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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코치 Aug 05. 2022

비극의 주인공이 정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일어나는 일

시민 케인 해설 5


1. <시민 케인>을 해설한 이유


전에도 지나가듯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고 <시민 케인>에 관해 아무 말이나 늘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희 채널 보시는 분들은 대체로 영화에 관한 전문적인 시각을 갖추고 싶으신 분들이라 짐작하게 되는데요. 극본을 쓰려고 하시는 분들이든, 연출 지망생이든, 비평적인 관심이 있으시든 아니면 영화팬으로서든 <시민 케인>은 피해갈 수 없는 작품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첫 해설작으로 삼았습니다. 반면에 <시민 케인>에 관한 설명은, 특히 데이비드 핀처의 <맹크>가 공개된 이후 날이 갈수록 오염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라도 표준 해설에 해당하는 내용을 정리해서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크, 2020


2. 참고 문헌


저희 채널에서 지금까지 <시민 케인> 편을 쭉 보셨다면 여러분은 <시민 케인>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은 알게 되신 겁니다. 참고 문헌까지 알아두시면 여러 모로 유용하실 겁니다. 국내에 <시민 케인> 해설서가 두 권 — 로라 멀비, 『시민 케인』(동문선), 장 루아, 『시민 케인 비평 연구』(동문선) —  출간되어 있긴 하지만 이건 논문을 쓸 게 아니라면 굳이 읽어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의 다섯 권 정도만 체크해보셔도 되겠습니다. 아니, 이 중에 세 권만 보셔도 충분합니다. 먼저 다섯 권의 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데이비드 하워드, 『시나리오 가이드』(한겨레출판사), 데이비드 보드웰, 크리스틴 톰슨, 『영화 예술』(지필미디어), 앙드레 바쟁, 『오손 웰즈의 영화미학』(현대미학사), 홍성남 엮음, 『오슨 웰스』(한나래), 토마스 샤츠, 『할리우드 장르』(컬처룩)입니다. 이 중 『시나리오 가이드』, 『영화 예술』, 『오슨 웰스』 정도만 읽어보아도, 아니 『영화 예술』과 『오슨 웰스』 두 권만 읽어보셔도 기본적인 내용은 알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을 통독해야 되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시민 케인>에 관한 챕터만 읽어보시면 됩니다. 작품 분석에 관한 내용은 『영화 예술』 제3장 ‘형식 체계로서의 서사체’에서 ‘시민 케인의 서사 형식’ 부분을 읽어보시면 되고요,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을 둘러싼 사건들에 관해서는 『오슨 웰스』에서 홍성남 평론가가 쓴 ‘비평적 사건으로서의 시민 케인’이라는 제목의 챕터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찾아보시기 쉽도록 페이지 수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 예술』은 pp131-144, 『오슨 웰스』는 pp28-51 입니다. 『영화 예술』이 13페이지, 『오슨 웰스』가 23페이지지만  『영화 예술』이 판형이 커서 분량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분류한 세 권의 책 중 한 권인 『시나리오 가이드』에는 ‘사랑’에 관한 설명이 조금 있습니다. <시민 케인>에 관한 챕터는 pp164-174 입니다. 지금 꼬집어드린 이 챕터들만 읽어보아도, 그러니까 다 해서 50페이지도 안 되는 이 정도 분량만 읽어보아도 웬만한 ‘아무말’은 걸러내실 수 있을 겁니다. 



