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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y 04. 2019

농사보다 먼저, 채집

rural farming #06 (April 20th, 2019)


남부지방은 뭐든지 빠르다지만, 우리 동네는 4월 말은 돼야 감자(3월) 이후 다른 작물들을 시작한다. 큰 산 아래 동네라 그럴까? 4월까지는 종종 서리가 오기도 하고 날씨 변덕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사월의 논밭에 사람들이 삼월에 비해 외려 보이질 않길래 나는 '어르신들 농사 준비 끝내 놓고 숨 고르기 하시 나부다~ 마을회관이나 집에서 쉬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나의 예상은 또 틀렸다. (시골로 오고 나선 정답을 맞힌 적이 거의 없다.) 틀린 예상을 하고 있을 무렵 우리 동네도 옆 동네도 집집마다 마당에 검정 건조망이 깔린 것이다. 기름보일러 돌리는 집에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건조망 위에 올라온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서야 알았다. 논밭에 뜸하시다~ 했던 어르신들이 다 산으로 올라가고 계셨단 것을!        

건조망 위에는 고사리가 말려지고 있었다. 고사리는 산나물 중에서 일반 사람들이 많이 찾고, 중국산에 비해 가격이 많이 높다. 작년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다른 건 다 가능해도 고사리는 아니었다. "이 배추 좀 가져다 먹어~" 라거나, "우리 밭에 시금치 지천이여! 뽑아다 국 끼려 먹어."라며 뭐든지 나눠 주시는 분들이 고사리만큼은 가져가라며 주시거나, 와서 꺾어가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바로 앞에 고사리가 잔뜩 말라가고 있지만 맛 보라며 조금 주시는 경우도 없었다. 그만큼 고사리는 다른 작물에 비해 금값이다.     

값이 좋으니 산에 땅이 있거나 다른 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땅이 있으면 거기다 고사리를 키우는 농가들이 늘어난 듯하다. 우리 동네는 고사리만 전문으로 하기보다 4~5월에 고사리를 틈틈이 뜯어말려 부수입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로 농사 짓기 어려운 산기슭(임야)에 고사리를 키우다 보니 고사리밭은 몇백 단위부터 시작하는 논밭과 달리 몇천 단위로 시작한다. 그만큼 넓게 재배하다 보니 고사리를 다 감당할 손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고사리도 자급자족하고 싶어진 나는 고사리를 얻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누가 자기 산에 와서 꺾어 가라고 하길 내심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1년 만에 기회가 왔다. 집주인 어르신이 자신의 산에 하루 올라와 고사리를 꺾어 가라고 하셨다.     

고사리를 수확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어떤 상태의 것을 어떻게 꺾어야 하는지 배우고 나서 2천 평의 산자락에 투입됐다. 어르신은 "왔다 갔다 하메 말끔히 꺾어야 써~ 남겼다가 피뿌리면 못써!(왔다 갔다 하면서 올라온 고사리는 빠뜨리지 않고 꺾어야 한다. 혹시 남겨 놓으면 그 고사리가 커버려서 먹지 못할 상태로 넘어가 버린다!)" 라며 몇 번을 당부하셨다. 풀 사이에, 나무 아래에, 건초 더미 밑에 빼꼼히 올라와 있는 고사리가 하나씩 보일 때마다 톡톡 손으로 꺾는 것이 재미있었다. 꼭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는 것 같았다. 다른 밭일에 비하면 산속에서 계속 움직이며 일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재미는 딱 2시간이다. 2시간이 지나니 허리가 아파오고, 꺾은 고사리가 든 망태가 무거워 어깨가 욱신거렸다. 한 번 시작한 이상 전체적으로 다 훑어야만 이틀 후 다시 자라난 고사리를 꺾는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2천 평을 다 끝내야만 했다. 결국 재미 2시간이 끝나고 역시나 농사 2시간이 채워진 4시간이 지나서야 일이 끝났다.        

"고사리 삶을 수 있겄어? 물이 팔팔 끓을 때 넣고 이 막대기로 위아래를 뒤적여~ 요즘 고사리꾼들은 (무게를 늘리려고) 살짝만 데치기도 하던디 그리 하믄 못써. 고사리를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팍 터지매 으스러질 때까지 삶아서 볕에 잘 몰라(=말려)야 써. 이게 지금은 이렇게 많은 거 같아도 말리면 딱 1/10이 되부러. 머리카락처럼 가늘어징께. 그릉께 돈 안돼 이것도~ 끊고, 삶고, 말리고 손만 많이 가지 돈 안돼~"           

