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휴머니즘을 찾아서
# 002 두 번째 이야기
by NomaDarling Oct 30. 2020
현실감 떨어지는 이 몽상녀의 커뮤니티를 찾던 꿈은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웃 나라인 스페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에 비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포르투갈 남부의 작은 바닷가 마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끼치는 영향이 아주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외출의 동선이 제한이 되고, 아직까지는 가벼운 산책이 허용이 되었으나 바닷가 산책까지도 금지가 되었다. (이는, 확진자 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리스본 Lisbon이나 포르토 Porto, 브라가 Braga처럼 북쪽 도시의 사람들이 남부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었다.) 일정한 시간이면 밖에서는 경찰 차량이 지나가며 메가폰으로 "집에서 머물어라"라고 메시지를 남겼고, 온갖 미디어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들을 알리며 공포를 조장했다. 이렇게 조금씩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자유를 얽어 매고, 목을 죄어갔다. 무언가 알 수는 없었지만 잘못 되어가고 있었다. 모든 세상이 고립 되어져 가고 닫혀져 갔다. 커다란 변화가 필요했다. 위기를 기회로 돌려라!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 닥친 이 위기를 기회로 돌려보기로 했다.
거실에서 바닷가가 훤히 보이고 집에서 10미터만 나가면 바로 바닷가인 이 멋진 집을 정리하고, 우리 가족은 캠핑족 친구들과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이 캠핑족 친구들은 각기 자기들 나라에서 포르투갈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서, 혹은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포르투갈에 머물다가 만나게 되었었다.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조금씩 어른들도, 아이들도 우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의 진면모를 알아본다고, 이들 중 몇몇 가족은 각기 자신의 길을 떠났고, 몇몇 가족들은 서로 흩어져야 한다는 다른 지인들의 충고와는 반대로 오히려 똘똘 뭉쳐서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거쳐를 찾아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 또한 자기 일처럼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왔고, 서로가 아끼는 진심을 확인하게 되었었다. 거대한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우리 가족을 커뮤니티 만드는 초석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정말 특별한 순간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변을 살핀다. 현대 사회에서 점차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휴머니즘을 찾아서 우리는 또다시 떠나려고 한다.
몇 주 전부터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숲이 우거진 땅을 함께 사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프로젝트 얘기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은 한국에서 지내던 20대 시절부터 나의 오래된 미래 프로젝트였었다. 한국에서 커뮤니티적 코 하우징 Co- Housing 공동생활을 꿈꾸던 유별난 한 여자가 유럽에서 만으로 마흔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드디어 꿈을 이루려는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동반자인 이탈리안 남편 지오르지오 Giorgio와 우리들의 아이들과 함께 그려가는 커다란 그림 속에서, 나의 구름 위를 걷는 듯 환상적이기만 했던 꿈들이 조금씩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꿈꾸는 자는 꿈을 이룬다고 하지 않았던가! 뜻이 맞는 좋은 가족들을 못 만났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각자의 직업과 사정이 다르기에 커뮤니티가 구성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5~6 가족들이 같은 뜻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하려는 지금 이 순간은 정말 특별하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우리에게 닥친 커다란 위기가 삶을 전환해주는 커다란 기회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은 길 위의 만남들이 겹쳐지며 이루어진다.
개인적으로 "집"이라는 의미가 주는 다 복합적인 메타포를 좋아한다. 집이라는 의미를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있다. 집의 물리적 공간이란, 말 그대로 내가 살고 있거나 살았었던 집들을 의미한다. 지난 8년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물리적 공간적인 집은 일 년에도 2-3군데를 바꾸어 다니면서 살아왔었다.(남편의 일 관계와 노마딕 한 삶을 선택한 우리 가족의 선택이었다.) 집 한 곳 한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그 공간을 최대로 이용했으며, 떠날 때에는 서운한 마음과 다음으로 갈 곳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뒤섞여서 다음 집으로 떠났다. 심리적 공간으로써의 집을 개인적으로 서술해 보자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곳, 그곳이 집이라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족이란, 굳이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유럽 땅을 밟고 나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아이 하나가 자라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 말이 갖는 의미는 양물적인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자라는 데에 커뮤니티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공동적인 삶의 가치관과 교육관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한다. 이는, 내 자식만이 아니라 모두의 자식들이 나의 자식들이 됨을 의미한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이란 게 부모들 만에 아닌, 모든 공동체의 어른들과 자신보다 조금 더 큰 친구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가 가진 재능을 발휘해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요리를 잘한다면, 아이들과 다 같이 요리를 할 수 있고, 누군가가 목공 일을 한다면, 아이들은 그/그녀를 보며 망치와 톱을 손에 쥘 것이다. 누군가가 악기를 연주한다면, 매일같이 들리는 음악에 자연스럽게 연주를 시도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출 것이다. 누군가가 텃밭을 갈고 있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텃밭 일을 함께 할 것이다. 누군가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나의 모국어 이외에도 세상에 다른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언어를 기꺼이 배울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어른들이나 자신보다 큰 아이들이 하는 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고, 나보다 작은 아이들을 돌보는 책임감을 배우게 되며, 자신의 힘과 능력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배우게 된다. 또한, 커뮤니티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어려움을 가까운 그/그녀와 나눌 수 있고, 이들 중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면 내 일처럼 모두가 나서서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나의 이웃이 누군지 알지 못하거나 인사 없이 어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그들과 삶을 나눔을 의미한다.
이제 곧 우리는 다음 인생의 페이지를 넘기려고 한다.
커뮤니티를 만들기 전, 이미 아이들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어우러진다.O troveremo una strada o ne costruiremo una.
Annibale (247- 182a.c)
길을 찾거나 새로운 길을 만들자.
카니발 (249 - 182a.c)
오늘 이탈리안 셰프 남편이 내게 남긴 메시지이다.
참고: 카니발 Annibale : 이들은 로마시대 코끼리를 타고 보이지 않게 공격하기 위해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와 로마인들을 공격해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이탈리아 남부까지 쳐들어왔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