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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Nov 02. 2024

흰 종이가 되는 마음

VOL.22 / 2024. 11월호. 짧은 이야기_2

흰 종이가 되는 마음    



 늘 혼자 오는 곳이라면 모를까, 언제나 함께하던 길을 혼자 걷게 될 때 사람의 마음은 쓸쓸해지는구나. 산의 그늘은 더 어둡고 바람은 차가워지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며칠 전 아내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았다. 힘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이 무기력하게 듣고만 있어야 할 때에는. 그러나 마냥 또 그럴 수만은 없어서 나는 아내에게 자꾸 무리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렇게 힘들면… 에휴. 그냥 그만두면 안 되나. 거기에 꼭 목맬 필요 없잖아. 옆에서 지켜보기 너무 힘들다.”

 “…….”

 “그 일 해서 받는 돈 없어도 우리 잘 살 수 있잖아. 너무 스트레스받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내가 더 열심히 벌어올게.”

 나의 그 말을 끝으로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 들어간 회사의 팀장 때문에 며칠간 적지 않은 피로함을 토로하던 아내였다. 성격이 이상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둥, 남은 힘들게 하면서 본인 자랑만 하는 사람이라는 둥, 팀장이 힘들게 하는 사례를 아내는 쉼 없이 열거했다. 나는 요 며칠 야근과 출장으로 피로했기에 아내의 얘기를 반복해서 듣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딴에는 빠른 해결책이라고 내가 돈 더 벌어올 테니 일 그만두라는 식으로 말해버린 셈이다.

 아침에 출근해서 직장 동료 김에게 전날 아내와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거 꽤 오래갈지 몰라요. 저도 그런 일 있었거든요.”

 김이 들려준 얘기는 이랬다. 김의 아내가 비정기적으로 중고등학교에 특강 수업을 나가는데, 매번 나갈 때마다 다수 학급을 위한 강사팀을 만들어서 나간다고. 근데 그 강사팀 리더라는 사람이 그렇게 별나더란다. 수업 전 강사 선생님들을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스터디를 시키고, 밤에도 툭하면 불시에 온라인 회의를 소집했다고. 그래서 김의 아내 역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런 말들을 자꾸 김에게 반복해서 했단다. 그래서 김은 그럼 그냥 그만두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아내는 자기 일이 그렇게 사소해 보이냐, 본인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한다며 오히려 그 일로 둘이 크게 싸우게 됐다고 한다. 김은 아내와 싸우면서 물었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만족하겠냐고.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단다. 일을 그만두라고 해도 서운하고, 그냥 참고 다니라고 해도 서운했을 거라고.

 “아니 대체 어쩌라는 건지, 미치겠더라고요. 얘기 들어주는 거, 그거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도통 모르겠어요.”       

  김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산을 오르면서 나는 며칠 전 말없이 잠자리에 들던 아내의 굳은 표정을 떠올렸다. 김의 예상대로 그날 이후 아내와의 대화는 급격히 어색해졌다. 아내는 일상적인 내 물음에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날의 대화로 인해 서운한 마음을 애써 감추지 않은 것이다. 언성만 높이지 않았을 뿐 우리 역시 김의 부부처럼 다툰 것과 다름이 없었다.

 산에 올라와 한참을 고민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내가 사과를 하면 아내는 못 이긴 척 받아줄 것이다. 늘 그렇게 잘 용서해 주던 아내였으니까.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될 것임에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퇴근 후 종종 아내에게 이야기로 들려준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다르게 고개를 끄덕여가며 잘 공감해 주고 함께 화도 내면서 내 편이 되어준다. 그런데 나는? 나는 왜 아내의 힘든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할까. 그 마음에 잘 공감할 수 없어서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자꾸 똑같은 이야기가 이어지고, 나도 힘든데 아내의 부정적인 일과를 반복해 듣다 보면 내 몸과 마음이 더 지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 역시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왜 나만 이럴까.

 나는 결국 ‘힘든 건 자긴데 잠들기 전 대화에서 내 답답함만 토로하고, 자기의 힘든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로 아내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해서 그날의 다툼 아닌 다툼은 잘 풀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로 또 생겨날 수 있는, 아내와의 쉽지 않은 대화(?)를 나는 더 잘하고 싶었다.               


 아내가 친정에 간 주말을 이용해 홀로 강화도 광성보로 차를 몰았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신 소설가 임 선생님을 오랜만에 뵙기로 했다. 늘 현명한 대답을 들려주시던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늘 잊지 않고 찾아주니 고맙네. 그래, 차는 안 막히고?”

