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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Dec 09. 2018

그리하여, 나로 살아 가자

브런치팀과의 약속대로 <써바이써바이 치앙마이> 매거진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연재 탓에 치앙마이에 빠져 있으니 날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퐁퐁 넘쳐나는데, 마지막 연재일이 다가와 버렸다. 갑자기 글을 마무리하려니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고민만 하다 지난주엔 심지어 '펑크 사고'도 냈다. (순전히 내 능력 부족이다 ㅠㅠ) 처음부터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배웠던 것을 공유하고자 시작한 연재였으니, 그 기획의도에 맞게 치앙마이가 가장 크게 나의 삶을 변화시킨 부분을 이야기하며 매거진을 마무리하려 한다.


치앙마이대학을 떠나던 날 찍었던 푸른 캠퍼스 모습은 늘 내게 아련함으로 다가온다 (2016)



현실에서 도망치느라 치앙마이에서 학생이 되었다가, 일상을 선물 받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느라 치앙마이로 떠났고, 안전하고 편한 도망자가 되기 위해서 치앙마이대학교 대학원생이 됐다. 어쩌다 대학원생이 되어 인류학 수업을 듣고, 현장 연구를 다니며 논문을 쓰는 과정은 내 삶에서 또 하나의 산을 넘는 시간이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마치 작은 우물로 몸을 던지는 것처럼 여겨졌다. 특히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여 연구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인류학 연구자가 되어 보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하나의 산을 넘는 것 같은 도전의 2년 6개월이었지만, 이전까지 내 삶에서 경험했던 '산을 넘는 시간들'과 뭔가가 달랐다.

 

무엇이 달랐을까? 나는 치앙마이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 영화 한 편이 같이 생각난다. 2007년에 개봉했던 일본 영화 <안경>이 그것이다. <안경>의 주인공은 핸드폰 조차 터지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어느 바닷가 마을 민박집에 묵는다. 둘러봄직한 관광지 하나 없는 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 4명과 바닷가에서 매일 아침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고, 간식으로 팥빙수를 먹고,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을 하고, 모두가 모여 신선한 음식을 (맥주와 함께!!) 먹는 것. 이것이 하루의 전부인 이 영화가 왜 나의 치앙마이에서의 시간과 오버랩되는 것일까?

 

<안경>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하루는 나의 하루와 닮았었다. 치앙마이에 도착해 처음 몇 달은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바쁘게 다니는 관광객 모드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홀로 치앙마이에 온 나의 하루는 결국 단순해졌다. 아침에 캠퍼스에 도착하면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에 있다가, 동기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체육관에서 요가를 한 뒤 장을 봐 저녁을 해 먹으며 맥주 한 잔 하는 것. 이것이 나의 하루였다. 특별한 일 하나 없이 굴러가는 하루하루의 반복을 한국에서는 답답하거나 지루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치앙마이에서 나는 단순한 하루 속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경험을 했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른이 넘어 치앙마이에 가서야 경험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써바이써바이(태국어로 '편안하다, 건강하다, 쉽다, 행복하다'란 뜻의 써바이를 강조하며 두 번 사용한 말로 이 단어는 태국 대표 인사말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쓴다) 정신을 장착한 치앙마이 사람들의 일상은 늘 여유가 넘쳤다. 치앙마이라는 도시 전체가 여유와 풍요를 담고 있는 큰 그릇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였을까?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치앙마이의 써바이써바이 정신과 여유의 기운은 발을 동동 구르던 나를 늘 한 템포 쉬고 가게 만들었다.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치앙마이 사람들을 볼 때 알았다.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나만 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빨리빨리" 란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써바이써바이"로 대신했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은 듯 보이지만 한없이 평화로운 표정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마주할 때마다 발견했다. 이토록 많은 것을 가지고도 여전히 또 다른 욕심 탓에 내 얼굴엔 전혀 평화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찾기보다, 이미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누려 보려고 했다.

 

치앙마이 사람들을 거울 삼아 써바이써바이하게 내가 가진 것 안에서 기쁘게 지내는 연습을 하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하루와 순간순간이. 삶의 즐거움과 소중함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 여유 있고 만족하는 마음 상태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조롭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일수록 ‘지금 이 순간’과 ‘지금 내 앞의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능력을 높인다는 것도 알았다.

 

한국에서의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치앙마이로 도망쳤던 내게 치앙마이는 걸음마처럼 어쩌면 살아가며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일상의 기쁨’을 가르쳐줬다. 일상의 기쁨을 분명히 알고 나자, 인류학 공부를 하고 현장 연구 논문을 쓴다는 하나의 산을 넘는 과제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취하거나 해결해야 한다고 여겼던 목표들에 내 일상을 점령당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2007년에 개봉했던 일본 영화 <안경>의 한 장면



누구도 아닌, 나로 산다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정말 중요하다. 자기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으면 여러분은 어느 누구와도 진실해질 수 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진실할 수 있는가? 모든 비난을 넘어서, 모든 분별을 넘어서, ‘해야 한다’ 혹은 ‘해서는 안 된다’ 따위를 넘어서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가?”

