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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Jan 11. 2019

심심안해

rural hobby #01 (September 16th, 2018)


“뭐 잼난 거 없어?” 카톡에 새 메시지가 떴다. 이번엔 누굴까? 지난달에 15년 다닌 회사를 관두고 처음으로 백수가 된 선배일까, 복지 기관이라 바쁠 줄 알았는데 사무담당이라 일이 없을 때가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친구일까. 아니면... 퇴직한 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엄마일까? 그도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 눈앞에 흘러가는 것이 어색하고, 심심한 누군가일까?  

‘심심해.’
한 번도 내 입으로 말해 본 적 없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바쁘게만 살아온 것도 전혀 아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여느 수험생들처럼 가는 시간을 붙들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 대학생이 되고선 학과 공부에, 아르바이트, 동아리 그리고 연애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던 시절도 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몇 날 며칠 잠을 못 자며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학이면 집에만 틀어박혀 몇 주를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이였고, 대학 졸업 후 여자 동기들은 모두 취업을 하고 남자 동기들은 복학했을 때 나는 백수가 되어 1년을 혼자 놀기도 했다. 그리고 시골로 이사 온 뒤, 지난 4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까지도 완벽한 자유인이었다.   

나는 집에 박혀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도 해 보고 싶거나 재미있는 뭔가가 늘 있었다. ‘취미가 뭐냐?’라고 물으면 일반적인 취미 목록에 들어갈 법한 것으로는 ‘독서’를 겨우 답할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시간을 정해 의도적으로 책을 읽는 편이라,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취미를 독서라고 하기엔 적절치가 않다. 그리하여 내가 짬짬이 시간에, 혼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하려면 늘 곤란해진다. 남들에게 뭐라고 말로 하기 어려운, 다 별 볼일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시골에 오자 더 많은 재미난 것 투성이 속에서 정신없는 1년을 보냈다.    

본래 사물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사람이 찍힌 사진을 가장 좋아하지만, 모르는 사람을 찍는 것은 어려웠다. 사물은 찍히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할 일이 적었고, 또 나를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시골에 오니 내가 익히 알던 사물의 영역이 더 확장됐다. 새로운 형태와 색깔 그리고 개성이 있는 사물들이 넘쳐났다. 밭에도, 길에도, 숲에도 심지어 집 앞마당에도. 카메라를 꺼내게 만드는 사물들이 매일 새롭게 보인다. 가을 산을 산책하면서는 다람쥐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 도토리를 탐했다. 발 옆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주워 모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각기 다르게 생긴 것이 꼭 사람 얼굴 같다. 대머리를 만들었다가, 모자를 다른 종류로 씌웠다가, 서로 대화하는 커플처럼 만들었다가 하며 사진을 찍느라 오후를 흘러 보냈다.

시골살이에서 나를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들... 돈도 되지 않고, 경력으로 쌓이지도 않고, 남들 보기에 매력적이지도 않은 취미들... 그렇지만, '어쩌겠어~ 난 이런 게 재미있는데;;;' 하며 나는 오늘도 심심할 틈 없는 하루를 보낸다. “뭐 재미난 거 없어?" 하고 묻는 내 사람들도 다들 심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거창한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남들에게 설명하기 애매한 것을 하고 있더라도, 나만 재미있으면 좋은 그런 것. 그런 것들을 하느라 심심할 틈 없는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시간들이야 말로, 나만의 방법으로 나를 채우는 시간일 테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시골에서 내가 틈틈이 하느라 바쁜 나의 취미 생활들을 좀 더 공개해 봐야겠다 ㅋㅋ)




 9월의 사진 찍기 놀이

빨간 고추를 따서 한 움큼 담았다, 그리고 2주 뒤 잘 마른 그 고추들을 다시 담아 찍은 before and after (위) 아기 호박이 막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똑똑 따 놓고 보면 꼭 사람 얼굴같으다 (아래, 좌) 

익지 않은 푸른 단감은 낯설다 (아래, 우)


#나의작은숲 #구례 #시골살이 #사진찍기 #나의취미 #남들이뭐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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