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ana Nov 25. 2018

이전과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면 새로운 날 만날 수 있어

베트남 친구, Dinh


"앞으로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주요 철학 사상을 훑어볼 거예요. 모든 수업은 여러분이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자~ 내일모레 첫 수업 발제를 누가 자원해 줄래요?"


8월 정규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이 75%인 우리 학습공동체를 위해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며, 학문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예비 수업(pre-course)의 첫 시간. 노교수님은 하루 만에 영어로 고대 철학의 한 꼭지를 공부하고 발제을 만들어 올 자원자를 찾고 있었다. 치앙마이대학으로 유학 와서 처음 교실에 모인 순간. 모두가 설렌 만큼 긴장되고, 기대 만큼 걱정도 되는 순간인데 첫 발제자라니! 서로 '누군가가 대신 좀 해 줬으면~' 하는 동시에, '아... 이런 정적은 너무 불편한데... 내가 해야 하나..'하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바로 그 침묵의 눈치 전쟁속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제가 해 오겠습니다! 저는 Dinh입니다."


그렇게 Dinh은 처음부터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학생이었다. 주도적인 반친구가 있으면 토론과 발제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업은 무척 편하다. Dinh의 '열심'이 난 고마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Dinh의 발언이 시작되면 피곤함이 밀려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Dinh, 네가 말하는건 베트남적인 상황으로만 말하고 있는 거야. 다른 나라들은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땐 네 말처럼 하긴 어려워."


호주 친구 Paul이 발언 중인 Dinh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베트남에서 1년간 살아본 경험으론, 베트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아. 어쩌면 넌 베트남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어."


얼굴이 빨개진채 Dinh은 이런저런 말들로 항변을 했지만, 전혀 토론에 적합한 대응이 아니었다. 교수님이 휴식시간을 제안해 커피 한 잔을 하며 모였을 때 Paul이 말했다.


"난 Dinh이 그렇게 항변할 줄 알았어. 예상대로 100% 베트남인이야 ㅋㅋㅋ"


그랬다. Dinh은 호치민에서 170km 정도 떨어진 도시 깐터(Can tho) 출신으로, 처음 베트남 땅을 떠나 이웃국가로 유학 온 24살의 친구였다. 그녀의 적극적인 발언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곤해지고,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 얘기들이 많다고 내가 느꼈던 이유를 Paul의 지적을 통해서 알게 됐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라면서 베트남 사회만이 옳다고 여겨 온 그녀의 한계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Paul처럼 '베트남 사람은 대체로 저렇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이해하진 않았다. 그저 그녀 역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직장생활을 한 뒤 석사 유학을 결정한... 그야말로 아직은 넓은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십대 평범한 청년으로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역시 24살, 사회생활 경험이 적던 나이, 처음 한국을 떠나 낯선 이국땅을 밟아보기 전까진 그랬으니까...


과제를 완벽하게 하려고 밤을 지새우고, 장학금을 아껴 쓰려고 매일 가장 싼 국수만 먹고, 수업 끝난 뒤 도서관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그녀에게 나는 자꾸 커피 한 잔 하자고, 베트남 음식 먹으러 가자고, 요가 수업 같이 가자고 불러 냈다. 우리만큼 유교 질서가 강한 사회에서 자란 그녀는 나이 많은 언니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점차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나를 si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교문화권인 베트남도 우리처럼 나이에 의해서 언니, 오빠 등의 호칭이 강하게 존재한다. 영어로 대화하는 우리 사이에 그녀는 내 이름 ana대신 굳이 sister의 줄임말인 sis를 호칭으로 쓰겠다며 강력하게 요구했고 난 그냥 '너 편한대로~'했다.)


호치민 중앙 우체국에 있는 호치민 주석의 사진. 베트남 어디서나 독립의 아버지 호치민 주석의 사진이나 동상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2010)



저런 무식한 아줌마 이야기까지 어떻게 국가가 들어줘?
똑똑한 당원들이 알아서 잘 할 거야!


Dinh은 학부 때 경영학을 공부한 뒤 일반 기업에 취업했었기에 사회학적 지식이나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편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석사 과정으로 사회과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점차 베트남 사회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SNS로  주변인들의 여론을 살피기도 했고, 내게 점점 베트남 사회 뉴스 이야기를 해 주는 날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Dinh이 연구실 내 자리로 찾아와 격분하며 말했다.


