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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ug 31. 2018

나는 고집이 센가 보다

rural farming (August 1st, 2018)


"지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깨서는 1시간 넘게 쉬질 않고 빽빽 우는데, 어찌나 고집이 세던지!" 이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고집 세다’는 말이다. 이모는 갓 돌이 지난 아기가 1시간 넘게 엄마를 찾으며 목이 터져라 우는 소리에 꽤나 놀랐었나 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모는 외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모에게 맞장구치는 다른 가족은 없었다. 고집 세다는 소리를 듣기에 나는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모범생으로 컸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고, 채소 이야기를 해 본다. 요즘은 “딸기는 어느 계절 채소*일까요?”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겨울”이라고 답한단다.(N지식인 답변 중에도 ‘겨울’이 꽤 된다.) 딸기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릴 적에만 해도 수박은 한여름의 상징이었지만, 요즘은 5월만 돼도 시장에서 쌓아 놓고 파는 것을 본다. 시설 재배화가 증가하고, 냉장창고 보관이 쉬워져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을 1년 중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이젠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딸기를 겨울 채소로 알고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건 뭔가 서운하다.  

텃밭 농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모호해지는 제철 채소 맛을 보겠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친숙하지 않지만 절기 이름들을 익혔고, 남부지방 농사 달력을 기준으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입하(5월 5일)가 갓 지난 읍내 장날이었다. 웬 노란 더미들이 보였는데 뭔지 전혀 예상을 못하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참외를 쌓아 놓고 파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5월 초에 참외가 나와요?”했더니, 주인아저씨가 무슨 무식한 소리 하냐는 투로 “참외야 버얼써 나오기 시작했지!”하셨다. 내게 참외는 더위 속, 갈증이 날 때 슥슥 깎아 먹으면 꿀맛인 여름 채소인데, 5월 초에 쏟아져 나온다니!      

참외의 노란색은 내 눈을 끌었지만, 봄에 먹긴 서운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모종상을 찾아갔다. 오이 새싹과 비슷한 모양의 참외 모종이 있었다. 모종을 사 와서 텃밭 길잡이 책을 찾아봤더니, 참외는 20도가 넘는 기온을 좋아한다고 했다. 며칠을 기다려 참외가 좋아할 날씨가 충분해졌을 때 밭에 옮겨 심었다. 새로 뿌리를 내리기만으로도 힘들 텐데, 나의 참외는 또 다른 수난을 겪었다. 오이잎벌레가 찾아와 여린 참외 새싹을 탐했다. 곧 잎이 너덜너덜해졌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어져 양파망을 뒤집어 씌웠다. 잎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고 나자 죽은 잎 아래에서 새로 싹이 났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나의 참외는 차츰차츰 자랐고, 마침내 8월의 첫날이 되었다.  

8월이 되기까지 수도 없이 참외를 봤다. 30개에 만원하는 참외 꾸러미도 봤지만 내심 기다렸다. 느리지만 언젠가는 열매를 내어 주리라 기다리게 만드는 ‘나의 여름 참외’가 있었기 때문이다. 8월 첫날, 드디어 만났다. 참외 덩굴 속에서 샛노랑이 포착됐다. 밭일을 마치고 내려와, 땀을 씻은 뒤, 맛을 봤다. 노란 껍질째 먹어 본다. 평소에 먹던 참외보다 좀 덜 달지만,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갈증이 싹 가셨다. 다시 한 입 깨물었을 때 번뜩 옛 생각이 났다. ‘나 고집이 센 건가?’ 이모가 말한 그 고집 센 아기가 내가 맞는 것 같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된 여름. 내년엔 이 고집으로 겨울딸기가 아니라 초여름 딸기에 도전해 보련다 :)  


*농사를 책으로 먼저 공부하는 내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 채소와 과일을 구분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다년생이면 과일, 일 년생이면 채소이다. 두 번째는 나무에서 열리면 과일, 그렇지 않으면 채소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일상에서 과일이라고 부르는 딸기, 참외, 토마토, 수박 등은 모두 채소가 된다. 과일이라고 해도 무관하겠지만, 이 글에선 기준에 맞춰 용어를 사용했다.


모종을 옮겨 심자마자, 해충의 피해를 입는 수난을 겪었다 (5월말), 7월말부턴 열매가 하나 둘 열렸고 마침내 샛노랑을 만났다 :)


#작물 재배 이야기는 노지에서 비닐 멀칭 없이, 퇴비와 비료를 뿌리지 않고 키우는 과정을 기준으로 한 것임.


#나의작은숲 #구례 #시골농사 #여름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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