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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Nov 18. 2018

더 이상은 개처럼 취급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아

일본인, Hashimoto상


첫 사전교육(pre-course) 시간에 유일하게 흰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었던 학생이 있었다. 마치 내가 유럽인들을 나라별로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라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구분할 수 없겠지만 나는 구분할 수 있었다.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RCSD에는 전통적으로 일본인 석사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 학습공동체에 일본인 한 명이 포함될 것은 예상 가능했고, 그가 바로 우리 학번의 일본인 학생이었다.


Hashimoto상은 토론 시간에 말수가 많진 않았지만, 늘 핵심을 파악하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같은 문화권에서 왔고, 비정상회담같은 우리들의 수업에서 나와 유사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와는 빨리 친해지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끼리 맥주를 마시러 갔다. Hashimoto상은 술을 그닥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금방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교실에서와는 달리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는 커졌다. '오호라~ 술이 차오르는구나! 이젠 좀 친해질 수 있으려나?'하고 생각하며 나는 Hashimoto상 가까이로 다가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내게 이 노래 아냐며, 술자리에서 한국인들이 부르던 거라며, 기억을 더듬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것도 한국말로!


"음!음!음~ ~들어간다~ 쭉.쭉.쭈욱~"


더듬더듬하는 그의 노래만 들었다면 난 스무고개 하듯 몇 번을 더 물어봐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하는 팔동작을 보니 바로 떠올랐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곧잘 부르곤 하는... 이젠 내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술자리 추임새 같은 노래였다. 난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이 노래를 어떻게 아냐면서 그냥 술자리에서 재미로 하는 거라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런데 그는 끈질겼다. 한국인들이 술자리에서 하는 건데 여기에서도 해 보라는거였다! 뭔가 나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곧 다른 이야기들 끝에... 결국은 터졌다.


"우리는 한국을 우리의 동생(little brother)이라 생각하는데, 왜 너흰 우리를 형(big brother)이라고 생각하질 않아? 우리가 한국인들 잘 살도록 해준게 얼마나 많은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단순한 형제애(brotherhood)의 이웃국가도 아니고, 동생같은 나라라니! 난 최대한 침착하게 웃으며 물었다.


나: 형제면 형제지. 왜 위아래가 있어?

Hashimoto상: 한국은 일본에겐 동생이지~ 우리가 다 근대화시켜줬고, 그 덕분에 지금처럼 잘 사는 거잖아.

나: 너... 설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던 역사를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Hashimoto상: 식민지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덕분에 얻은 게 더 많지~ 중국 밑에서만 살던 한국을 지금처럼 잘 살게 만들어 줬잖아~

나: (어이가 없었지만, 아직 그의 배경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니까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너 왜 그렇게 생각해? 혹시.. 그렇게 배웠니?

Hashimoto상: 일본 사람들 대체로 이렇게 생각할걸?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우리가 왜 예민하게 반응해야하는지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Hashimoto상은 한국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걱정하는 역사 인식을 가진 일반인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자꾸 Hashimoto상의 언행을 주시하게 됐다. 한국과 관계가 있기도 혹은 없기도 한 그의 말들은 나를 자주 놀랍게 했는데, 그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반 전체가 Pin의 제빵 작업실 오픈을 축하하는 파티 날이었다. 각자 준비한 작은 선물을 공개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가져간 부채를 선물했다. 한국 전통 민화가 그려진 부채를 받으며 기뻐하는 Pin에게 Hashimoto상이 말했다.


"It's a Japanese thing. Everything of Korea is from Japan. (그건 일본꺼잖아. 한국껀 다... 일본에서 가긴 했지)"


나는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몇 마디의 언쟁이 오고 갔고, 결국 나는 그에게 쏘아붙였다.


"넌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하기 전에, 동북아시아의 역사부터 먼저 공부하고 오는 게 좋겠다!"


초딩들의 유치한 싸움이 되려 할 때 친구들이 우리를 말렸고, 그 틈에 미얀마 출신 Bai가 말했다.


"일본이 여러 나라에서 자행한 일들은 역사적으로 사실이야~ 미얀마인들 중에도 일본이 전쟁 중에 우리 나라에서 했던 극악한 일들 때문에 일본을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도 해외 투자니 뭐니 하면서 들어와 있지만, 일본 기업이나 정부가 정말 반갑겠니? 사과도 한 번 안 한 일본인데?"