"sis! 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나 시민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현상들을 이해했어. 그리고 단순한 개발과 발전 논리가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과 환경을 파괴하는 사례가 많은지도 알아.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왜 반대 시위에서 이런 식으로 연출된 행위를 하는 거야? 이건 베트남 정권을 뒤흔들려고 하는 음모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땐, 앞뒤 설명 없이 퍼붓는 습관이 있는 Dinh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Dinh이 읽은 뉴스와 SNS 동향을 그녀의 설명과 함께 살펴봤다. 베트남 중앙 지역에서 물고기 집단폐사 사건의 심각성과 Formosa라는 철강회사의 문제를 알리기 위한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위 중에 갓난아이를 업은 엄마를 끌어내는 경찰 사진이 논란이었다. 아기를 업은 엄마까지 저렇게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해야만 했나, 우리도 저 시위에 동참하여 돕자는 여론이 끓자, 이 사진은 베트남 공산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연출되도록 찍어 경찰과 정권의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해 쓰이고 있다는 반대쪽 여론이 동시에 들끓었단다.


Dinh은 혼란에 빠졌고 나름 사안을 다각도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더 깊이 뒷조사에 들어갔다. Formosa라는 철강회사의 범법적인 환경오염을 덮어 주려는 이들은 누구이며, 이런 비리에 연루되었을지 모르는 당 관계자들의 불투명성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이런 의견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베트남 공산당을 거부하는 비밀조직의 공작이라는 '카더라~'통신에까지 Dinh은 접근했다.    


Dinh은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 운동 사례를 논문으로는 읽어 봤지만, 베트남에서 시위에 참여해 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시위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그래서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이 국가이고, 국가를 이끄는 정권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내 설명은 도통 먹히지 않는 눈치였다. 물고기 집단 폐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Formosa의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 어쩌면 Dinh이 파악한 대로 이 외국계 회사와 연루되어 있을지 모르는 당 관계자들의 책임을 동시에 묻고 있는 이 시위를 그녀는 반대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듯 했다.


Dinh: sis, 이 시위에 대한 글에 댓글을 엄청 달고 기사를 유포하고 다니는 아이디가 하나 있어서 내가 추적을 했단 말이야. 그랬더니 글쎄! 아줌마야. 대학교도 안 나온 그냥 애 키우는 아줌마. 이 아줌마가 막 욕까지 쓰면서 시위 현장이 폭력적이라는 둥, 경찰을 떼려 잡아야 한다는 둥 여론을 선동하고 있어! 이런 무식한 아줌마가 어떻게 우리 공산당을 뒤흔드는 짓을 하냐는 말이지!

(헉... 너 내 동생 Dinh 맞니?!?   난 지금까지 풀뿌리의 시민들이 이뤄내는 변화와 그 가능성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토론을 함께 해 온 그녀가 갑자기 완전히 딴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  Dinh. 그러면 넌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만 국가 운영에 참여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국가 정책에 참여하거나 혹은 반대할 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Dinh: sis, 우리 공산당원들은 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뽑혀서 국정을 운영하는 거야. 한 국가를 이끄는 일인데 아무나 해서 되겠어? 똑똑하고 집안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해야지!


난 그 순간 그녀에게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인 베트남 정치는 어쩌면 신앙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는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국가에서 태어났으니 내겐 이 정치형태가 신앙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으니까. 각자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사회체제는 마치 종교처럼 깊숙이 우리들 속에 존재하기에 그 사회체제가 아닌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는 그 사회를 떠났을 때 오히려 더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 Dinh에게는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한 이슈였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도 지금은 전혀 소용이 없을 신앙과 같은 영역이었다.


대만 철강 회사인 Formosa에게 책임을 촉구하는 시위 전경 (출처: http://www.scmp.com/news/asia)

 

굳건한 믿음도 깨질 수 있다


논문이 마무리될 무렵, 박사 공부까지 이어가고 싶어진 Dinh은 일본 유학을 위한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하느라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됐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장학생부터 베트남국가장학생까지 베트남에서 1차로 선발하여 연결되는 장학 프로그램에서는 대체로 당의 관계자 추천서나 증빙 서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랐기에 석사학위를 할 때까지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던 그녀였지만, 중앙 공산당과의 관계(그야말로 끈이)가 그다지 없는 현실이 그녀의 일본 유학 도전에 발목을 잡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경쟁이 치열한 장학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고위급 당원의 인맥이 있는 학생들이 유리해 보였다.


Dinh: sis, 너무 짜증나. 내가 당 관계자 추천서를 받으려고 했더니 대체 이 사람들을 만나려면 몇 번을 찾아가고 부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이게 무슨 시간낭비야! 그런데 더 막막한건, 내가 깐터지역 당 관계자에게 추천서를 받는다고 한들 우리나라 전체에서 뽑는 ADB 장학생 지원자들 중에 중앙당에 인맥이 있어서 추천서 받은 사람이 더 유리할거 아냐. 어떻게든 계속 자기 집안이나 인맥 있는 자식들이 좋은 데로 유학 갔다 와서 계속 고위급 당원을 하게 만들려는 거야 이건!   

