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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마지막 주 수요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 창동역 역사 안에 있는 나만의 와이파이존을 찾았다. 다연 누나는 내가 메일을 보낸 지 이틀 만에 답장을 보내왔다. 오늘만큼은 카톡을 보내기보다 다연 누나의 편지를 읽으며, 모처럼 들뜬 마음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반가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연 누나가 편지 말미에 언급한 ‘박상민’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한 달 만에 사귄 절친이라고? 나처럼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형이라고? 대학진학 때문에 함께 학원 문제도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다연 누나의 메일을 두세 번 연거푸 읽어보았지만, 상민이라는 이름이 언급된 이후엔 다른 내용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뭔가 질투심 비슷한 뜨거운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고나 할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알 수 없었다. 다연 누나도 당연히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그중 남자들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누나의 친구 관계 때문에 흥분하고 질투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자꾸 그 ‘절친’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와는 일 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 친한 사이가 됐는데, 겨우 한 달 만에 절친이라니. 대체 누굴까. 키도 크고 잘 생겼지? 웹툰 작가가 꿈이라니까 그림도 당연히 초등학생인 나보다 잘 그리겠지?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 할수록 마음 상태는 엉망이 됐다. 점점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으로 빠져 들었다.
도저히 게임이나 만화그리기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답장을 보내야 하나? 뭐라고 답장을 써야 할까. 그냥 카톡으로 방문 날짜만 알려야 할까. 아니 새로운 친구들도 많아졌는데, 괜히 내가 다연 누나의 주말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벚꽃 피는 때 맞춰 오라는 추신의 말이 스크롤해 올라간 화면 끝에서 반짝였다. ‘나도 아직 꽃 핀 모습은 못 봤지만 상민이가 추천한 좋은 산책로가 있거든.’이라고 쓴 마지막 문장도. 그렇다면 그 형과 이미 꽃이 피기 전 그 길을 함께 걸어갔다는 말일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나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벚꽃 피는 시기’를 쳐보았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벚꽃 개화 시기를 정리한 블로그가 여러 개 검색됐다. 그중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블로그 하나를 들어가 봤다. 기상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27일 제주 서귀포에서 출발하는 대한민국의 벚꽃 개화 시기는 서울은 4월 11일, 인천이 가장 나중인 4월 15일이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태블릿PC에 있는 캘린더를 확인했다. 벚꽃 개화 시기와 겹치는 주말은 4월 12일 토요일이 적당했다. 경험상 한 주만 지나더라도 벚꽃은 모두 금세 져 내리리라. 다른 모든 복잡한 생각은 제쳐두고, 벚꽃 길을 다연 누나와 함께 걷는 장면만을 상상해 봤다. 때론 상상만으로도 아름다워지는 풍경이 있었다. 그걸 나중에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어떨까. 그것만으로도 벌써 의미 있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나는 카톡 앱을 열어 다연 누나에게 별다른 말없이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4월 12일 토요일 오후 1시까지 안산역으로 갈게.’라고만 썼다. 메일을 잘 받았다는 말도, 만날 날이 기대된다는 말도 쓰지 않았다. 다연 누나의 학교 수업이 다 끝나지 않았을 테니 곧바로 답을 주진 않으리라. 보낸 메시지 옆 지워지지 않는 노란 숫자 ‘1’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태블릿PC를 끄고 조용히 창동역을 빠져나왔다.
사월 중순의 화창한 토요일 봄날, 다연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전에 인천을 가던 때와는 달리 멀고 길게만 느껴졌다. 오전 열 시 반쯤 창동역에서 안산으로 향하는 4호선 열차를 타고서 나는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서 갔다. 실외로 달리던 열차는 곧 지하로 접어들어 열차 밖은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해졌다. 동대문역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 비로소 좌석이 비어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가야 했다.