3. <시민 케인> 감상 가이드


제가 한참 전부터 <시민 케인>을 감상하신 후에 해설을 보시라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아직 <시민 케인>을 안 보신 분들도 더러 계실 겁니다. 작품에 관한 기초 정보는 충분히 말씀드렸으니까 오늘은 감상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할 가이드를 드리겠습니다. 우선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니까 당연히 압도적으로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주로 동시대 작품들만 보다가 명성에 떠밀려서 대뜸 이 작품을 보면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시민 케인>이 그리 재미있지 않은 이유를 한 가지만 꼬집어 말씀드려 볼까요.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그 작품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는 대체로 드라마적 긴장이 팽팽하게 형성되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시민 케인>은 드라마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작품이 아닙니다. 드라마적 긴장이 그나마 형성되는 구간은 릴랜드의 회상부 정도입니다. 수잔의 회상에서도 드라마적 갈등 구도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관객을 몰입시킬만한 동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민 케인>이 관객을 매료시킬 것이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셔야 합니다. 대신 저는 <시민 케인>을 5부작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물이라고 가정하고 다섯 번에 나누어 보시는 것을 권하겠습니다. 엉뚱한 소리 같겠지만, 막상 <시민 케인>을 보려니 부담스러운 분들은 한 번 시도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서 <시민 케인>이 여섯 개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여기서 여섯 번째 회상인 레이몬드의 회상은 다른 회상들에 비해 많이 짧습니다. 레이몬드의 회상부터 엔딩까지를 아웃트로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시민 케인>을 큰 덩어리로만 나누면 다섯 개의 덩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행진하는 뉴스, 대처의 일기, 번스틴의 회상, 릴랜드의 회상, 수잔의 회상 이렇게 다섯 개입니다. <시민 케인> 러닝 타임이 두 시간이니까 한 덩어리 당 대략 20-25분 정도 됩니다. <시민 케인>이 아주 재미있진 않아도 못 봐줄 정도로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눠서 보면 다음이 궁금해지기는 할 겁니다. 또한 단편을 보듯이 한 덩어리씩 보면 감상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을 테고요. 주말 제외하고 하루에 한 덩어리씩 본다고 하면 일주일 안에 볼 수 있겠지요? 일단 이렇게 한 번 보고, 나중에 <시민 케인>의 의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보십시오. 마침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더 좋겠네요. 아무래도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보는 걸 비난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비난은 제가 받을 테니까 <시민 케인> 보시기 부담스러운 분들은 한 번 시도해보십시오. 우리가 <시민 케인>을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니잖습니까? 봐야 되니까 보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장면 분석 연습

제가 <시민 케인>에서 드라마적 긴장이 그나마 형성되는 구간은 릴랜드의 회상부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작품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릴랜드의 회상이 한 번 단절되고, 두 번째 회상이 시작되는 지점, 즉 케인과 수잔이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극적 긴장이 급격하게 고조됩니다. 지금부터는 직접 장면들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극적 긴장이 어떤 식으로 구축되어 가는지 설명드리겠습니다. 극작가나 연출가로서 영화를 복기하거나 분석적으로 볼 때 일차적으로는 제가 지금 설명드리는 지점을 파악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릴랜드의 첫 번째 회상에서는 케인과 에밀리 노턴의 부부 관계가 소원해지는 과정이 간략하게 제시됩니다. 에밀리는 남편 케인에게 섭섭함을 드러내지만 케인은 에밀리의 섭섭함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둘 사이에 대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첫 번째 회상이 끝나고 릴랜드가 뜬금 없이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자 톰슨이 릴랜드의 말을 자르듯이 수잔에 대해 묻습니다. 


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릴랜드


릴랜드는 케인과 수잔의 첫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부터 두 번째 회상입니다. 비가 온 어느 날 밤 마차가 지나갈 때 길가에 서있던 케인은 구정물을 흠뻑 뒤집어씁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수잔이 키득거리며 웃은 게 미안했던지 도움을 주겠다고 합니다. 케인은 어영부영 수잔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수잔의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둘 사이에 묘한 애정 기류가 생겨납니다. 우리는 바로 직전에 케인이 에밀리를 아주 냉랭하게 대하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수잔에게는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신사의 모습을 보입니다. 릴랜드의 회상부의 드라마적 긴장은 우선 이 대비를 통해 구축됩니다. 


