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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Oct 15. 2024

소중한 게 무엇인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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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지만 할머니는 식당일을 쉴 수 없다고 하셨다. 하율이의 초등학교도 아직 봄방학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내 졸업식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겪은 상황이라 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요. 졸업식이 뭐 별 건가. 어차피 금방 끝날 텐데. 잘 끝내고 와서 집에 와서 밥 먹을게요.”

 “미안하다, 정민아. 할미가 저녁에 와서 맛있는 거 해줄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학생들과 그 가족들로 가득 찬 졸업식장에 막상 들어서니 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땐 아예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는데. 그때는 단지 다연 누나가 내 졸업식을 지켜봤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것으로 제75회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 가족들과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찾아온 손님이 아무도 없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꽃다발도 없이 달랑 졸업장 하나만 손에 쥔 졸업생도 나 혼자였다. 쓸쓸하다는 느낌을 넘어 왠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찾아오지 않은 게 꼭 부끄러운 일만은 아닐 텐데도.

 나는 빨리 졸업식장을 벗어나 사람들 시선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친구들이 나를 부를까 봐 서둘러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념촬영을 끝낸 졸업생 가족들은 규모가 큰 고깃집이나 고급 식당에 가서 모처럼 화려한 점심을 먹으리라. 초등학교 졸업식 땐 친구네 식사자리를 따라가서 눈칫밥만 실컷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 이번엔 그냥 바로 집에 가서 혼자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생각이었다. 좀 처량해 보여도 차라리 그것이 더 속 편하리라 생각했다.

 “박정민, 정민이 맞지?”

 출입구 쪽에서 웬 아저씨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아니,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좀 더 젊다고 해야 할까. 나이가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키가 크고 홀쭉했지만, 볕에 그을린 얼굴이 왠지 그를 더 늙게 보이도록 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일까?

 “누구세요?”

 “어허, 이거 봐라. 어릴 때 봤다고 이제 아예 못 알아보네.”

 나는 기억을 더듬어봤다. 낯은 익으나 도무지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박정민, 삼촌도 못 알아보는 거야? 큰외삼촌이잖아. 어릴 때 시골에서 너랑 그렇게 놀아줬구만.”

 외삼촌. 어릴 때 시골에서 옛날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고, 재미난 놀이도 많이 알려주던 개구쟁이 큰삼촌. 나는 하율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울에서 맞벌이를 하는 엄마아빠와 떨어져 강원도 외가에서 일곱 살 때까지 살았다. 그러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 후, 그러니까 하율이가 두 살이 될 무렵, 서울에서부터 지금의 친할머니와 살게 된 것이다.

 “아, 못 알아봤어요. 안… 안녕하세요.”

 “이제 컸다고 삼촌한테 존댓말도 하네. 그나저나 나도 못 알아볼 뻔했다.”

 “…….”

 “그래도 크니까 매형을 쏙 빼닮았네. 키도 많이 자랐구나. 일곱 살 때인가 보고 못 봤으니, 거의 십 년 만이네.”

 “…….”

 이 갑작스러운 방문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졸업식이라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기쁘다고 해야 할까.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거의 십 년 동안 아무런 소식조차 없다가 내 중학교 졸업식을 외삼촌이 어떻게 알고 갑자기 찾아왔다는 말인가.

 “그나저나 졸업식인데 아무도 없는 거야? 할머니랑 산다면서 안 오셨어? 하율이도 안 보이고.”

 “할머닌 오늘도 일하셔서 못 오셨고, 하율이는 아직 봄방학을 안 해서…….”

 “그렇구나. 하율이도 이제 초등학생이라니, 그 갓난애가 얼마나 컸을지 궁금했는데.”

 “여긴 왜…?”

 “왜긴. 너 중학교 졸업한다는 얘기 듣고, 삼촌이 아주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축하해 주러 온 거지. 또 줄 것도 있고.”

 “오늘이 제 졸업식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인천에 있는 중학교 다니는 것도 알고 계셨어요?”

 “어떻게 알겠냐. 누나가 가르쳐준 거지. 오늘도 부탁받고 온 거고.”

 “누나요?”

 “그래, 큰누나. 너네 엄마 말이야.”

