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머리를 묶으라고 하셨다

상처 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by 프시케

엄마는,' 머리를 묶어라',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보자마자
이 말씀으로 하루를 열곤 하셨다.


머리 묶어라.


그렇다면 머리를 짧게 자르겠다고 했더니
그건 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머리가 길든 짧든 머리가 빠지는 것이니
그 흔적을 따로 감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머리를 묶어야 한다고
그러면 된다고 하셨다.

​청소를 하실 때마다
나의 흔적들을 보여주시며
얼굴을 찡그리시곤 했다.


나는 당연히 흔적을 남겼다.
내가 가는 곳곳마다
머리카락을 흘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것이 일상이라면
빠진 머리를 줍는 것도
머리가 빠지면 건져내는 것도
그것도 나의 일부분일 텐데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이런 충돌의 지점을 만나면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곤 했다.


화는 밖으로 내기도 했고
안으로 삼키기도 했는데
삼켰다가 어느 순간 다시 토해내기도 했다.



첫아기를 낳고 100일 즈음 지났을 때였을까.
아기와 집에만 있다가
어딘가 갈 곳이 생겨 들뜬 나는
아기띠를 메고 아기와 함께 버스를 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엄마에게 전송해드렸다.

엄마는 그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이 메시지를 보냈다.


머리 묶어라.


나는 또 엄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는 친구분과 함께 내 사진을 보았는데
친구가 그 사진 속에서 머리를 묶지 않은
아기 엄마인 나를 보며 뭐라고 할까 봐
그게 걱정되어
서둘러 그 말부터 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엄마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도 아니었고
그냥 예쁘다고 하면될 것을 왜 나는 말을 그리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런 엄마를 좀 네가 이해해주겠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전까지 강고하고 엄격하고 단단했던 엄마가
흐물흐물 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내 언어가 필요했던 이유,
내 언어를 갈고닦기 위해
열심이었던 이유,
그 모든 시작은 '엄마'였을 지도 몰랐다.

엄마의 단단하고 한 방향인 진부한 말들
너무 진부해서
너무 규칙적이어서
너무 단선적이어서
너무 일방향이어서
너무 주류여서
그 말의 괄호 안에 담기지지 못하는 마음들에 들썩이며
그 모든 마음을 주워 안고 달리며
엄마를 이겨내기 위해
제대로 분별하기 위해
열심히 읽고 쓰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내가 충분히 커서
내 말로 따박따박 따져서
필요할 때
엄마의 말을 꺾어내고 싶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제대로 펀치를 날리기 전부터
이미 약해지셨고 약했었다.

엄마의 강고함은 강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림에서 나온 방어막이었다.

내가 펀치를 제대로 날리기 시작하면
엄마가 그보다 더한 힘을 모아서
나에게 펀치를 날릴 줄 알았는데
그게
어린 시절에 실감하고 상상했던 엄마였는데
​엄마가 나의 펀치를 피하지 못하고 아파하며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나의 스파링 대상 조차 되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이 더 아팠다.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자신의 말을 하며
엄마의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시간 없이,
서둘러 어른이 되었고 서둘러 엄마가 되었고
돌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너무 많아서
엄마 자신을 돌볼 생각은 할 수 조차 없는 그런 시간들을 지나왔기에
그토록 강고했고
그토록 엄격했고
또 그토록 냉정했음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았다.


엄마는 하나의 언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 언어의 틀 밖으로 벗어나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엄마의 입에 붙은 언어,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는 언어는
방어의 언어, 걱정의 언어, 규칙의 언어, 생존의 언어였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언어가 가진 한계이기도 했지만
부모님 없이 혼자 커야 했던 엄마에게는
가장 유효하고 정확한 언어이기에
엄마로서는 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언어이기도 했다.



나의 스파링 대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엄마가 아니라는 것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일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엄마로부터 풀려났다.



물론 엄마는 크게 달라지진 않으셨다.
여전히 나를 보면

머리를 묶어라, 풀어라,
옷을 더 밝게 입어라
그러면 더 말라 보인다
아니다 이런 배치를 해라
미니멀리즘이란 게 있단다 정리 좀 잘해라
교수의 삶이란 얼마나 멋지니


이런 말을 더미를 나에게
강박처럼 보내곤 하신다.
그러면 나는 그 더미를 살짝 비껴가며


가끔 머리를 묶고
가끔 어두운 색 옷을 입고
엄마를 닮아서 평생 마른 체형이었던 몸이
갑자기 풍만해 보이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모든 청소를 내일로 미루며
딱 오늘치, 최소한의 정리를 하며
엄마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세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산다.


엄마의 말을 듣는 것도 듣지 않는 것도 아닌
엄마의 말에 영향을 받는 것도 받지 않는 것도 아닌

내 삶을 산다.
내 삶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