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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May 11. 2016

지독하게 현실적인, PARIS

모든 여행에 낭만을 꿈꾸고, 영화 속 한 장면을 기대할 수 만은 없잖아?

모든 여행이 꿈꿔왔던 여행이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고, 영화 속에서 본 그 한 장면을 기대하는 여행일 수는 없지 않을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의 무모한 용기는 내게 없고, 학생 때처럼 배낭 하나를 메고 무조건 부딪혀 보는 여행을 하기에는 나의 휴가가 소중하고, 그렇다고 무계획으로 여행을 떠나자니 불안하고, 나는 힐링을 원하고. 어딘가 존재할 1%의 나와 비슷한 당신들을 위한 지독하게 현실적인 파리 여행기


학생 때는 잘만 하던 조사하기, 나도 수강 계획표의 달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직장생활 1.5년은 나를 게으름뱅이로 만들어 버렸다. 일단 휴가를 신청한 것, 그 일정에 맞추어 비행기 표를 산 것 까지는 좋았다. 정말 가긴 가는구나 하는 느낌과 휴가 하나만 바라보며 힘내는 한 주, 한 주. 하지만 막상 계획을 짜려고 생각해보면 몸은 피곤하고 눈꺼풀은 감기고, 인터넷에 정보는 너무나 넘쳐나고. 여행 계획? 사전 계획? 뭐 어디서부터 짜야하는 걸까. 항상 가던 휴가는 내게 익숙한 한국과 일본이었기에 사전조사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떤 미술관에 가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도대체 미술관이 얼마나 많고, 루브르 박물관은 얼마나 크길래. 그냥 다빈치 코드에 나왔던 그 역삼각 유리 피라미드랑 모나리자만 보면 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뮤지엄 패스는 또 뭐지 그것도 어디가 싼지 알아보고 사야 한다고? 어후, 뭐 이렇게 준비할게 많아! 대체 다들 유럽여행 어떻게 다니는 거지, 나만 게으른 건가 봐. 프랑스 근교 도시도 방문할 수 있다고? 몽쉘 미셸 그게 뭐야 몽쉘통통이 프랑스 과자였어? 무슨 수도원에 볼게 있다고 거기까지 가?



계획없이 참여했던 만족도 200% 몽쉘통통 당일치기 투어 아침 6시 집합, 파리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4시 였다
막상 도착하고서는 디즈니에 나오는 성 같다며 예쁘다고 호들갑 떨었던 mont saint michel 수도원


여행을 계획하고, 또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 계기는 저마다 다르다. 학생이라면 방학기간이나 휴학기간을 이용해 유럽 배낭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직장인이라면 짧디 짧은 휴가를 고이고이 아껴두었다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정해 휴가를 계획하는 경우나 무계획으로 훌쩍 짧은 여행을 떠나 버리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대학교 4년을 일본 유학생의 신분으로 보내고, 정신없고 세상 물정 모르던 싱가포르 해외 노동자 1년 차의 20일 휴가는 한국에 있는 가족 및 친구 방문, 유학생활을 하고도 아쉬움이 가득한 일본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시하게 끝이 났다.



남들처럼 대학생 때 휴학계를 내고 유럽여행을 간다던지, 교환유학을 신청해 유럽에서 대학을 다니며 주변 나라들을 탐방해보는 사치를 부리지 못했기 때문에, 직장인이 되어서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여행을 더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졸업식을 4일 후에 회사에 입사해버린 터라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에 그렇게 나이 스물넷을 먹도록 유럽이라는 땅덩어리에 발 한번 내디뎌보지 못했었다. 함께 가자는 친구의 한마디에 멋대로 정해버린 지극히 현실적인 스물다섯 직장인의 첫 유럽여행, PARIS 입문기!



프랑스의 깊은 역사에 관심이 있어 빛나던 루이 18세 시절의 프랑스의 자취를 되짚어 보고 싶다거나, 수많은 화가, 조각가들의 작품 및 예술에 조예가 깊어서도 아니었다. 프랑스 특유의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어서도, 싸고 맛있다는 프랑스 산 와인을 직접 현지에서 맛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남들은 다 본 로맨스 영화 비포선셋도 나는 본 적이 없어 파리에 대한 낭만을 꿈꾼 적도 없다. 그렇다고 달디단 마카롱이나 밀푀유 같은 디저트 광도 아니었던 나는 지극히 남들과는 동떨어진, 불순하다면 불순할 수도 있는 이유로, 부지런한 대학생들과는 매우 다른 게으른 마음가짐으로 프랑스 여행을 시작했다.



패기 넘치는 배낭 여행객이 되기에는 오피스 생활에 너무 적응해버린 나의 몸뚱이는 너무나 비루해져 있었다. 일상과 사회생활에 지친 멘탈, 덜컥 질러버린 항공권과 얼떨결에 예약을 끝내버린 숙소 예약 만으로 나의 10일간의 파리 여행은 시작되었다. 낭만 따위는 집어치운 지 오래였고 힐링! 노 워크! 불금! 을 외치며 비행기에 행복하게 올라탔다. 휴가다!


