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4 / 2025. 1월호. 이창호 연재소설_12화
인천에서 의정부로 가는 전철 안. 태양과 지수는 사람들이 없는 구석에 서서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지수의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태양은 지수를 흐뭇하게 쳐다본다.
‘이제 우리 헤어지지 않아도 돼. 너를 떠나고 오랫동안 방황했어, 그 방황 끝에 선택한 여자는 날 배신했다. 오늘 군입대로, 그 고통을 끊어낸다.’
옆에서 해리와 진주가 ‘꼴값 떤다’는 표정으로 둘을 째려봤다. 해리와 진주는 동걸과 민훈을 배웅한다며 따라왔다. 군입대는 다행히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태양, 동걸, 민훈은 같은 날 입대하게 됐다.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동반입대인 동걸과 민훈은 같은 중대로 배정한다. 태양은 같은 대대만 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만날 수 있기 때문. 이미 한번 군생활을 해본 태양은 그 사정에 밝다.
지수는 곧 태양과 아주 헤어질 것처럼 뚫어져라 태양의 얼굴을 봤다. 웃고 있는 태양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니, 나랑 떨어져서 좋은 거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웃는 거야… 진짜, 기분 나빠!’
지수는 태양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태양은 미소를 지었다.
*
의정부역에서 태양과 지수 일행은 택시를 둘로 나눠 타고 306보충대로 갔다. 태양은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마치 처음 입대하는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을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지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어제까지만 해도 다들 가는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만. 겁나지? 가기 싫지?"
"너도 군대 두 번 가봐라, 이런 표정 안 나오나!"
"뭔 소리야? 무슨 군대를 두 번 가?"
"아차차… 내가 아주 리얼한 꿈을 꿨는데, 거기서 군대를 갔다 왔거든."
"그런 거야? 아무튼 가기 싫은 표정을 나는 봤어, 센척하지 마라!"
*
허름한 이발소 앞, 동걸과 민훈이 머리를 깎는다고 이발소를 들렀다. 태양은 깎을 생각이 없다. 어차피 입대하면 머리카락을 다 잘라준다. 이발소에서 깎고 가도 조금 길다 싶으면 아주 바짝 밀어버린다. 지수는 같이 깎으라고 성화다. 둘이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걸과 민훈 일행은 이발소로 들어갔다. 해리는 이발사 할아버지가 바가지에 물을 떠 머리를 감겨주는 걸 보고 신이 났다. 동걸이를 놀리면서 크게 웃었다. 낡은 형광등 덕에 어두운 이발소 분위기가 그나마 밝아졌다.
"동걸아, 머리 깎는 김에 아주 스님처럼 면도까지 해버려라!"
"이게 진짜 지금 웃을 때냐고! 간신히 참고 있어 나도."
"뭘 참아? 왜 울게?"
해리와 진주는 박장대소했다. 민훈은 그 둘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웃음소리를 듣고 태양과 지수도 이발소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할아버지가 바가지로 물을 떠서 머리를 감겨 주는데?"
"오래돼서 수도시설을 새로 안 하셨나 보네."
"오빠도 깎고 가!"
"아니 안 깎아도 다 들어가면 깎아준다니까."
"왜 이래 진짜, 한 번 가본 사람처럼 자꾸! 어디 미래에서 온 거야?"
"몰랐어?"
"진짜 미쳤나 보네."
*
식당으로 가는 길, 동걸과 민훈은 머쓱한지 계속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수는 끝내 태양을 이기지 못해서, 씩씩거리고 있다. 민훈이 지수를 거든다.
"형, 머리 잘라야 돼요! 가서 얻어터져요."
"괜찮아, 내가 다 안다니까. 얼른 부대찌개 먹으러 가자, 의정부는 부대찌개지!"
다 같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부대찌개는 거의 주문하자마자 나왔다. 지수는 찌개 안에 들어간 어묵이 생소했다.
"원래 부대찌개에 어묵도 넣어?"
"그러게, 나도 처음 봤어."
"의정부 부대찌개거리에 오뎅식당인가 거기서 처음 넣었다나, 그래서 의정부에 유행한다는 거 같아."
"오빠 그거 어떻게 알아? 거기 가봤어? 누구랑?"
"나 이 근처 살았잖아, 왜 그래? 무섭게…"
"아 맞네, 맞네."
*
태양과 지수 일행은 306보충대로 들어섰다. 아들의 입대를 걱정하는 듯한 어머니, 친구들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웃지 못하는 입대자, 아버지와 어색한 아들들, 태양과 지수처럼 연인이 동행한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연병장과 그 주변에 있었다.
"형, 이제 10분 남았어요. 담배 하나 필래요?"
