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al recipe (July 17th, 2018)
“뭐 해 먹고 지내세요?” 이 질문이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서는 함축하는 의미가 많다. 1)이리 더워서 불 지펴 밥하기 힘든 때 2)밥 잘 챙겨 먹고 있는지 3)먹는다면 대체 무엇으로 끼니를 때우는지. 이런 복합적인 한 문장으로 이웃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 한여름이다.
한여름 농촌은 오히려 고즈넉하다. 물론 해가 뜨기 전이나 사라지는 시간에 드문드문 논밭에 일하는 사람이 보이기도 하지만, 강렬한 태양이 군림하는 동안은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는’ 편이다. 이런 고즈넉한 여름 밭의 주인은 고추다. 햇볕의 기운을 받으며 쑥쑥 자라는 작물들이 많지만, 농사 인생 평균 4~50년 되는 우리 동네 어르신들 손길이 가장 자주 가 닿는 것이 고추다.
다른 작물에 비해 수익성이 높아 농사를 많이 짓는 편이기도 하지만, 고추는 손이 많이 간다. 키가 자라는 동안에는 지지대에 끈을 묶어 줘야 하고, 한여름 풋고추가 빨갛게 변하고 나면 하나씩 따다 햇볕에 며칠을 말려야 한다. 또 병이 잘 걸리는 편이라,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우기가 힘든 작물에 속한다. 한 해 고추 농사를 지어 보고 나면, 왜 고춧가루 가격이 비싼지, 아니 비싸야만 하는지 알게 된다. 어렵게 얻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고추는 본디 남아메리카 열대 지방의 나무다. ‘고추나무’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우리에겐 봄에 심어 가을에 죽는 풀처럼 인식되지만, 실제 이 생명체의 정체성은 나무로 여러 해 살아간다. 뜨거운 태양 속에서는 한 그루의 나무로 살아가는 고추가 겨울이 있는 이곳에서 한해살이 병약한 운명이 된 것이다.
불 켜서 밥만 해도 땀과의 전쟁이 되는, 한 끼 해 먹기 힘이 드는 한여름. 아니, 밥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더위 탓에 입맛이 뚝 끊기는 한여름. 평소에도 소박한 밥상으로 사시는 동네 어른들의 식사가 이맘때면 소박하다기 보단 한없이 단출해진다. 나도 동네 어른들처럼 먹어 본다. 식은 밥을 찬 물에 말아서 먹고, 소면만 삶아 냉동해 뒀던 육수에 넣어서 먹는다. 정말 말 그대로 맛이 없을(無)것 같은 한 그릇.
그런데 따라 먹어 보고서야 알았다. 이 음식의 핵심은 사실, 고추에 있다는 것을. 풋고추를 뚝뚝 따와서 된장에 찍어 찬 밥알이든 소면과 함께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뜨거운 잉카문명의 기운을 잔뜩 받으며 자라는 습성 덕분인지, 고추를 먹으면 더위를 이길 기운이 솟는 것도 같다.
집에 고추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좋겠다. 여름 밥상의 만식통치(萬食統治)자지만, 한겨울에 마당에서 똑똑 따와 먹는 맛도 궁금하다. 그러려면 25도 이상이 유지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계절 있는 우리 땅의 순리대로, 풋고추는 여름의 맛으로 알고 그냥 지금 많이 먹어 둬야겠다.
*동네 분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 조금 키우는데다, 제 때 제 때 농약을 칠 자신도 없어서 어쩌다 보니 유기농 고추 농사를 짓고 있다. 유기농 고추 농사는 벌레 먹는 고추가 많아 수확량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약을 치지 않으니 아무 때고 고춧잎을 따다 나물을 해 먹을 수 있으니 좋다. 은근한 고추향과 함께 쌉싸름한 고춧잎 나물은 별미다.
rural recipe-고춧잎 나물
1 소금을 넣은 물이 팔팔 끓으면 손질해 둔 고춧잎을 잠깐 넣어 데친다
2 데친 고춧잎을 찬 물에 씻고 체반에 건져 물기를 뺀다
3 볼에 물기 뺀 고춧잎을 넣고, 다진 마을과 소금 혹은 된장으로 간을 한 뒤 마지막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한뿌린다
4 그릇에 담아 낼 때 통깨를 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