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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Oct 08. 2024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15

 15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그날 오후도 나는 여전히 창동역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아 태블릿PC로 다연 누나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 오늘 수학여행 가는 날이지?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즐겁게 놀다 와~     


 메시지 옆 노란 숫자 ‘1’을 가만히 지켜봤다.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제주도로 가는 중일지도 몰랐다. 배 안에서는 무선인터넷이 되지 않는 것일까.      

      

 - 누나의 첫 작품은 잘 읽고 있어. 생각보다 내용이 길던데. 결말은 완성 못했다고 했지? 나랑 하율이도 나오니까 어떻게 끝날지 나도 궁금하다.    


 두 번째 메시지까지 보내고 카톡 앱을 닫았다. 다연 누나가 메시지를 보게 된다면 뒤늦게라도 답장을 주겠거니 생각했다. 이번에는 웹툰 그리기 앱을 켜서 태블릿펜으로 만화그리기 연습을 했다.

 다연 누나는 우리 얘기를 다룬 내 짧은 웹툰에 자극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떠올려보다가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연 누나가 쓴 첫 소설을 내가 다시 웹툰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둘만의 특별한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나 역시 아직 결론짓지 못한 다연 누나의 소설 결말에 뭔가 큰 보탬이 돼야 하지 않나. 아직 누나의 소설을 다 읽진 못했지만, 얼른 다 읽고 나서 그 결말을 함께 구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창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원이 끝난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인원이 많지 않아서 하나의 골대를 절반으로 나눠서 서로의 골문에 공을 넣는 규칙을 만들었다. 친구들과 나는 해가 기울어질 때까지 운동장 한 귀퉁이를 뛰어다녔다. 축구를 끝마칠 때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우리는 운동장 한편에 누워서 지는 저녁하늘을 바라봤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면서도, 봄날의 저녁하늘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운동으로 뜨거워진 열기를 식혀주는 바람이 불었다. 교정에 심어진 벚나무에서 몇 남지 않은 봄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누워있는 우리 얼굴을 간질였다. 기분 좋은 하루의 마무리였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늘밤 여덟 시에 사연이 소개될지도 모른다는 다연 누나의 애청 프로 「시와 음악」을 떠올렸다. 과연 다연 누나의 사연이 라디오에서 소개될까, 안 될까? 지난해 겨울밤을 소재로 쓴 시도 게시판에 올렸다던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시는 어떻게 쓰는 걸까? 다연 누나는 내 그림 실력이나 글 솜씨를 칭찬했지만, 누나의 소설을 읽어볼수록 나는 다연 누나의 글이 내가 그린 그림보다도 무척 더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 누나가 하율이와 나에게 준 아날로그 라디오는 아빠가 남긴 낡은 탁상용 전등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하율이는 방구석에 기대어 동화책을 더듬더듬 읽고 있었고, 나는 모처럼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사연은 청취자 여러분께 제대로 소개를 해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개를 못한다니 무슨 말일까. 나는 이번 차례에 다연 누나의 사연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중이라 다소 실망했다.

 “아시다시피 오늘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는데요. 오늘 오전에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책상에 엎드린 채 라디오를 듣던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율아, 잠깐만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해봐.”

 수학여행 가는 배가 침몰했다고?

 “현재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해경과 해군이 야간수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와 음악」출연진과 제작진은 아무쪼록 남은 탑승객들이 모두 구조되어 가족 곁으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의 안타까운 사고를 언급한 것은, 탑승객으로 추정되는 여고생의 사연과 자작시를 오늘 소개할 예정이었기 때문인데요. 사연게시판에 단원고 2학년 학생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저희 제작진이 급히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마도 사연의 주인공이 그 배에 탑승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디오 디제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는 지금 다연 누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우리 제작진은 학생의 생존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학생의 사연을 당일 소개하는 게 맞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비록 채택된 사연이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본 후, 다음 기회에 이 학생의 사연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무사히 구조되어 학생이 지금 이 라디오를 듣고 있다면, 비록 사연을 소개할 수 없었다고 해도 우리 제작진은 더 기쁠 것 같습니다.”

 나는 더 이상 라디오를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대신 학생이 신청했던 신청곡을 우선 띄워드립니다. 무사히 돌아와 우리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아이유의 ‘슬픈 인연’ 들려드립니다.”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동화책을 읽던 하율이가 노래를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 오빠. 아이유 언니 노래다. 옛날에 다연 언니랑 듣던 거.”

