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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쓴 편지

VOL.29 / 2025. 6월호. 짧은 소설_8

by 숨 빗소리

함께 쓴 편지



1


“해외에서도 사례가 드문 남녀 간 팔 이식 수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국내의 팔 이식 수술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양팔을 이식하면서 남녀 간 성별을 달리한 수술은 이번이 최초입니다. 4년 전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었던 여고생이 남성 뇌사자의 팔을 이식받아 새 삶을 찾게 됐습니다. 이서진 기자의 보도입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입니다. 30여 명의 의료진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20대 남성 뇌사자의 두 팔을 적출합니다. 적출된 팔들은 피부를 벗겨낸 뒤 각 전문 분야 의사들이 근육과 신경, 혈관 등을 분리해 이식을 준비합니다. 이식 대상자는 4년 전 등굣길 불의의 사고로 양팔을 잃은 10대 여고생, 17시간의 복합이식 수술 끝에 드디어 새로운 두 팔을 얻었습니다. 쉽지 않은 장시간의 수술이었지만 이식된 팔에서 혈액이 통하는 것이 마침내 확인되었습니다. 팔을 이식받은 환자는 현재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이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입니다. 1999년 미국에서 처음 팔 이식 수술이 시작된 뒤 7년 전 국내 최초로 성공한 팔 이식 수술 이후, 이번 수술은 국내 처음으로 이성 간 이식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 이식 수술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


오빠, 잘 지내시나요?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오빠에게 메일을 보내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북한 출신 정대진 오빠. 상처 많은 중학생이었던 제게 큰 위로를 주셨던 오빠를 실제로 한 번도 뵙지 못한 게 가장 큰 아쉬움이 듭니다. 오빠는 어디에 계신 걸까요? 예전에 북한에서 탈출하실 때처럼 다시 또 먼 곳으로 떠나신 건지, 아니면 제 가장 가까운 곳 어딘가에 와주신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 이상한 기분만 들어요.

오빠, 저는 중학교의 마지막 겨울을 잘 보내고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그리고 새 학기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동안 애타게 기다렸던 팔 이식 수술을 받았답니다. 아직도 병원이긴 해요. 엄마 도움을 받아서 지금 병원에서 오빠에게 보낼 편지를 녹음하고 있어요. 어쩌면 평생 기회를 못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제 소원을 하늘이 이뤄주신 거 같아요. 오빠가 언젠가 메일 속에서 빌어준 행운이 저를 찾아준 걸까요.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거의 사 년 동안 없던 두 팔을 다시 어렵게 얻었는데, 왜 저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불행이 저의 행운으로 뒤바뀌어 날아온 건 아닌가 해서요. 가을 나무의 슬픈 손바닥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땅에 묻힌 뒤, 마치 새로운 어린나무의 거름이 된 것처럼, 자꾸자꾸 이상한 상상을 하게 돼요.

병원에서 남자의 팔을 이식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전 아무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원했는걸요. 새 삶을 얻었다는 인도의 그 소녀도 스무 살 남자의 팔을 이식받았으니까요. 저는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선 많이 망설이셨어요. 남녀 간 이식이 큰 거부반응을 불러와 제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셨으니까요. 전 해외의 성공 사례 영상을 보여드리면서 부모님을 안심시키고 꼭 수술을 받고 싶다고 다시 말씀드렸어요.

수술은 매우 길고 어려웠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잘 끝났습니다. 메일이 끊긴 지는 오래됐어도 제 행운과 미래를 빌어주신 오빠에겐 먼저 꼭 알리고 싶었어요. 언젠가 오빠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진짜 기뻐하시겠죠? 정말 읽으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근데 왜 자꾸 전 눈물이 나는 걸까요. 기쁨의 눈물일까요, 슬픔의 눈물일까요.

수술받은 양팔을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날. 저는 팔꿈치 아래로 마치 새롭게 돋아난 나뭇가지처럼 뻗어있는 까만 팔과 손가락들을 보았어요. 제 피부 색깔과 제법 차이가 났지만, 그래도 제 몸과 이어져 있는 그 두 팔과 두 손이 너무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났어요.

저는 제 의지로 바로 팔을 움직여 보려고 했어요. 그동안 붕대 속에 감춰져 있던, 팔목의 작은 네잎클로버 문신을 그때 처음 발견했지요. 놀람과 동시에 정말 정말 이상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그리고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오빠의 존재가 당연히 바로 떠올랐습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이제 마음속에서 영영 떠나보내기로 한 오빠였는데. 언젠가 꼭 네잎클로버를 직접 선물해 주신다고 했던 오빠, 혹시 이런 식으로 제게 마지막 행운을 주신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오빠가 끝내 부모님 반대로 문신을 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도 혹시 이게 정말 오빠의 두 팔은 아닌 것인지, 오빠가 저를 만나기 위해 이런 방법으로 찾아온 건 아닌지. 새로운 삶을 찾아 북한 국경을 넘고 압록강을 건넌 오빠의 지난날처럼, 괴롭고 힘든 무언가를 떠나 다시 또 새롭게 절 찾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약속하신 밝은 미래를 응원하기 위해, 직접 두 손으로 제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 말도 안 되지만, 슬픈, 그런 기이한 상상을 자꾸 하게 돼요.