Bai가 말하기 무섭게 나머지 2명의 미얀마 친구들도 맞장구쳤고, Hashimoto상은 머쓱해졌다. 그 날 이후, 그는 위축되 보였다. 단짝인 Tandin에게 "우리 반 애들은 모두 나를 싫어한다"는 말을 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일본 사회에서 공교육을 받으며 자랐기에 어쩌면 가장 평범한 한 시민일 뿐인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더군다나 평균 연령 30세인 교실에서 왕따란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늘, 술이 웬수다. 초딩같은 싸움을 하게 만드는 술. 그러나 치앙마이 맥주들은 너무 맛있다는게 더 문제다 ㅋㅋ (2015)



내 친구, Makodo :)


Makodo(위 이야기 Hashimoto상의 이름이다)는 28살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영국 어학연수 경험이 있으며, 대기업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유학 온 친구였다. 도쿄 출신은 아니지만 도쿄에서 대학을 다녔고,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완벽한 도시 남자였다. 그 역시 나처럼 회사를 관두고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져 치앙마이대학으로 유학을 왔다고 했다.


Makodo는 아주 평범한 일본인이었지만, 그래서 나와 자주 다퉜다. 오로지 각자가 속한 국가적인 입장 때문에. 주변 특정인을 미워하거나 불편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드문 나는 Makodo와의 관계가 첫 학기 내내 도전이었다. 나는 평소에 반일감정도 거의 없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느라 만난 시민단체 관계자나 한일 공동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한일 역사 프로그램이나  평화 포럼에 참여한 일본 청소년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 사이에 쌓여 온 역사에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곤 했던 나는 Makodo같은 일본인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내게 도전으로 다가온 Makodo 역시 일본인이었다.


나는 내 이해의 폭을 더 넓혀야 했다.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 중에 한 명으로 치부해 버리고 무시해 버리면 그와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한 고백을 통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주입된 그의 역사적 인식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고 꿈이 있는 청춘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갑자기 수업이 휴강된 어느 오후, 후어이뜽타오(Huay Tueng Tao) 호숫가에 놀러갔던 날. Makodo가 찍은 풍경 (2015).



더이상은 개처럼 취급 받으며 일하기 싫었어.


태국 대학은 8월에 학기를 시작하고 나면, 12월 말의 첫 방학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기는 방학이라기 보단 연휴기간처럼 여긴다. 그래서 한 학년이 끝나는 5월 중하순을 기대한다. 3개월 정도의 긴 방학이 제대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방학을 앞두고 맥주를 마시다 방학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체로 고향에 가서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계획들이 있었다. Makodo에게도 일본에 돌아갈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고향 집에 가서 세븐일레븐에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가서 조금이라도 벌어 와야 또 1년을 살지 않겠어?"


우리는 모두 그가 3년간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유학을 왔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직장에서 모은 돈으로 여유 있게 유학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직장에서 모은 돈은 학자금 대출 갚느라 거의 다 썼지 뭐. 도쿄에서 월세 내면서 대출금 갚으면 남는 게 없었어. 사실 유학을 올 거였으면 더 버텼어야 하는데... 난, 정말 더 못 버티겠더라고. 더 이상은 개처럼 취급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았어."


두둥-

'get treated like a dog'이라는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힘들지 않은 돈벌이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Makodo는 직장생활을 하던 당시의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서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다고도... 무엇이 그렇게 그를 힘들게 했을까? 일본 사회 샐러리맨의 삶 역시 우리네의 그것처럼 녹록하지 않나 보다. 치앙마이에선 이토록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그곳에선 자신을 혐오했다고 할 만큼. 나는 방학 동안 일본 사회에 대한 기사들을 더 찾아 읽었고, 새 학기가 되어 Makodo를 만났을 땐 더 편하게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Makado는 개처럼 취급받기 싫다고 표현했지만, 치앙마이에서 만나는 개들의 삶은... 그야말로 easy life인 경우가 많다 ㅋㅋ (2016)

 



일본 은퇴자들의 천국, 치앙마이


치앙마이는 외국인 은퇴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은퇴할 혹은 은퇴한 나이의 서양 남성들이 태국에 와서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고 노후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는데, 치앙마이 역시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치앙마이는 일본 은퇴자들이 증가하며 커뮤니티까지 형성하는 것이 눈에 띄는 사회현상이 되었다 [1], [2]. 싱글 여성, 은퇴자 부부의 숫자도 많았고 무엇보다 노후를 즐기는 싱글(결혼 여부는 무관) 남성들을 가장 쉽게 볼 수 있었다.


2015년 기준, 내가 사는 동네에만 일본 음식점은 5개가 넘었다. 치앙마이 시티 전체로 보면 7~-80개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한국 음식점은 15개 정도였다. 일식을 좋아하는 나도 열흘에 한 번 정도는 일식집에 가곤 했는데, 초밥이나 사시미를 제대로 하는 가게는 늘 일본인들이 꽉 찼었다. 나는 반가운 이들끼리 합석을 하며 맥주를 마시는 그 많은 일본 노인들을 보면서, 궁금했었다.