가방에서 태블릿PC와 이어폰을 꺼냈다. 할머니 핸드폰의 유선 이어폰은 어느 순간부터 내 차지가 됐다. 종종 그렇게 태블릿PC로 미리 다운로드한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러나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 무리였다. 대신 다운로드함에 들어가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초속 5센티미터』를 재생했다. 일전에 내 카톡을 받은 다연 누나가 먼 길 오는 동안 영화 보면서 오라고, 이메일로 보내준 한 시간 분량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사실 난 그 메일을 받자마자 창동역에서 즉시 다운로드한 후 그날 밤 바로 집에서 영화를 보았다. 다연 누나의 메일 속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야. 웹툰 작가를 꿈꾸는 네가 언젠가 이런 애니메이션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남자주인공이 중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사랑 이야기가 총 삼 부에 걸쳐 나눠져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첫 번째인 「벚꽃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중학교 시절 첫사랑 이야기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내 또래 인물들이 펼치는 아련하고 절제된 느낌의 사랑과 순수함에 공감이 갔고, 여운 또한 오래 남았다.
영화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니, 이사 간 다연 누나를 찾아가는 지금 내 상황과 비슷하기도 했다. 단짝이었던 남녀주인공이 전학 문제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기, 편지만을 주고받다가 남자주인공인 타카키가 여자주인공인 아카리가 이사 간 시골 마을로 어렵게 방문 계획을 세운다. 열차를 타고서도 몇 번의 환승을 거쳐 세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 중학교 소년에겐 큰 모험이었으리라. 더군다나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날씨는 험상궂게 바뀌고 폭설이 내려 열차는 계속 연착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일곱 시간 만에 목적지인 시골역에 간신히 도착한 타카키. 그는 대합실 난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자신을 끝까지 기다린 아카리를 기적처럼 만난다. 어렵사리 만난 그들은 그간의 얘기를 나누고 늦은 저녁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짧지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특별한 줄거리는 아니었지만 그 짧은 사랑 이야기 속 눈 내리던 애니메이션의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다연 누나는 왜 내게 이 영화를 추천했을까. 다연 누나도 주인공이 열차를 타고 첫사랑을 만나러 간다는 첫 번째 이야기를 왠지 나처럼 가장 좋아할 거란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초속 5센티미터』일까. 다시 재생해 보니 제1화 「벚꽃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래.”
“응, 뭐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말야.”
“아카리는 그런 걸 잘 알더라.”
“왠지 꼭 눈 같지 않니?”
영화는 그런 대사가 이어지며 자연스레 봄의 풍경에서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으로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도심 사이를 흩날리고 있는 벚꽃들이 마치 하얀 눈송이 같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4호선 열차는 어느덧 지상으로 올라와 한강 위 동작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파란 하늘색의 트러스 사이로 한강공원 벚나무들의 꽃잎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모습이 멀리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왜 그처럼 화사한 벚꽃들을 언제나 쓸쓸히 바라봤을까. 선천적인 슬픔인가. 어렸을 때 외롭게 자란 환경 때문인가. 하율이와 다연 누나도 사월의 벚나무를 바라볼 때면 나와 비슷한 감정이 드는지 궁금했다.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눈 깜짝할 새 지곤 했던 벚꽃들. 펑펑 쏟아지다 손바닥에 닿으면 금세 녹아 사라지는 흰 눈송이처럼. 그랬다. 내게 아름다움을 선물하던 모든 것들이. 기쁨들이. 행복들이.
태블릿PC의 「벚꽃 이야기」는 어느덧 다음과 같은 타카키의 내레이션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영원이나 마음이나 영혼 같은 게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3년 동안 살아온 전부를 서로 나눠 가진 듯했고, 그다음 순간,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아카리의 그 온기를, 그 영혼을, 어떻게 다루면 될지, 어디로 가져가면 될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 두 주인공이 마을의 오래된 벚나무 아래서 수줍은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내레이션은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내 가슴이 무척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헐벗은 나무였지만 눈이 내리고 있었기에, 그 순간 눈송이들은 마치 그 벚나무의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풍성한 꽃잎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함께할 일은 없을 거라는 걸 분명하게 깨달았다. 우리 앞에는 아직 너무나 거대한 인생이, 아득하게 긴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가로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를 붙들었던 불안은 이윽고 스르르 녹고, 다음엔 아카리의 부드러운 입술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열차를 타고 돌아가는 타카키와, 그걸 바라보며 헤어지는 아카리의 뒷모습. 영화의 제1화는 그렇게 끝났다. ‘아카리를 지킬 힘이 있으면 좋겠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그 생각만 하면서 나는 마냥 계속해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라는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 역시 조금 더 나이를 먹은 고등학생처럼, 혹은 다 큰 어른처럼 뭔가를 지킬 힘이 있기를 원했다.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기 시작하는 창밖의 서울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