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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나는 조금씩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직 수심이 깊지는 않았는지 바닷물 속은 선명한 햇빛이 들어와 투명한 파랑으로 출렁였다. 천천히 눈을 떠 바닷속을 둘러보았다. 바닷물의 수압으로 눈이 불편할 만했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시선이 더 탁 트인 느낌이 들었고, 호흡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내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 조금씩 바다 밑으로 잠기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작은 물고기 떼가 내 몸을 감싸며 지나갔다. 이름 모를 커다란 물고기가 바로 눈앞을 흘러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자각했다.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중에도 놓지 않는 손. 내 손을 붙잡은 또 하나의 손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엄마의 겁먹은 얼굴이 있었다. 일곱 살 적 나를 두고 떠나간 엄마가, 나와 하율을 두고 다른 삶을 찾아 간, 울상이 된 어느 미운 얼굴이.
엄마는 발버둥 치지도 못한 채 물에 잠겨 나와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잡은 이가 엄마임을 알고 깜짝 놀랐을까. 바다가 깊어질수록 햇빛이 약해져 주변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천천히 바닷속을 유영하듯 가라앉던 나는 문득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꿈일까. 아니야, 꿈이 아닐지도 몰라. 나는 어떡해야 할까. 미운 엄마더라도 어쨌든 함께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엄마를 붙잡고 있는 손에 더욱 바짝 힘을 주었다.
“겁먹지 마, 엄마. 내가 구해줄게.” 입을 뻐끔거리며 말했지만, 바닷물에 막혀 그 말은 내 귀에도 닿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내가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다시 위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분명 열세 살인 나보다 어른인 엄마의 키가 더 크고 몸무게도 무거웠을 텐데. 대체 어디서 내게 그런 힘이 솟아난 걸까.
내가 몸부림칠수록 물살은 더욱 거세져 엄마와 나를 바닥으로 다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를 악문 채 햇빛 가득한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손아귀의 힘이 풀려왔다. 그러나 엄마를 잡은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왜였을까. 엄마는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던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르다니? 어떻게 바닷속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이건 역시 꿈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나는 그만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손을 놓치자마자 엄마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아득한 바다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엄마의 귀에도, 내 귀에도 닿지 못했다.
어? 그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깊은 바닷속으로 떨어지던 엄마 얼굴이 점점 어려지더니 고등학교 시절의 엄마가 되었다.
아니다. 그건 엄마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을 감은 채 바닷속으로 떨어지던 그 얼굴은 다연 누나였다. 그리운 다연 누나의 얼굴이 점점 내 손을 벗어나 아득한 어둠 속에 잠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