 엄마.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리 엄마 얘기를 듣는 게 대체 얼마만일까. 나는 이 사실 자체가 외삼촌이 졸업식에 갑자기 찾아온 것보다 더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제 소식을 알아요?”

 “당연히 알지. 너 어디 학교 다녔고, 언제 이사 갔고, 어느 중학교까지 다니는지 다 꿰고 있는데.”

 “엄마가 그걸 다 어떻게 알아요?”

 “자기 자식인데 그럼 모르겠냐?”

 엄마는 대체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잘 알고 있었으면서 왜 단 한 번도 찾아와 주지 않았다는 말인가. 나는 갑자기 잊고 지내던 엄마에 대한 미움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자. 같이 점심 먹을 사람 없지?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삼촌이 맛있는 거 사줄게. 졸업식인데 맛있는 거 사줄 어른도 없다니, 삼촌이 미안하네. 정민이랑 하율이를 진즉에 좀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이 삼촌도 그동안 먹고사는 게 바빠서리.”

 “…….”            


 외삼촌은 학교 근처 숯불갈비를 전문으로 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식당 안은 이미 졸업생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다행히 한 자리가 비어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왕갈비 3인분 주시고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정민이 너는 음료수 마실래? 콜라, 사이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콜라도 하나 주세요.”

 “낮부터 술도 드세요?”

 “아, 소주? 삼촌이 워낙 술을 좋아해서리. 삼촌이 워낙 빡센 일들을 하는데, 요거 한두 잔 안 마시면 현장에서 힘이 안 나.”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아, 건설업이라고 해야 할까. 지방 돌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집도 짓고, 이것저것 건물도 만들고 하는 거야.”

 “…….”

 “오랜만이라 낯가리는 것 같더니, 이제 말문이 트였네?”

 주문한 고기가 나오고, 삼촌이 집게를 들어 능숙하게 숯불에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굽는 중에도 소주잔에 술을 따르며 한두 잔 술을 마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이 상황과 자리가 낯설었지만, 혼자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삼촌과 점심을 먹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졸업식 날의 처량한 혼밥은 아니었다.  

 “다 구워진 것 같네. 더 구우면 탄다. 많이 먹어라, 정민아.”

 “잘… 먹겠습니다.”

 나는 삼촌이 왜 내게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정말 졸업식이라서 단순히 축하해 주러 온 것인가. 엄마가 얘기해 주었다니까, 엄마의 부탁을 받고? 그렇다면 왜 엄마가 직접 오지 않고 삼촌이 온 걸까.    

 “아까 엄마가 얘기해 줘서 제가 이사한 거나, 졸업하는 거 알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삼촌은 또 한 번 잔에 담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 엄마가 왜 직접 안 오고, 삼촌이 온 거예요?”

 “누나가, 그니까 너네 엄마가 부탁한 거야, 나한테. 자기 대신 정민이 졸업식 좀 가달라고.”

 “그니까, 왜요? 왜 대신 가라고 한 건데요?”

 “들어봐.”

 엄마는 사실 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몰래 졸업식장에 와 있었다고 한다. 내 눈을 피해 졸업식이 거행되는 강당 이층 먼 뒷자리에서 지켜봤다고. 어릴 때부터 해준 것도 없고, 어른들 잘못으로 큰 상처를 준 어린 아들 앞에 직접 나타날 면목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도, 하율이도 없이 홀로 졸업식을 치르는 내 모습을 보며 무척 가슴이 아팠다고. 그래서 이번 중학교 졸업식만큼은 다소 갑작스럽고 놀라게 하더라도 꼭 참석해서 축하도 해주고 맛있는 점심도 사주려 했다고 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당연하지. 왜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그러면서 삼촌은 비워진 잔에 다시 한 번 소주를 채웠다. 그는 고기는 몇 점 먹지도 않은 채 빈속에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내 초등학교 졸업식에 왔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혼자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는 것도 잘 믿기 어려웠다. 엄마는 나를, 나와 하율이를 버린 것 아니었나? 우리를 영영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한 것 아니었나?

 “오려고 했다면서, 그럼 오늘은 왜 안 온 건데요?”

 “그게 말이다.”

