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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r 12. 2019

새 학년 새 학기의 첫날

rural farming #05 (March 4th, 2019)


3월의 첫 월요일이다. 친구에게 시시콜콜한 일상 메시지를 보냈더니 답이 없다. 바로 답을 안 한다며 잔소리를 했더니, "야, 오늘 나 정신 하나도 없어. 훈이 입학하는 날이잖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랬다. 3월의 첫 월요일이 가진 특별함을 전혀 생각 못했다. 조카의 입학을 인식하지 못한 건 내가 학교와 멀어진 지 꽤 시간이 흐른 탓이다, 아이들 보기 힘든 곳에서 지내는 탓이다, 라며 핑계를 댔다.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그저 해가 뜨면, 오늘 하루를 사는 생활을 한다. 언제부턴가 내게는 생일도 그렇다. 달리 말하면, 매일매일이 생일 같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느 하루가 가진 특별함을 누릴 때도 좋지만, 매일매일의 평범한 평화를 더 깊이 느낀다.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 무엇보다 입학이라는 의례를 통과하고 있을 이들에게 오늘은 무척 특별한 날일 테다. 바로 그 날 느꼈던 아련한 감정들을 더듬어 본다. 반편성 된 새 교실을 찾아가고, 바뀐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살피고,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더러 친한 친구도 있지만 잘 모르는 얼굴들과 뒤엉켜 키 순서대로 복도에 서서 번호와 짝을 정하고, 접힌 자국조차 없는 새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 첫 페이지를 열고, 1년 중 가장 잘 정리된 가방 속에서 또 그러한 필통을 꺼내고...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멀어진 탓에 오는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 앞에 기대되고 떨리기도 한... 다양한 감정들의 지수가 높아지는 바로 그런 날.    

태어나서 1년의 주기를 가장 극명하게 가진 학교 시스템에 12년동안 (혹은 20년 가까이) 우리는 길들여진다. 하지만 1년의 주기가 가장 분명한 것은 학교 이전에 농사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학교가 없던 (그 이전은 접어두고) 농경 시대에는 농사짓는 땅이 곧 배움터였다. 인간이 만든 시간을 구획하는 방법이 아닌, 자연에 의한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방법으로 1년을 살았다.   

이젠 다니는 학교도, 학년도, 학기도 없지만 3월의 첫 월요일은 내게도 있다.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을 맞이한 학생들처럼 나도 새로운 시작을 해 본다. 겨우내 묵혀 뒀던 밭으로 올라가 올해 농사를 준비하며 밭 정리를 한다. 지난 해 보다 봄이 더 일찍 찾아온 탓에 열흘을 당겨 감자도 심는다. 남들 눈에는 농사 같지 않은 농사일지 모르는 농사를 1년 따라 해 보니, 땅은 정말 가장 좋은 학교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구례군 불무동 텃밭에서 2학년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인생 두 번째 농사. 떨리고 기대되는 2학년을 시작한다.  


새학년을 맞이하며 밭 정리를 하다 만나게 되는 것들. (좌) 우리밭은 고라니님들의 안식처 아니 화장실 (우) 봄을 알리는 나물, 냉이가 벌써 꽃이 펴 버렸다



#나의작은숲 #구례 #시골살이 #농사 #봄 #새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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