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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r 15. 2019

먹지만 말고 꽃도 보세요

rural flower #04 (6th March, 2019)



다시 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젠 추위가 물러가고 땅이 녹았겠거니~ 하면서. 사실 보름 전부터 동네 어르신들은 논밭을 드나들고 계셨다. 언 땅은 진작에 녹았었다. 그저 나만 농한기 겨울 휴가를 최대한 누리고 싶어 게으름을 핀 것이다. 그러나 연애만큼이나 때(타이밍)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농사이고, 나는 연애 아닌 농사를 하는 사람-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바로 그 '때'였다.      

밭에는 이미 푸릇푸릇함이 몰려와 있다.생명을 알리는 이 풋풋한 녹색을 난 참 좋아한다. 그런데 점차 이 녹색에 대한 감정에 기쁨과 반가움만 있진 않다. 두려움도 공존하기 시작했다. 밭에 찾아온 이 푸릇푸릇함이 올 한 해 내가 전쟁을 치러야 하는 풀들의 전투태세 돌입을 알리는 것이니까. 나는 올 해도 질 것이 뻔하다. 시작부터 늦었으니. 일 하며 보니, 땅 여기저기에 흰 꽃이 펴 있다. 무슨 꽃이 벌써 이리 폈나~ 생각하며 잠시 신기했다. 하지만 '잡초 중 하나일 텐데, 저리 많이 폈으니 풀씨가 엄청 떨어지겠구나!' 하며 지나쳤다.      

오랜만에 밭에서 나를 발견한 이웃이 찾아와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일하는데 더 길게 방해하면 안 되겠다며 나의 밭을 떠나던 이웃이 남긴 한 마디. "벌써 냉이꽃이 다 펴 버렸네. 좀 미리부터 와서 캐지 그랬어. 자기 밭에 냉이 참 많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냉이라고요? 우리 밭에 냉이가 어딨어요?" 이웃은 내가 잡초인 줄 알고 지나친 흰 꽃을 가리키며, 냉이꽃이라고 알려줬다.        

서울 살 때도, 다른 제철 음식은 잘 못 챙겨도, 봄을 알리는 냉이와 달래는 꼭 사 먹었다. 그런데 시골에 오니 이런 봄나물을 먹는 날이 더 줄었다. 농촌에 살면서 마트나 시장에서 봄나물을 사 먹는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냉이니 달래니 쑥이니 하는 봄나물을 캐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밭마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데 아무 밭에나 가서 캘 수도 없고, 뒷동산에 올라가면 볼 줄 아는 눈이 없으니 그 많은 식물들 틈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름 아닌 내 밭에 냉이가 있었다니! 나는 먹을 줄만 알았지 냉이가 어찌 생긴 줄을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사실은, '이리도 몰랐구나!'이다.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의 재료가 되는 식물은 먹는 법만 알았다. 그런데 작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를 모두 알아야 한다. 열매만 먹는 줄 알았던 것도, 잎이나 뿌리, 꽃에 각기 다른 기능이 있어 그냥 버리면 아까운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작물은 그 꽃도 이쁘다. 냉이는 늘 봄을 알리는 향긋한 나물로 먹을 줄만 알았지, 그 꽃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냉이꽃 옆으로 자줏빛 광대나물 꽃도 폈다. 이른 봄을 알리는 두 꽃을 꺾어와 한참을 보고 있다. 살면서 내가 이리도 몰랐던 것은, 과연 식물들 뿐일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떨까? 나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사생활이나 과거처럼 그나 그녀를 이루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현재의 그/그녀 즉, 내 앞에 있는 존재 자체로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그녀의 다른 모습이나 이야기는 모르기 때문에 무수히 오해하고, 멀리한 관계는 얼마나 많을까? 나의 무지 탓에 상처 받거나, 무심함에 멀어져 간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냉이꽃 앞에서 나는 회개의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냉이나물을 맛있게 먹는다.


(좌) 자연 상태에서의 냉이꽃, (중앙) 꽃이 피지 않은 냉이를 한 바구니 캤다, (우) 냉이 향을 고스란히 누리고자 약간의 간만 해서 나물로 한 접시  


#나의작은숲 #시골살이 #농사 #구례 #봄 #봄나물 #냉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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