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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pr 03. 2019

4월 이야기

rural scenery #05 (April 1st, 2019)




어김없이 벚꽃이 폈다. 같은 종류의 꽃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피는 시기가 다르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 있는 나무끼리도 며칠씩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내 벚꽃 개화일의 기준은 집 앞 가로수다. 동네 앞 도로변 가로수인 벚나무 꽃이 작년 3월 29일에 만개했었다. 올해도 3월 27일부터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3월 29일 다시 만개했다. 1년 주기의 반복을 경험하니 내가 바로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요즘은 벚나무가 가로수인 곳이 많아서, 지자체마다 벚꽃 축제가 많이 열린다. 그래서 구례 벚꽃을 특별하다고 할 건 없다. 그저 구례에도 벚나무가 많다. 특히 벚꽃으로 유명한 화개 쌍계사로 향하는 섬진강변 양쪽으로 있는 2차선 국도들이 장관을 이룬다. 양쪽 벚나무들이 손을 뻗어 닿으려는 듯 터널을 이루는 이 길을 드라이브하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만개한 벚꽃을 보며 4월을 맞이한다. 2000년에 개봉했던 이와이 슌지의 영화 <4월 이야기>. 줄거리는 흐릿하지만, 영상 속 눈부신 벚꽃 풍경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4월 1일, 벚꽃이 만개한 공간에 있으니 작년에도 그랬듯, 올해도 그 영화가 생각나고, 영화를 보던 때의 내가 생각났다. 내년 4월의 첫날에도 이 벚꽃 풍경 속에서 나는 영화 그리고 그 시절 나를 떠올릴까?

벚꽃을 함께 보던 사람들끼리 벚꽃이 오래 핀다, 짧게 핀다로 격론을 벌인다. 벚꽃이 피는 기간은 평균 일주일인데, 일주일을 놓고 짧다, 길다 의견이 갈린 것이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짧은 것일까, 긴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벚나무의 꽃을 보러 찾아온다. 일 년 중에 7일간 벚나무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사진으로, 기억으로 저장된다. 19년이 지난 영화의 줄거리는 가물가물해도, 스크린 속 벚꽃은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나무는 꽃피웠을 때가 가장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인 듯하다.

하지만 벚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 시간에도, 늘 그 자리에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새 잎이 나고, 풍성하게 푸르렀다가, 낙엽이 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 추위를 이기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때의 벚나무 모습을 저장할 만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긴, 나도 서울에 있을 땐 그랬다. 1년에 여러 번 여의도를 지나면서도, 평소에는 무심했다. 윤중로가 시끌벅적해지면 그제야 그곳에 있는 나무들이 벚나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구경을 갔다. 그런데 1년을 꼬박 벚나무들을 매일 보면서 지내보니, 꽃 피지 않은 나날들의 벚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358일간의 벚나무도 벚나무다. 꽃 피우지 않은 시간에도 나무는 살고 있다.

벚나무를 보면서, 나도 삶에서 꽃 핀 시간에만 의미를 두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특별한 며칠을 뺀 나머지 시간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매일매일의 이야기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벚나무의 358일이 쌓여야 빛나는 일주일을 다시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내년 4월 1일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다시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 시절 나를 추억하려면 일상의 358일이 있어야만 한다.

곧 벚꽃잎이 떨어질 테다. 마치 비가 내리듯 온 마을에 꽃잎이 날릴 테다. 찬란히 빛나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을 마치고 벚나무는 358일의 일상을 보내기 시작할 것이다. 매일 이 벚나무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일상을 살아간다. 꽃은 없어도, 벚나무와 나의 4월 이야기, 5월, 6월 그 이후의 이야기 역시 가슴 벅차게 기대해 본다.



화개 남도대교를 향해 뻗은 2차선 도로, 우리 동네 앞 가로수들의 2019년 4월 1일 풍경


#나의작은숲 #시골살이 #시골풍경 #봄 #벚꽃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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