태양은 지수를 바라봤다. 지수는 앙다문 입술을 떼고 말했다.
"어차피 이제 못 피는데, 마지막으로 피고 가!"
태양과 동걸, 민훈은 줄담배를 피웠다. 그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담배를 감추려는 사람들도 보였다. 담배를 피우던 태양은 몸에 이상함을 느꼈다. 손이 저리면서 감각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담배를 피워서, 갑자기 혈액순환이 안 되나. 왜 이러지…’
손이 저린 듯한 느낌은 태양이 팔을 쭉 펴고 순간 힘을 주자 사라졌다. 태양은 께름칙했다. 그 순간.
"오후 2시 입대하는 장정 여러분께 알립니다. 지금부터 가족, 친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구령대 앞으로 모여주십시오."
입대를 알리는 방송이었다. 방송은 몇 차례 이어졌다. 방송이 나오자 지수는 울먹였다. 곧 울음이 터졌다. 지수를 보고 해리와 진주도 따라 울었다. 태양은 지수를 꼭 안아줬다.
"지수야, 마음껏 울어. 대신 나 들어가고 나면 애들이랑 웃으면서 집에 가는 거다!"
"몰라, 왜 지금 가. 시험 합격하고 장교로 간다더니만…"
태양은 귀엣말을 했다.
"지수야,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아까 나보고 군대 갔다 와본 사람처럼 군다고 그랬지? 그거 정말이야. 나 2024년에서 왔어, 진짜야!"
지수는 울음을 뚝 그쳤다.
"오빠 내가 머리 깎고 가라 그랬지? 아무래도 머리 안 깎아서 이상해진 거 같아."
태양이 웃음을 보였지만 허탈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지수는 다행히 울음이 멈췄지만 기분이 묘했다. 태양의 귀엣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둘은 진한 포옹을 나눴다. 태양과 동기들은 연병장으로 내려갔다. 지수는 태양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
동반 입대인 민훈과 동걸은 같은 내무실에 배정됐다. 태양이 옆 내무실을 배정받자, 세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보충대는 3박 4일간 머물면서 각종 군 보급품을 받고 신체, 지능, 인성 등 각종 검사를 실시한다. 임시 입영기간이라, 장정이라 불리며 단순 변심으로 귀가도 가능하다. 사흘째 2년간 생활할 자대가 결정된다.
태양은 보충대에 들어오고 나서 증상이 심해져서, 아예 왼쪽 팔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열까지 동반해 앓아누워야 할 판이었다. 임시 입영기간이라고 하나 엄연히 조교와 교관이 있어, 잠시 쉴 때도 정자세로 있어야 한다. 태양은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옆자리에 있던 장정이 말을 걸어왔다.
"아파 보이는데, 괜찮아요?"
"네,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요."
"많이 아프면 돌아가도 괜찮다던데요?"
"아니에요, 이왕 들어온 거 참아야죠. 밥 먹고 나면 괜찮아지겠죠."
저녁시간, 태양은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속이 메스꺼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민훈과 동걸을 마주쳤지만 인솔하는 조교가 있어 대화하지 못했다. 태양은 일정에 따라 오후 10시 잠을 청했다. 빨리 자야 몸이 회복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오한과 발열로 잠이 오지 않았다. 보충대로 그런지 얇은 이불이 지급됐다.
‘아 너무 춥고, 점점 다리까지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고 두통까지 오네. 아파서 나가야겠다고 말을 해야 하나…’
태양은 속으로 계속 갈등했다. 그만큼 고통이 심했다. 눈을 감은 상태로 서너 시간을 뒤척였다. 증세는 회복되지 않았고 감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시간 넘게 고통에 더 시달린 뒤 태양은 혼절했다.
*
무의식 속에서 민훈과 동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익숙한 노랫말이 들렸다.
‘내가 쓰러져서 애들이 면회를 왔나…’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노랫소리가 정확히 들렸다. 아까 노랫말은 SG워너비 ‘고백합니다’였다. 눈을 비비자 시야에 민훈과 동걸이 나타났다. 우리는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앉아있었다. 민훈이 잘 익은 삼겹살을 자르고 있었고 태양에게 술을 받으라고 손짓했다.
"형 뭐해요? 갑자기 왜 얼을 타요. 받아요!"
"어… 받아야지, 여기 지금 어디냐?"
"무슨 소리예요? 회식하러 삼겹살집 왔잖아요. 뭐야, 또 오락가락해요?"
"너 명함 한 장 줘봐."
"내 명함이요? 사무실에 많잖아요."
"줘봐!"
태양은 명함과 동기들 옷차림을 번갈아 봤다.
‘뭐야? 미치겠네, 미래로 돌아왔네? 도대체 왜? 설마 내가 인생을 바꾸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