달까.


그런데 솔직히 실천가나 활동가의 영역은 역시나 어렵다. 예를 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애인 편의 시설에 대한 민원을 줄기차게 넣고 다니는 장애인이 있다. 당장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님에도 ‘하나 걸렸다’라는 식의 막무가내 식의 고성과 욕설로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 내지는 무시했다고 버티면서 당장 시정을 요구한다.


이런 그를 당사자인 입장에서 봐도 납득이 안 된다. 대화는커녕 일방적인 고성과 욕설이 있을 뿐이다. 그는 몇 시간이고 버티면서 복지관을 온통 휘젓는다. 과연 그가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일까? 그를 접한 비장애인은 장애인은 역시 무지하고 자신이 원하는 요구 사항만 외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결코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을 이해 목소리를 내는 인권 운동가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고성과 욕설을 할 만큼의 용기(이걸 용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는 없다. 다만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취업을 걱정하고 그의 자립을 위해 애쓰고 사회 구성원으로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면서 그들과 함께 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는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국가나 사회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하지만 꼭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조용한 움직임으로 당사자와 함께 물결을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쇠사슬을 목에 걸고 머리띠를 두르고 삭발을 감수하면서 투쟁을 하는 것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일반화의 오류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정책이나 제도 등 미비한 것들을 만들어 가는 활동가도 필요하지만 사회에서 다수자들과 소수자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실천가 역시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는 활동가보다는 실천가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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