어르신의 한탄 섞인 설명을 듣고 내려와 고사리를 삶았다. 도저히 부엌 가스레인지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바로 파악했다. 화덕을 빌려왔고, 나무를 넣고 불을 피워 물을 끓였다. 건조망 같은 건 갖춰져 있지 않은 초보인 나는 돗자리며 김장 매트며 깔 수 있는 거라곤 죄다 마당에 펼쳤다. 어르신 설명대로 고사리가 팍 눌러질 때까지 삶아 건져 말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신기한지, 그 오동통하던 고사리가 햇볕 아래 반나절 있으니 정말 (머리카락은 과장이고) 연필심처럼 가늘어졌다. 내가 꺾어 온 6KG의 고사리가 600G으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국내산 건고사리를 100G에 평균 1만원에 사 먹는 도시 사람들은 왜 이리 고사리가 비싸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 종일 건고사리 만드는 일을 했던 내 노동력을 생각해 보면, 나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 셈이다.

거기다 대부분의 동네 어른들은 건고사리 100G을 만원 받고 팔지 못한다. 직거래니 인터넷 거래 같은 건 할 줄 모르시니 예전 방식대로 구례읍의 산나물 도매상에다 가져가 파신다. 읍내 도매상에선 100G에 4천원 정도를 받는다고 하셨다(키로로 거래하는 예전 방식의 도매상들은 1키로에 평균 4만원 / 근으로 거래하는 최근에 생긴 직거래 방식의 거래처들은 1근, 600G에 4만원선인 듯 하다. 젊은 사람들은 근에 4만원 거래를 하는듯 한데,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이 거래가 뭔가 불편하신지  예전 방식의 도매상들을 찾고 계신다). 주인 어르신 내외는 오전 내내 산기슭에서 10KG를 꺾고, 화덕에 불을 피워 뜨거운 열기 옆에서 매운 연기에 눈물 흘려가며 삶고, 볕을 따라 다니며 말리는 고사리와의 하루를 보낸다. 전쟁같은 하루를 통해 평균 4만원을 번다. 각자의 하루 일당은 2만원인 셈이다. 최저시급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런데 여기에서 놓지지 말아야 할 최초의 사실이 있으니! 고사리가 다른 작물에 비해 금값이라는 사실!       

이리 슬픈 농촌의 현실 이야긴 이쯤 해서 접고, 4월. 4월의 농사를 돌아본다. 4월에는 농사라기보다 채집을 통해 먹거리를 구하고 밥상을 채웠던 달이다. 고사리처럼, 두릅처럼 재배를 많이 하는 산나물의 경우에는 함부로 남의 땅에서 수확하는 것이 불법이 되었지만, 여전히 봄철 들과 산에는 가져가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먹거리가 지천이다. 달래, 냉이, 쑥은 말할 것도 없고 곰보배추, 민들레, 쑥부쟁이, 머위 등 잘만 보면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가격이 좋아서 이젠 재배하는 경우가 많은 고사리, 취나물, 두릅순, 엄나무순, 오가피순 같은 것들도 사실 뒷산에서 먹을 만큼 수확해 나눠 먹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꽃처럼 젊었던 그 시절에는 4월이 되면 산으로 가서 농사보다 먼저, 채집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농사보다 먼저, 채집하는 생활을 하며 갓 채취한 것들을 물에만 씻어 주로 생채로 먹거나 살짝 데쳐 먹었다. 산에 들에 내가 아는 존재들이 늘어나는 것도 신기하고, 그것들이 내 밥상에 밥이자 약으로 올라오는 것도 신난다. 농사보다 채집의 매력에 빠지려는 나를 다잡으며 채근한다. ‘이 자본주의 시대에선 거의 대부분이 주인이 있으니 포기해! 노동 없이, 남 눈치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극히 적다고!’ 야생 동물의 자유로움 같은 것을 느끼려는 나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지적하지 않았나! 수렵채집을 하며 살았던 인류는 농경을 하며 인구가 늘어났을지언정 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라고. “(이전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돌아갈 길도 없는 덫에 딱 걸린 꼴”로 살아온 인류의 역사는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하는 현대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데....(사피엔스, 134쪽) 농업보다는 수렵채집이 인류에게 더 적합한 삶의 방식이었나?? 정신차리라며 채찍질하지 말고, 들로 산으로 먹거리를 찾아 유랑하는 생활이나 해 볼까? 5월에 내가 밭에 없으면, 날 찾지 마시길ㅋㅋㅋ




(좌측부터) 달래, 머위, 쑥부쟁이 바구니 / 민들레, 곰보배추 바구니 / 쑥, 당귀, 표고버섯 바구니


#시골살이 #시골농사 #구례 #4월 #봄나물 #산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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