저는 팔을 기증하신 분의 신상이 너무 궁금했지만, 결국 끝까지 모르고 지내기로 했어요. 수술을 이끄신 황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저는 오빠의 두 손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오빠가 빌어주신 그 행운이 제게 찾아왔다고 믿기로 했으니까요. 부모님께선 싫어하시지만 전 네잎클로버 문신을 지우지 않고 계속 간직할 거예요. 오빠가 보내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저를 위한 행운의 부적이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정말 감사해요, 오빠. 만약 가능하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꼭, 꼭 뵙고 싶어요.



3


안녕하세요. 또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오빠. 잘 지내시나요.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어요. 설마 벌써 절 잊으신 건 아니시겠죠.

팔을 수술한 지도 어느덧 삼 년이 지났네요. 전 올해 꿈에 그리던 스무 살 대학생이 됐어요. 중3 때부터 쓴 시를 고등학교 때도 계속 열심히 써서 수시 실기 전형으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어요. 제 두 손으로 직접 쓴 시로 대학에 합격했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삼 년 동안 새로운 두 손과 두 팔에 저는 잘 적응했어요.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보통은 이식을 준 사람의 세포 기억이 전이된다고 하던데, 전 그게 역전되어서 나타났대요. 까맣고 두껍던 팔이 오히려 제 몸과 피부에 맞게 가늘어지고 하얘졌어요. 기적을 보여준 그 인도 소녀처럼요. 진짜 정말로 흔하지 않은 일이래요. 어쩌면 제게 희망을 준 두 손이 저를 위해 크게 스스로를 양보한 것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하루하루가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니에요. 세포 기억이 자연스럽게 역전되기 전까진 정말 심각하게 거부반응이 나타나서 죽다가 살아났어요. 수술을 이끄신 황 선생님도 미처 예상하시지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었어요.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으니까요. 결국 황 선생님은 저와 제 부모님께 제가 다시 살려면 팔을 원래대로 잘라야 할 거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거의 초주검 상태였지만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어요. 어떻게 합쳐진 팔이고, 어떻게 되찾은 희망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어요. 저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래도 제 의지와 운명을 믿었어요.

생각해 보세요. 오래도록 떨어져 지내던 각자의 존재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겠어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게 더 부자연스러운 거죠. 친한 친구끼리도 같은 방을 쓰다 보면 싸우고, 부부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몇십 년 동안 다른 국가로 살아온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심각한 성장통을 겪을 건 당연하고요.

저는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했어요. 비록 고통스럽지만 노력하고 견뎌내야 한다고. 저만 지금 죽을 것처럼 싸우는 게 아니라, 제 몸과 합쳐진 이 소중한 두 팔도 경계를 넘기 위해 고통스럽게 싸우는 중일 거라고. 그리고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 몇 날 며칠 동안 오빠의 지난날을 상상했어요. 새로운 꿈과 미래를 위해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어가던 오빠의 모습, 경비대의 눈을 피해 노심초사하며 밤에 도강하던 오빠 가족들, 겨울 산에서 동상에 걸려가며 민가를 찾아 헤매는 장면들이 제 꿈에 나왔어요. 약속한 장소에서 브로커를 기다리다 겨울 눈 속에서 막 잠들려 할 때, “일어나! 지금 잠들면 죽어.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며 흔들어 깨우던 사람은 오빠였어요. 눈 속에 파묻혀 포기한 채 잠들려 하던 사람은 바로 저였고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던 나날들. 마침내 제 몸은 정상 궤도로 돌아왔어요. 저만 노력한 게 아니라 그렇게 오빠도 제 꿈속에서 함께 싸워주고 응원해 주었어요. 잠에서 깬 제 팔목에서 맥박과 함께 크게 요동치던 푸른빛의 그 네잎클로버처럼요.


저는 요즘 몇 년 전 오빠께서 보내주셨던 글을 다시 꺼내 읽곤 해요. 그리고 그때 언급하신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을 자주 떠올린답니다. 두 개의 손이 서로를 그려가는 묘한 판화였지요. 그때 오빠는 과거의 손과 미래의 손이 만나 현재를 함께 그려가는 그림이라고 해석하셨지요.

저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오빠의 손과 그리고 새로 얻게 된 지금의 제 손을 생각합니다. 이제는 제 뜻에 따라 두 손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무거운 물건도 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저는 제 손의 기적은 바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자필 편지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으로 직접 두 손으로 펜을 쥐고 오빠에게 쓰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편지. 근데 이 편지를 왜 저 혼자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저의 글씨체를 기억하는 과거의 제 손과, 오빠의 행운이 깃든 지금의 손이 함께 쓰는 이 문장들이 정말 위대한 기적처럼 느껴지곤 해요.

감사해요, 오빠. 크게 나아가고 싶다던 오빠의 꿈처럼 어딘가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계시리라 믿고 싶어요. 우리의 편지는 이제 이걸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 후에라도 이 편지가 오빠에게 닿는다면 제 마음은 한없이 기쁠 거 같아요.

잘 지내세요, 오빠. 부디 편안히…… 안녕히 계세요.✤


(끝)


스크린샷 2025-05-13 092009.png 에셔, <그리는 손>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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