신경질적인 남편과 유머러스한 신사의 대비


이어지는 장면은 주지사 선거 연설 장면입니다. 여기서 케인은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힘써온 사회 운동을 정치인으로서도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주지사가 되면 곧바로 부패를 척결하고 노동자와 소외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연설은 너무나 성공적이었고 관계자들은 이 연설을 기점으로 그의 당선이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합니다. 케인의 아들 올리버도 아버지를 무척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유세장을 나서며 에밀리는 아들 올리버를 먼저 집으로 보내고 따로 택시를 잡아 케인에게 어딘가로 가자고 합니다. 바로 수잔의 집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극적 긴장이 고조됩니다. 여기서도 수잔과의 애정이 싹트는 장면과 정의를 외치는 케인의 연설 장면의 몽타주적인 배치가 은근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생활에서의 외도와 공공장소에 부르짖는 정의를 대조적으로 보여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연설을 마치고 모두가 한창 들떠있을 때 에밀리가 예고없이 케인의 결점을 파고듭니다. 즉 케인에게 결점이 생겼고 그 결점이 곧바로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지금 이 상황은 주인공이 뜻밖의 곤경에 처하는 상황입니다. 여러 차례 강조해서 말씀드렸지요. 극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설정입니다. 갈등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극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극적 긴장이 고조되면 관객의 몰입도도 높아집니다. 따라서 이러한 설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하는가가 극본 쓰기와 연출의 핵심입니다. 물론 극적 긴장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시민 케인>도 그런 작품 중 하나고요. 그렇지만 지금 이 장면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오손 웰스, 그리고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허먼 맨키비츠는 그걸 할 줄 알았습니다. 구사할 줄 알지만 안하는 것과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은 다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수잔의 집에 도착한 에밀리와 케인


다시 장면 분석으로 돌아와서, 이제부터 펼쳐지는 장면이 <시민 케인>에서 극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장면입니다. 에밀리가 케인에게 갑자기 수잔의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우리가 꼭 캐치해야 하는 지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시간의 생략입니다. 케인이 수잔의 집에 처음 가게 된 날과 조금 전에 연설을 끝낸 이 날이 보기보다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에밀리가 주소까지 알아냈다는 건 케인이 수잔의 집에 수 차례 들락날락 했음을 추측케 하니까요. 두 번째는 관객들은 이 생략된 시간동안 케인과 수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둘이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시점에 연인 관계로까지 나아갔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아주 영리한 전략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도적 생략으로 긴장이 한껏 고조된 채 관객들은 케인과 에밀리와 수잔의 삼자대면, 즉 극도의 갈등 상황을 맞이합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몰입감이 생겨납니다. 이제 케인과 에밀리가 수잔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 주인이 문을 열어주며 케인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케인이 곤란함이 가중되는 듯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수잔이 문밖에 나와 케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잔의 뒤에서 케인의 정치적 경쟁자인 짐 게티스가 나타납니다. 짐 게티스가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인 케인을 저지하기 위해 케인의 치부를 물고 늘어지려는 것입니다. 수잔이 에밀리에게 편지를 쓰게 해 에밀리와 케인을 수잔의 집으로 불러들이고 수잔, 에밀리, 케인을 삼자대면케 해서 에밀리 앞에서 케인에게 최대한의 굴욕을 줍니다. 이제 케인은 딜레마에 놓입니다. 꿋꿋이 주지사 선거 레이스를 마칠 것인가? 수잔을 지킬 것인가? 또는 가족을 지킬 것인가? 수잔을 지킬 것인가? 케인은 오기를 부려 끝내 수잔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제자리로 돌아갈 것인가? 수잔을 지킬 것인가?


결국 케인과 수잔의 스캔들은 큰 화제가 되고 선거는 엉망이 됩니다. 케인의 절친인 릴랜드마저 크게 실망해 케인에게 독선적인 위선자라며 독설을 퍼붙고 인콰이어러사에서 나가겠다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드라마적 긴장의 측면에서 짚어볼만한 점이 미미합니다. 릴랜드와 수잔이 케인에게 각을 세우는 모습, 그럼으로써 케인이 두 사람을 잃게 되는 과정이 펼쳐지는데요. 드라마적 긴장을 구축하는 정교한 설계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예고


이런 장면 분석은 영화를 함께 보면서 설명드리는 것이 좋지만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면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장면 분석을 진행해보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완결된 콘텐츠로 전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이걸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아직은 적당한 방법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겪어나갈 듯합니다. 그리고 분석하는 작품들은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작품들 보다는 여러 사람이 두고두고 볼 수 있도록 표본이 될만한 작품들을 분석해볼 것입니다. <시민 케인> 다음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생충> 다음 작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분석해보았으면 하는 작품들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반영해서 선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생충> 분석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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