파리 야경투어 하면서 한손에서 절대 놓치않았던 와인, 덕분에 야경 모든 사진에는 와인 한병이 들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파리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나라와 도시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에펠탑 사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고, 첫 월급날 나를 위한 선물을 한답시고 덜컥 구매해버린 20개짜리 라듀레 마카롱 한 박스가 말해주듯, 프랑스 파리는 나의 상상 속 낭만의 도시였다.


딱히 조사를 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내 화장대의 배경으로 예쁘게 장식되어 있고, 사진첩 어딘가에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노을 지는 에펠탑과 회전목마 사진을 핸드폰 배경으로 쓴다며 캡처해둔 사진이 있다. 비록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할 생각에 다리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매치기와 흑형들 조심해야 한다는 귀동냥 소리에 덜컥 겁도 조금 났었다. 지하철에서는 소변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하기에 파리의 지하철을 처음 탑승하던 때에는 냄새를 안 맡는다며 우스꽝스럽게 숨을 참기도 했었다. 워낙 자긍심 높은 프랑스 인이기에 영어가 가끔씩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에 걱정부터 앞서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이라는 땅덩어리는 자그마치 10시간 비행 끝에서야 도착할 수 있는 코쟁이들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라는 인식이 강했던 터다.



프랑스, 파리 여행 베스트 샷, 트로이카 광장에서 바라본 에펠탑! 비눗방을 아저씨 땡큐!


수많은 유럽 나라들 중에 프랑스 파리를 유럽 첫 여행도시로 삼은 건

딱 세 가지 지극히 현실적이고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 에펠탑! 프랑스 파리하면 생각나는 금빛의 에펠탑을 직접 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매일 저녁이면 집에 가기 위해 탔던 402번 파란 버스는 광화문을 지나 남산을 넘어 용산을 향해 가곤 했고, 고3이었던 나는 남산타워를 매일 저녁노을이 내려앉는 순간부터 어스름한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정처 없이 올려다보며 버스 맨 뒷자리에서 정신없이 해드뱅잉 하며 집에 가곤 했다. 일본에서의 4년 유학생활 동안, 방학 때면 한국 오는 비행기를 타면서 항상 두 눈에 담았던 도쿄의 마지막 모습은 항상 작은 비행기 창문으로 점점 작아져만 가는 새빨간 도쿄타워였다. 크고, 기다랗고, 뾰족한 나에게는 익숙한 이 두 개의 타워의 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는 그 커다란 황금빛 에펠탑을 두 눈에 담아보고 싶었다.



둘, 직장인의 로망 명품 백!


엄마의 가방을 뺏어서 드는 것도 아닌, 내 돈으로 유럽 현지에서 장만하는 죄책감 조금 덜한 된장질을 해보고 싶었다. 2년 사회인으로 일한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인데 엄청난 된장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해봐도 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두배 가격이라는 명품백, 브랜드 샵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사고,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에서 나도 당당히 쇼핑을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셋, 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파리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명색이 첫 유럽여행인데 같이 사진 찍고, 함께 즐거워할 나의 6년 지기와 함께하고 싶었다는 아주 단순하고, 유럽여행을 오래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게으르고, 파리의 문화와 예술, 건축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철없어 보이는 이유만으로 나는 파리로 떠났다.




  금요일 저녁 자정에 싱가포르를 출발한 비행기는 파리에 아침 일찍 도착했고, 일본에서 출발한 S도 비슷한 시각 CDG공항에 도착했다. 친구가 미리 예약해 놓은 공항 픽업 서비스 덕분에 공항에서 숙소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파리 시내에 들어선 우리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강물과, 금빛으로 빛나는 에펠탑은 아 내가 드디어 파리에 왔구나, 내 휴가가 정말 시작되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공기가 그저 시원하고 달콤하며,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였다. 1년 365일이 여름뿐인 싱가포르에서 2년간 직장생활을 한 내게 있어 9월 말의 가을은 맞이한 파리, 프랑스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가로수들은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고 하늘은 높고 파랬다. 우리를 태운 차는 에펠탑을 애태우듯 멀리서만 감질나게 보여주고는 개선문을 지나 우리의 숙소로 향했다.


긴 비행시간 끝에 파리 숙소에 도착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에 눕기' 그리고 파리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토스트 구워 먹기'. 첫날 관광루트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우리의 지친 몸뚱이를 누일 수 있는 아늑한 숙소가 있으니 일단 누워서 배부터 채우고 생각하기로. 파리의 이국적인 풍경에 당장이라도 거리로 달려나가고 싶었지만, 일주일간 사무실 노동을 한 직장인 두마리는 침대와 휴식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고, 그렇게 지금의 상황과는 상관도 없는 슬픈가사 투성이인 '9월이 끝나면 깨워주세요 :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의 후렴구만을 흥얼거리며 광합성을 시작했다. 6년 지기와 함께하는 참, 지독히도 현실적인 파리여행의 시작이었다.



처음 4박을 보냈던 bonne nouvelle역 근처의 Airbnb, 엘리베이터가 없어 캐리어를 끌고 올라가는데 고생을 했지만 넓은 주방과 거실 그리고 아늑한 침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까망베르 치즈 한 덩이와 마멀레이드 잼, 식탁에 다소곳하게 놓여있던 과일바구니와 식빵, 레드와인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4박, 55만 원/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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