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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Feb 27. 2019

마무리는 바나나우유

rural hobby #02 (January 11th, 2019)


낭만이니 판타지가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시골살이에 대해 꽤 현실적이라고 믿었다. 시골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 대한 교육도 받았고,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사계절을 (많지 않은 돈으로) 견뎌내기에 적합한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었다. 예를 들면, 집을 고를 때도 이성이 감정을 억제했었다.   

추위에 유난히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보이는 구옥을 포기했다. 대신 87년에 지은 양옥을 임대하고, 제일 먼저 단열을 확인했다. 창문과 창틀을 바꾸는 게 가장 필요했지만, 그만큼 많은 돈이 없어서 대신 천장에 단열재를 덧대는 작업을 직접 했다. 기름보일러에만 의존하면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을것 같아서, 겨울철 유일한 생활공간인 거실에 적정기술로 만든 난로와 온수매트도 설치했다. 이 정도면 가장 걱정했던 겨울철 대비까지 해서 시골살이를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시골살이 완벽 대비의 기대는 첫겨울을 맞이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으와아오아아아!!!"     

나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나의 괴물적 음성. 욕실이자 화장실이며, 세탁실이기도한 공간에서 방출되는 소리다. 기름보일러이든 적정기술 난로이든 난방 장치를 모두 작동시켜도, 실내지만 실외 같은 이 공간에서 나체가 될 때, 맨 처음 저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샤워기로 나체인 몸에 물을 묻히기 시작하고 3분 후, 또 저 소리가 들리게 된다. 보일러라는 기계는 석유를 써 가며 뜨거운 물을 생산하느라 애를 쓰고 있지만, 내가 머리를 감고 온 몸에 물을 묻히는 중간에! 생성해 놓은 뜨거운 물은 떨어지고 만다. 뜨거운 물을 만들어 내는 시간을 1분이라도 주기 위해서 잠시 샤워기를 멈추고 나체로 서 있으면 찬 공기가 몸을 꿰뚫는 듯하다. 때문에 또 소리라도 지른다. 오래된 보일러가 있는 힘을 다해 물을 데우는 굉음이 들리고 나면 다시 물을 튼다. 이번에는 갓 펄펄 끓인 물이 터져 나온다. 나의 겨울철 샤워는 괴음과 굉음의 이중주로 채워진다.       

이렇듯 겨울철 시골집에서의 샤워는 내게 너무 큰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여름처럼 매일 샤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욕조에 물 받아 놓고 길게 샤워를 즐기는 유형도 아니지만 씻는 것이 괴로우니 슬펐다. 그래서 내가 찾은 대안은 바로 대중탕. 집에서의 샤워를 간략화하고 (그렇다고 안 씻는 것은 아니다!) 대중탕에서 묵은 때(?)를 해결하로 했다. 대중탕에 엄마 손도 잡지 않고 내 발로 이렇게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편안히 씻고 싶다는 욕구가 대중과 함께 씻는다는 불편함을 이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물 맘 껏 쓰는 것 이상의 대중탕 나들이를 좋아하는 이유들이 생겨났다.

시골 대중탕은 애매한 시간대에는 단독탕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큰 욕조를 나 혼자 차지하고서 즐긴다. 내가 사는 구례에는 온천 관광단지가 있는데, 이 곳에는 노천탕까지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나무에 둘러 쌓인 노천탕. 몸은 따뜻한 물 속이지만, 한 겨울 맑디 맑은 찬 공기가 얼굴을 치고 가는 이중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휴대폰도 책도 손에 쥐고 있을 수 없다. 그저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거나, 대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렇게 살아내기 위해서 선택한 대중탕 방문이 어느새 나의 겨울철 취미가 됐다.     

입욕비 7천원. 그닥 돈들지 않는 나의 시골살이 취미 중에서는 꽤 비싼 취미다. 하지만 대나무로 둘러싸인 노천탕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면, 일본료칸 여행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진 시간을 7천원에 즐기고 있으니 행운의 취미란 생각이 든다. 2시간의 뜨거운 취미 생활 마무리는, 바나나 우유. 빨대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자꾸 이 단지 모양 우유에는 빨대를 습관적으로 꽂게 된다. 빨대를 이용하지만, 쭈욱, 원샷.    

추위와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은 반갑지만, 나의 이 고급진 취미 생활의 시즌 역시 끝나가고 있음이 아쉽기도 하다. 이번 주엔 비가 온다는데, 마지막 겨울 우중 노천탕을 즐기러 가야겠다. 바나나우유 챙겨서!


#나의작은숲 #구례 #시골살이 #대중탕 #목욕 #추위 #나의취미 #남들이뭐래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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