 “…….”

 “오늘은 안 온 게 아니라, 못 온 거다.”

 삼촌은 다시 한 번 소주잔을 깨끗이 비웠다. 그러고 나서 입고 있던 패딩점퍼의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접혀있던 봉투를 다시 반듯하게 펴서 내 앞에 내밀었다.

 “받아.”

 “이게 뭐예요?”

 “너네 엄마가 전해주래.”

 “뭔데요?”

 “용돈이랑 편지.”

 “편지요?”

 “졸업식인데 제대로 된 선물도 못 샀다고. 오십만 원이나 줬는데, 이 삼촌이 십만 원 더 넣었다. 할머니, 하율이랑 맛있는 거 사 먹고, 좋은 옷도 좀 사 입으라고.”

 “편지… 넣었다면서요?”

 “응. 누나가 병원에서 쓴 거야. 길진 않아. 맨 뒤에 접어서 같이 넣어놨어.”

 “병원이요?”

 “그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삼촌이 잠시 또 말을 멈추고, 다시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나는 갑자기 애가 탔다. 빨리 그다음 말을 듣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누나가, 아니 너네 엄마가 좀 오래 아팠어.”

 “…….”

 아프다고? 엄마가 아팠다고? 어디가 아팠다는 말일까. 언제부터.

 “너무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마라. 너네 어릴 때부터 좀 아팠던 건 사실인데, 이제 회복됐어. 거의 마무리단계야.”

 “…….”

 “다시 너네 얼굴도 보고 해야지.”

 “…….”

 “용돈이랑 편지도 전하고, 이 말하러 삼촌이 오늘 너한테 온 거다. 누나 부탁도 부탁이지만, 바쁜데 나도 일부러 온 거야.”

 “…….”

 “좀 늦긴 했지만, 하율이랑 너도 이제 고생 그만해야지. 할머니랑만 살면서 그동안 얼마나 엄마아빠가 보고 싶었겠어?”

 이제 와서… 겨우 이제 와서 왜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매형은 아직 미국에 있나?”

 “…….”

 “너네 아빠 말야.”

 “내년에 다시 한국 나온대요.”

 “그래? 재혼하셨나?”

 “한 번 하셨다가, 다 정리하고 나온대요.”

 “그렇구만. 너랑 하율이도 좋겠지만, 할머니가 좋아하시겠네.”

 “엄마는요?”

 “엄마가 뭐?”

 “엄마도 다른 분이랑 다시 결혼하신 거 아니었어요?”

 “너 알고 있었구나. 맞아. 지금도 잘 지내. 새 매형도 좋은 분이야. 물론 너네 아빠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

 “너도 나중엔 이해하겠지만, 어른들의 세계란 게 참 어려운 거다. 각각 다 사람이 좋아도, 그 둘 사이까지 좋은 것만은 아냐.”

 “…….”

 삼촌은 다시 또 소주잔을 비우고, 이번에는 다 타버린 고기 한 점을 탁탁 털어서 입에 넣었다.

 “그래도 너네들 때문에라도 둘이 조금 더 참았다면 좋았을 텐데.”

 “…….”

 “뭐, 그건 내 생각이고.”

 “…….”

 “하긴 이제 와서 이런 얘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 그치?”

 “…….”

 “편지에 누나가 뭐라고 썼는지 난 안 읽어서 모르겠지만, 너네한테 미안하다고 썼을 거야.”

 “…….”

 “병원에서 나한테 돈이랑 편지 전하면서 그러더라. 앞으로 너랑 하율이 위해서 살고 싶다고.”

 “…….”

 “아파보니까, 자기한테 소중한 게 뭔지 더 알게 됐대.”

 “…….”

 “그니까, 당장은 어렵겠지만 너도 엄마 마음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엄마. 엄마의 마음. 그게 뭘까? 내가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왜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야 할까.

 삼촌은 그 말을 끝으로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곤 가위를 들어 고기의 탄 부위들을 하나하나 잘라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삼촌이 건넨 흰 봉투를 손바닥 위에 얹은 채 한참 내려다봤다.

 나는 이 편지를, 엄마의 마음을, 엄마의 미안을 과연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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