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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율이가 내일 토요일인데 안 놀러 오냐고 물어보래
- 하율이 옆에 있어?
- 아니, 나 혼자. 전해달래서 카톡으로 전해주는 거임
나는 다연 누나가 빌려준 태블릿PC로 누나와 톡을 주고받으면서 하율이를 핑계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몰래 산타 봉사 이후로도 다연 누나는 하율이와 놀아준다는 구실로 곧잘 우리 집을 방문했다. 형제자매가 없는 다연 누나는 하율이가 마치 귀여운 친동생처럼 느껴져서 자꾸 마음이 간다고 했다. 붙임성 좋은 하율이는 몇 번 본 적 없던 다연 누나를 친언니처럼 잘 따랐다. 할머니가 외출하고 없을 땐 누나는 나와 하율이에게 종종 우리 집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주기도 했다. 어린 손주들을 잘 보살펴주는 마음씨 착한 다연 누나를 할머니도 좋아했고, 그렇게 한두 계절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과 다연 누나는 가까워졌다.
- 너 그럼 톡 하려고 또 창동역 나온 거야?
- 응 우리 집은 와이파이 안 되잖아
우리 가족이 사는 반지하 월세 집은 창동역에서 멀지 않은 골목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다연 누나와 카톡을 주고받기 위해선 공용와이파이가 잡히는 카페 앞이나 지하철역에 가야만 했다. 형편상 나와 하율이는 핸드폰을 가져보지 못했고, 집에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셋톱박스는 고사하고 할머니 방에서 간신히 텔레비전 유선방송만 시청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당시 다연 누나가 빌려준 그 중고 태블릿PC가 우리 집에서 가장 최신의 물건이었을 것이다.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창동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와이파이가 잘 잡히는 역사 한 구역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만 해도 우리 초등학교엔 무선인터넷이 설치되기 전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낮의 역사 건물로 들어가 전날 다연 누나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답장을 하거나, 때론 특별한 이유 없이 누나에게 카톡을 보내곤 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다연 누나는 수업이 끝난 오후 네 시 무렵이면 거의 예외 없이 답장을 보내주었다. 누나의 답이 늦을 땐 태블릿PC로 게임을 하거나, 미리 깔아놓은 웹툰 그리기 어플로 한참 동안 그림을 그렸다. 누나의 손때가 묻은 태블릿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을 나는 좋아했다.
- 또 그림 그리면서 기다림?
- 응
- 맨날 그렇게 기다리면 부담되잖아.^^;
- 만화 그리기 연습하면서 걍 하는 거야.
그냥이라고 썼지만, 사실 그렇게 다연 누나와 톡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다연 누나는 우리 가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고, 나 역시 다연 누나를 친한 누나 이상으로 따르고 좋아하게 됐다. 다연 누나가 꼭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을 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다연 누나와 한두 계절 이야길 나누면서 누나 역시 오래전부터 엄마가 곁에 없다는 걸 알았다.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끼리 사이가 나빠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고, 누나가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사실까지만 전해 들었다. 우리 집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부모님과 떨어진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다연 누나는 나와 하율이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 나 내일 하율이 보러 못 갈 듯
- 왜?
- 갈 데가 있어
- 어디 가는데?
다연 누나답지 않게 대답을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연 누나는 내일 인천 외가댁에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근데 왜 이리 뜸 들여 답을 하냐고 재차 물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게 아니라 엄마를 보러 가는 거라고 했다. 다연 누나는 엄마를 삼 년 전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 봉안해 모셨고, 다음 주가 엄마가 돌아가신 지 삼 주기가 되는 주라고,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미리 엄마를 보러 간다고 알려줬다.
- 낼 몇 시 출발?
- 창동역에서 아홉 시쯤~
- 나도 따라가도 돼?
- 뭐?
다연 누나는 제법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그렇다고 따로 나를 말리는 눈치도 아니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교회예배 때문에 할머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다연 누나는 전철을 타고 가더라도 두 시간은 넘게 걸린다고 했다. 나는 상관없다고, 전부터 누나가 초등학생 때까지 살았다는 인천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고 카톡에 썼다. 누나는 ‘네가 왜 내가 살던 곳에 가보고 싶을까?’라고 물으면서도, 내일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다고, 시간 맞춰 역에 나오라고 내게 일러뒀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다연 누나 엄마를 기억하기 위해 가는 길. 신이 나면 안 되는데, 괜스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설레어오는 건 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