나: Dinh. 정말 속상하겠다. 그런데 너... 베트남의 공산당 체제가 확실하고 당원들이 다 똑똑해서 믿고 맡겨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 무식한 아줌마는 국가 운영에 관여하면 안 된다며. 그 똑똑한 애들이 다 그렇게 유학 갔다 오는 애들 같은데?


내 말에 Dinh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을 좀 정리하는 듯했다. 그리고 며칠 후 베트남에서 1차 선발해서 연결되는 장학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사회와 국가가 옳고 좋다고 철통같이 생각했던 그녀의 믿음에 내가 돌을 던진 기분이 들어 조금 미안했다. 하지만 누구나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다시 바라 볼 때, 그리고 그 넓은 세상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때, 때론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싫더라도 자신이 이제껏 믿어왔던 것들을 깨부숴야 하는 측면이 있다. Dinh에게 그 시기가 온 것이다. 이전까지의 나와 나의 믿음과 나의 세상을 부수고, 더 넓은 세상 속의 나와 새로운 진리를 맞이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흔한 베트남 풍경 중에 또 하나. 호치민의 아침 풍경. (2010)


나 정말 많이 변했지, sis?


Dinh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국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억척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랑으로 여기는 베트남 사회에서 24년을 자랐다. 그래서 처음 치앙마이에 왔을 때도 늘 뭐든지 열심히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고, 쉬고 여유를 부리는 것을 할 줄 몰랐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30년을 살았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 역시 치앙마이의 '써바이써바이' 마력 앞에서는 무장해제됐다 나처럼. 태국 대표적인 축제인 송크란 때는 대형 물총을 사 들고 물놀이를 하느라 3일 내내 시티를 누볐고, 클럽에서 춤을 추느라 밤을 지새는 날도 생겼고, 그저 연구실 책상에 다리를 올려놓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오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학업을 소홀히 했다거나 장학금을 펑펑 쓰고 다니진 못했지만 ㅋㅋ)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맥주를 마시다 취기가 오르면 Dinh은 이 말을 가장 많이 하곤 했다.


"나 정말 많이 변한 거 같지 않아? 치앙마이에 와서 나 정말 많이 변했어."


누군가가 뭐가 그리 변한 거 같냐 물었을 때 그때 그녀가 말했다.


"명절에 베트남 갔다가 치앙마이 공항에 내리면 내가 확 바뀌는 느낌이야. 마음에 여유가 생겨. 베트남에서는 뭔가 더 열심히, 힘들게 해야만 할거 같거든. 치앙마이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꼭 그러지 않아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치앙마이에서의 내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워서 좋아."


그녀는 치앙마이에 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베트남에서 똑같이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치앙마이에 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원래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자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치앙마이에서 평생 살겠다는 생각을 가진 유학생들은 아니었다. 결국 각자에겐 돌아가야 할 가족과 삶의 터전이 있었다. 하지만 치앙마이로 떠나왔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얼마나 세상이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한 가지의 정답만이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됐다.


아카족의 전통 그네뛰기 행사 (2014)


새로운 세상에선 더 자유롭고 넓어진 나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치앙마이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아카족(Akha) 전통 행사날에 아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을에선 커다란 그네를 만들어 놓고 그네뛰기를 했다. 예로부터 고산지역에 살았던 아카족은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엄청 큰 그네를 뛰곤 했다고 한다. 그들이 높이높이 그네를 뛰었던 이유는 뭘까? 산골 마을에 살지만 산 너머에 존재한다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그 미지의 세상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에 이끌린 것은 아닐까?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다면- 이전까지 내가 살던 세상과는 좀 다른 세상으로 나가 보면 된다. 이전까지의 나와, 이전까지의 나의 세상이 부서지는 경험은 좀 아플 때도 있겠지만, 더 자유롭고 넓어진 나의 세상을 만날 수 있을테니까-


써바이써바이란, 태국어로 '편안하다, 건강하다, 쉽다, 행복하다'란 뜻의 써바이를 강조하며 두 번 사용한 말이다. 이 단어는 태국 대표 인사말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자주 쓴다. <써바이써바이, 치앙마이>는 <편안해편안해, 치앙마이> <행복해행복해, 치앙마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전 10화 더 이상은 개처럼 취급받으며 일하고 싶지 않아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