 “금세 왔습니다, 선생님. 더 젊어지시고 건강해 보이시네요.”

 임 선생님은 광성보 돈대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안부를 주고받으며 나무가 우거진 광성보 내부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밀려드는 바닷물이 내려다보이는 순돌목 돈대에 이르렀다. 먼저 온 한 부부가 성벽 앞에서 말없이 서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아내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그래, 고민이 뭔가? 늙은 선생의 말이 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듣는 게 어렵습니다. 특히 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더욱요.”

 나는 임 선생님께 며칠 전 아내와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처럼, 나도 아내의 힘든 이야기들을 잘 들어주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내를 진짜 사랑하는가 보네. 그럼 된 거지. 뭐가 더 고민인가.”

 “그래도 막상 또 그 상황이 되면 쉽지만은 않습니다.”

 “글쎄, 그런 것에 꼭 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준비된 마음만 있으면 상대를 잘 들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자네가 내 얘기를 잘 경청하는 것처럼.”

 선생님은 당신의 사례를 한 가지 더 말씀해 주셨다. 자신도 그런 고민을 오래전에 아내, 그러니까 사모님께 직접 물어보았다고. 당신은 어떻게 내 얘기를 그렇게 잘 들어주고, 이렇게 함께 잘 살아가 주냐고. 그랬더니 사모님께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당신은 독자에게 위로가 되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늘 말했지요.”

 그렇지만 소설가의 글에서 위로받는 건 독자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글을 읽어줄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 소설가 역시 그런 독자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위로받는 것 같다고. 당신을 옆에서 지켜보면 그걸 느낀다고 했다.

 “와이프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 그렇더라구. 독자를 위하는 글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쓰면서 보니 결국 내가 제일 치유가 되더라니까.”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것을 꽤 들을 만하게 되더란다. 사모님은 임 선생님이 가끔 힘든 이야기를 꺼낼 때에도 한 편의 사연을 읽는 독자의 마음으로 듣는단다. 이 작가가 이렇게 또 한 편의 어려운 글을 쓰면서 저렇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구나, 하고. 공감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듯이, 때로 “그렇지”, “맞아” 하는 맞장구도 쳐주면서.

 “어려운 거야. 쉽지 않으니까 자네도 당연히 고민하는 거고. 그렇지만 그 고민 자체가 이미 아내를 사랑하는 거지. 나도 와이프에게 배운 거지만, 자네도 그렇게 한 번 생각해 봐. 얼마나 멋진가. 자네 처가 뭔가 힘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해. 그러면 자넨 마음으로 생각하는 거야. ‘나’라는 독자를 항해 지금 아내가 한 편의 긴 글을 써 내려가려 한다고. 그리고 그건 자네라는 독자만 읽을 수 있는 글이지 않은가.”

 때로 그 글이 와닿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미 팬이 된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그 정도 신작은 실컷 읽어줄 수 있으면서. ‘나’라는 독자를 향해 이렇게 길고 힘겨운 글을 쓰면서 이 사람이 또 위로를 받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고 임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어. 그 사람이 ‘나’라는 독자를 향해 그렇게 구술로 이야기를 집필하며 치유된다고 생각하니까 말이야. 와이프한테 비결을 듣고 나서는 나도 잘 써먹고 있지. 글만 쓰는 작가가 아니라, 때론 누군가의 글을 받아 적는 흰 종이가 되는 마음으로. 물론 매번 잘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어려우니까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임 선생님은 돌아가는 내게 손수 쓰신 시 한 편을 선물로 주셨다. 소설이 잘 안 써질 땐 가끔 기분 전환 삼아 시도 쓴다고 하셨다. 산을 좋아하는 나와 내 아내를 생각하면서 써 본 시라고. 그리고 덧붙이셨다. 가끔 싸우더라도 잘 풀라고. 그게 또 부부라고. 그렇게 행복해지는 법을 공부하면서, 오래오래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라고. 서로의 작가처럼, 서로의 독자처럼.              



까마귀 두 마리          


        

헐떡이는 숨을 참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초록빛 나무들의 지붕       


그 위를 통통

튀어 오르는 검은

고양이들처럼         

      

서로 엉키며 떨어지며

엎치락뒤치락

여름의 푸른

이파리들을 깃털처럼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저 까마귀들 싸우는 건가, 장난치는 건가

내가 물을 때         


꼭 우리 같네

그것은

너의 말              

 

초록의 온 세상은 한순간에

드넓은 둥지

최대의 격전지     

          

내가 빤히 쳐다보자

네가 웃었다       


활짝 편

검은 눈썹 한 쌍이

하늘 위로 나란히

날아올랐다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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