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이들을 위한 헌사

by 공백

'밤 하늘의 별'이라는 문구를 마주할 때면 이소라 가수님의 '별'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원하는 데도, 닿을 수 없는 나의 별. 이상향. 차분하고 고요한 가운데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 위의 무언가를 바라볼 때면 슬프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하늘에서 우주로, 끊임없이 별의 위치를 헤아리고 확장하는 가운데 마주한 별.


지나친 사람들의 눈 속에 박힌 별을 생각한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 참 좋았다. 반짝이는 한 사람의 눈에 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무게를 헤아리며 어두컴컴한 밤, 강변과 숲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정처 없이 걸으며 평소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가감 없이 풀어놓고, 흘려보내기도 하는 그 시간을 수집하곤 했다. 그렇게 뭉쳐 있던 생각들을 함께 돌아보다가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을 돌아와 잠에 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개운한 일이 없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일상의 순간.


그리고 가끔은 인생에 큰 발자국을 남겨주신 어른들을 떠올리곤 한다. 어리버리 사회에 신입 시절부터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겨주신 교수님을 생각한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다는 핑계로 연락조차 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던 시절. 교수님께서 맛있는 국밥으로 말을 건네셨다.


인생을 꽤 괜찮게 살아가는 척, 잘 사는 척하며 꽁꽁 싸매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겼던 시절, 교수님은 흔들리는 눈빛은 숨길 수 없다고 하셨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더 많이 삶에 부딪히고, 보여주면서 삶의 군더더기를 정리하는 과정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서로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 함께 기꺼이 흔들림을 마주하면 된다고. 흔들림에 위축되지 않고, 그 다음 단계의 나를 마음껏 그려볼 수 있게 항상 지원해주셨다. 밤하늘의 별처럼 힘들 때 하늘을 올려 떠올릴 수 있는 어른이 있어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안식년을 가지시며, 조금은 멀어진 지금 교수님의 부재가 그때의 시절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


어제는 먼 울산으로 결혼식을 갔다. 교수님 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선배의 결혼식이었다. 교수님이 없는 결혼식에서, 우리는 교수님의 부재를 곱씹으며 정답지만 쓸쓸한 대화를 한다. 언제 그가 가장 그리운지 말을 하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대형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자로서 재단 운영자와 기금을 조율하고,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참여 학생들을 인터뷰 보고, 매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상을 함께 보내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시며 큰 교육 과정을 병행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았을 텐데도 항상 여전히 그 자리에 계셨다.


교수님께서는 함께하는 학생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고, 그들을 궁금해하며 짧지만 강한 질문을 던지곤 하셨는데. 그 깊이와 따스함이 좋아서. 매번 나를 뒤흔드는 그 질문에 답변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밤 울면서 글에 고민과 감정을 토해내더라도, 나름의 답변을 적어내려가고자 애썼다. 그런 교수님의 부재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돌이켜본다. 매번 우리를 먼 곳에서 비추고 있는 별 같은 사람이 한 순간 사라지셨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시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야할까. 나의 별이자, 우리의 별인 선생님께서 몸과 마음을 잘 추스리셨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글을 적는다.



오 교수님께서는 5년 정도 나를 지켜보시면서 ‘언제나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는 아이’라는 피드백에 '도망치지 않는 아이'라는 수식어를 더해주셨다. 그 집요함이 오랫동안 애정 어리게 지켜봐 주신 교수님 덕분이었다는 것을 그분은 알까? 삶을 사랑하게 된 것도, 해야 하는 것 뒤로 꾹꾹 눌러 담았던 슬픔과 그럼에도 얽히고 싶다는 욕망을 차분히 지켜봐 주고 질문해주셨던 존재가 내 삶에 있어서였다. 그 덕분에 집요하게 사랑하는 것들을 일상에 녹여내는 삶이 되었고, 나 역시 좀더 느린 호흡으로 사람들을 지켜보며 꾹꾹 눌러 두었던 감정을 안전한 방식으로 돌아보는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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