'저들은 왜 치앙마이에 와서 노후를 보내고 있을까?'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후를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이들 50% 가까이가 대학 졸업자들인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며, 기업의 관리자로 은퇴한 사람들이 42%로 일본에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즉, 일본 사회에서 중산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치앙마이로 이주했다. 이들에게 태국을 선택한 이유 첫 번째는 저렴한 물가였고, 무엇보다 노후 이주를 한 이유는 좋은 날씨 그리고... 'Easy Life'였다 [3].


Easy Life. 나는 이 연구 결과를 보며, Makodo가 태국 여자 친구가 생기면 무조건 치앙마이에서 계속 살고 싶다던 것이 가능한 상황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일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는 할아버지들을 볼 때면, 젊은 시절 내 친구 Makodo가 말하듯, 개처럼(?) 일했을 그들의 과거가 겹쳐지곤 했다. Makodo는 할아버지들보다 조금 더 일찍 Easy Life의 기쁨에 눈 뜬 것이고, 그들보다 빨리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만 일본음식점은 5개가 넘었다. 치앙마이시티 전체에는 7~80곳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 식당은 15개 정도다 (2015)


우리, 인간답게 일하며 살자

바나나 나무를 처음 보고 놀라던 도시남자. 자국에서 생산된 역사인식만 가지고 있었던 일본인. 그런 Makodo는 치앙마이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공부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그는 처음과 달리 모든 학과 활동에 참여하려 했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려 했다. 소원대로 치앙마이인 여자 친구도 생겼었다. 정말, Makodo는 치앙마이 여성과 결혼하여 치앙마이에 쭈욱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치앙마이를 먼저 떠나야 했던 나의 환송회 날, 그는 내게 물었다.


Makodo: Ana, 돌아가면 뭘 할 거야? 또 NGO에 들어갈거야?

나: 글쎄... 아직 모든게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우선 농촌에서 살아보고 싶어. 농사도 배우고 싶고.

Makodo: 정말, 농사짓는 삶을 해 볼 거야? 언제 기회가 되면 일본 스즈카 공동체에 꼭 한 번 가봐. 나도 직장 관두고 거기에서 한 달 지내봤었거든. 배울게 아주 많을 거야.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스즈카 공동체는 사람과 사회 그 본연의 모습을 밝히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그들은 연구소와 학교, 공동 농장과 가게 등을 운영하는 공동체다 [4]. 특히 마을공동체의 노동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하고 싶은 대로 (일)한다'는 기풍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는 내외부의 억압이 없는 상태에서 각자가 원하는 것을 밝히고, 주변인들은 각 개인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분위기가 바탕이 될 때에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개개인의 욕구가 노동 공간을 포함한 공동체 내에서 존중될 수 있도록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학교에서 학습하는유기적 방식의 노력을 하고 있다.


Makodo는 왜 직장을 관두고 스즈카 공동체에서 한 달을 지냈을까? 그리고 한국 농촌으로 돌아가려는 내게 왜 스즈카 공동체를 소개했을까? 치앙마이에 여자 친구가 생겼지만, 그는 도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길을 찾고 있는 듯하다. 치앙마이대학에서 논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나 역시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새 길을 찾고자 도시가 아닌 농촌을 선택했다. 그런데 환경을 바꾸는 선택은 부차적인 것이다. Makodo의 외침처럼, 인간답게 일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을 구현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늘 아웅다웅 사이는 좋지 않다지만, 세상에서 한국 사회와 가장 비슷한 사회는 일본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과 한국에서, Makodo도 나도, 인간답게 일하며 삶을 기쁘게 즐기는 easy life를 구현하는 큰 숙제를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내 친구 Makodo, がんばれ(힘내)!! :)




참조

[1] "Why Retirees Are Moving To This Town In Thailand", Huffpost, 2017년 5월 31일자.

https://www.huffingtonpost.com/entry/why-retirees-are-moving-to-this-town-in-thailand_us_592ed078e4b09ec37c309a60


[2] "Thailand popular with Japanese retirees but many end up dying alone", The Japan Times, 2016년 5월 22일자.

https://www.japantimes.co.jp/news/2016/05/22/national/social-issues/thailand-popular-japanese-retirees-many-end-dying-alone/#.WuGn226FOUk


[3] Emi Yoshidi, "International Retirement Migration In Thailand from the Perspective of Welfare and Social Participation", 2016, Kyoto University.


[4] 조정훈, "에즈원커뮤니티를 다녀와서", 지지봄봄 19호.

http://www.gbom.net/296



써바이써바이란, 태국어로 '편안하다, 건강하다, 쉽다, 행복하다'란 뜻의 써바이를 강조하며 두 번 사용한 말이다. 이 단어는 태국 대표 인사말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쓴다. <써바이써바이, 치앙마이>는 <편안해편안해, 치앙마이> <행복해행복해, 치앙마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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