아디야 샨티,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2011

 

치앙마이에서 일상의 기쁨을 누리는 날이 늘어갔다. 단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이 풍요롭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 그 시간 속에 내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나아 보여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 치앙마이에도 절이 많다. 놀러 왔던 친구는 "무슨 한 집 건너 다음 집이 절이냐!"라고 했을 만큼 치앙마이 시티에만 300개 넘는 절이 있다. 그 사원마다 불상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동네를 걷다보면 길 모퉁이나 어느 집 마당 개인 사원에서도 불상을 볼 수 있다. 물론 또 각기 다르게 생겼다. 이토록 많은 불상들은 모두 다른 자세, 다른 표정, 다른 크기다. 부처는 한 분일 텐데, 다 다르게 생긴 부처들은 마치... 내게 늘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모두 달라. 넌 너지. 난 나고."


나는 나다. 늘 머리로 알고 있었던 명제지만, 한국에서 나는 나로 살았던 시간이 (치앙마이와 비교하면) 확실히 적었다. 능통하게 태국어나 영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계에 치우치는 시간이 줄고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치앙마이 친구나 이웃들을 내 비교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치앙마이에서 나는 더 나에게 집중하며, 남과 비교하는데 나를 쓰기보단 오롯이 나를 아꼈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매 년, 새해를 앞두고 발행하는 <트렌드 코리아>에선 2019년의 트렌드 중 하나로 ‘나나랜드(as being myself)’의 등장을 꼽았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단다. 이 예상을 읽으니 나와 같은 동지가 늘어난다는 것이 기쁘다. 무엇보다 나나랜드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나나랜드도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에 타인을 존중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라서 더 반갑다.

  

종교와 관계 없이, 치앙마이의 불상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2015)

 


결론으로 돌아와서-

내게 치앙마이에서 장기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박사 코스로 이어가며 계속 학생으로 살 수도 있고, 꽤 많은 INGO들이 있는 도시에서 한국에서의 경력을 이용해 취업을 할 수도 있고, 한류 아이템으로 창업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치앙마이에서의 생활을 지속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일상을 기쁘게 살아가며 자존감이 단단해지면 질수록, 그리운 사람들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치앙마이에서의 생활도 너무 좋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중요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치앙마이에서 새로 맺은 소중한 관계도 많았지만, 다른 차원이었다. 한국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치앙마이로 올 순 없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미루며 살지 않기로 했으니, 선택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행을 택하며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치앙마이에서 배운 대로, 생각한 대로 살고 싶었다. 써바이써바이 정신으로 살고, 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치앙마이에서처럼은 할 수 없겠지만, 한국에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최대한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선택의 상황에서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가 주도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1년 내내 갖가지 꽃이 피는 치앙마이. 꽃이 피고 지는 일상조차 삶의 기쁨임을 깨달았다 (2015)



1년 후... 치앙마이에 보낸 편지


치앙마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 후 어느 날. 치앙마이대학교 사회과학대 RCSD(Regional Center for Social Science and Sustainabl Development)에서 발행하는 연보를 준비 중인 스텝이 내게 연락이 왔다. 졸업생들의 소식을 담는 코너가 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RCSD에서 공부한 뒤의 삶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등에 대한 짧은 편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짧은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다. 한국에서도 써바이써바이하게 내가 사랑하는 나로 살자고 했던 나의 목표는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이뤄지고 있음을. 그리하여,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RCSD 멤버 여러분!
2016년에 졸업 후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아나입니다.

치앙마이에서 돌아온 뒤 현재 저는 농촌 시골 마을로 이사해 적응하려 노력 중입니다. 치앙마이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저는 지금까지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의 농촌 지역 사람들과 일을 하고 그곳에 대해 공부했지만 정작 내가 나고 자란 땅의 농촌 사회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부하면서 저는 계속해서 연습했습니다. '개발과 발전'이나 '자립과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제 삶과 연결해 보는 훈련이었습니다. 이 연습을 하면서 저는 자립적으로 제 삶을 지속가능하도록 하고, 스스로 성장하며 주변을 한 뼘만큼이라도 발전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적합한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 변화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농촌 시골이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 보려 합니다.

제가 새로운 환경에서 저만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남을(survive)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안녕~



씨앗은 신비롭다. 어떤 잎과, 꽃과 열매를 맺을 것인가가 씨앗에선 보이지 않지만 씨앗 없이는 모두 불가능하니까. 나는 그런 씨앗을 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2016)



<써바이써바이 치앙마이> 일요일 위클리 매거진 연재를 이것으로 마칩니다.
제게 공개적 글쓰기는 언제나 두렵고 떨리는 도전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글쓰기를 놓치지 않는 가장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기한이 정해진 위클리 매거진에서 다루지 못한, 남은 치앙마이와 그곳 사람들 이야기는
매거진 <써바이써바이 치앙마이 2>에서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단 한 명의 바로 당신에게 구례에서 감사 인사를 보냅니다.
추운 겨울, 건강하게 보내세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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