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하기]에 여섯 개의 글을 쓰며, 많은 분들께서 주신 관심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과장하자면 생명력의 극한을 실험해야 하는 제게 청년의 젊은 생명력은 언제나 주된 관심거리였습니다.
여섯 개의 종단하기는 그런 밑바탕에서 쓰였습니다. 사랑, 청춘, 구원.
사실 저는 세 요소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입니다. 다시 찾아오지 못할 그런 시기를 지나쳤다는 예감,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의심, 섬세한 영혼이 시달려야 하는 피로와 고요라는 운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글을 쓰는 까닭은 저 과학적이고 자폐적인 언어 구조가 리얼리티와 관계 맺을 때 생성되는 생명의 박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름만으로도 떨리게 하는 형식주의자, 기호학자, 사상가들(쉬클롭스키, 로만 야콥슨, 유리 로트만, 미하일 바흐친 등)의 텍스트를 교재로 두고 엄정한 선생님들의 아래서 공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지금의 저를 지탱하게 만드는 생성의 사유, 활달한 생명, 그리고 인간에 대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게 저의 오독일지라도, 저는 제 마음의 뿌리를 그분들께 깊게 기대고 있습니다. 인자하신 눈빛으로 제 마음을 검시하던 노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와 던지신 바흐친 대화주의의 '비종결성' 한 마디의 저는 인생이 뒤흔들렸고, 삶을 괴롭히던 불안정성을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24세의 젊은 학인이었던 바흐친이 <예술과 책임>에서 삶(생활)과 예술의 구체적 책임관계를 얘기할 땐 저는 비로소 그토록 미워했던 제 생애를 끌어안았습니다. 이러한 사례 외에도 러시아 문학이 제게 미친 영향을 크고 거대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한국 예술과 더불어 러시아 문학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다섯 개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윤동주 - 아, 푸르고 고운 당신
2.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 식민과 해방의 크로노토프
3. 도스토옙스키의 실패작? <분신> - 넌 반칸트주의자야!
4. 마야콥스키의 자살 - 강철로 만들어진 우수와 혁명
5. 톨스토이 <유년시절> - 죽음이 예술이 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