 나는 하율이의 말을 듣자마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사연의 주인공은 확실히 다연 누나였다. 나는 라디오를 그대로 둔 채 할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이부자리에 누워 드라마를 보던 할머니가 깜짝 놀란 채 물었다.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밥 먹다 체한 것처럼 달려와서.”

 “할머니, 큰일 났어요. 빨리 뉴스 틀어 봐요.”

 “큰일이라니? 뭔 일?”

 나는 할머니가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텔레비전의 채널을 바꿨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는데 모든 지상파 뉴스들이 배 침몰 사고를 보도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바다 수면 위로 비정상적으로 솟구쳐 있는 커다란 배의 앞부분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영화 같은 데서 본, 침몰하는 여객선의 마지막 모습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한낮에 촬영된 자료화면인지 침몰하는 배에서 구조되는 사람들 모습이 화면 하단에 작게 잡히고, 야간수색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앵커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텔레비전 메인 화면은 배의 선수만을 물 밖으로 드러낸 채 가라앉고 있는 커다란 배를 비췄다.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는 텔레비전 화면 우측 상단에서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설마? 그럴 리 없을 거야. 나는 목이 타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간밤에 꾼 이상한 꿈이 떠올랐다. 아침에 깨자마자 잠시 잊어버렸던 꿈. 깊은 바닷속에서 놓쳐버린 엄마, 아니 다연 누나에 관한 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 물속에 잠겨 있는 저 커다란 배의 선체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화면 속 줄어들지 않는 숫자의 사람들은 지금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나는 도저히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이 밤에 어디 가니, 정민아.”

 “오빠, 어디 가.”          


 뒤에서 부르는 어떠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순간 아무것도 없었다. 잊고 지냈던 오래전 고통과 분노, 원망, 슬픔의 감정들이 마치 기억의 수면 위로 파도처럼 솟구쳐 올랐다. 나는 계속 달려가기만 했다. 다연 누나가 보내준 영화의 한 장면이 불현듯 나를 스쳐갔다.       

 ‘아카리를 지킬 힘이 있으면 좋겠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그 생각만 하면서 나는 마냥 계속해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 역시 뭔가를, 내 소중한 것을 지킬 힘이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런 힘 따위는 내겐 없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건 나한테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던 내 오래되고 외로운 골목으로 또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는 ‘설마’, ‘설마’라는 말이 자꾸 터져 나왔다. 그리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라고도 되뇌었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사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뭐야, 재수 없게 웬 눈물이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누가 죽었니. 도대체 왜 울고 있는 거야.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게 눈물일까, 사월의 마지막 꽃잎들일까. 몇 남지 않은 골목 담장 너머의 벚꽃들이 가로등 아래서 지고 있었다. 아아, 이곳은 너무 환하고 눈부시다. 지금 나는 이것들과 어울리지 않아.

 오늘밤은 별빛도 지상으로 내려와 주지 않았다. 오리온자리는 다른 계절 속으로 벌써 들어갔을까. 나는 다시 벚꽃이 흩날리고 있는 캄캄한 골목을 내달렸다. 땀이 흐르고 숨이 찼다. 눈을 감았다. 내달리고 내달리다 나는 중심을 잃고 내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어느 골목 끝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나도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대로 길바닥에 주저앉아 상처에서 피가 나는 무릎을 내려다보면서 엉엉 울었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모르는 거잖아. 도대체 왜 우는 거야? 넘어져서 아파서 우는 거야? 그렇게 되뇌는 머릿속과는 전혀 무관한, 마치 짐승 같은 엄청난 울부짖음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왜 엄마의 얼굴이 스쳐갔을까. 엄마, 엄마, 도와줘. 언제나 그립고 다정한 다연 누나의 얼굴이 번갈아 나를 스쳐갔다.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던 불길한 강물이 나를 덮친 걸까. 그 거대한 물살이 내 슬픔과 내 육체를 거쳐, 거센 홍수처럼 몸 밖으로 마구 흘러나오는 걸까. 꺼이꺼이, 꺽꺽.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목청껏 울어댔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잖아. 울지 마. 울지 마.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사내놈이 도대체 이 한밤중에 무슨 짓이야. 그러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고성과 울음소리에 골목의 창문과 현관문들이 뭔 일인가,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내 슬픔은, 내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끝내 멈추지 않으리라. 아직 채 지우지 못한, 퍼내지 못한, 내 몸과 마음의 숨겨진 아픔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내려는 듯, 탈탈 털어 버리려는 듯, 짧은 벚꽃들을 금세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야속한 빗줄기처럼 세찬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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