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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y 07. 2019

외모로 평가하지 마세요, 나무도 그래요.

rural recipe #06 (April 15th, 2019)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화단이었다. 집은 구옥이 아닌 개조한 양옥이라 겉에서 봤을 때 별 멋이 없었고, 잡초로 인한 고충을 덜기 위해 시멘트가 부어진 마당도 그냥 그랬다. 그런데 화단은 좀 특별했다.      

외부 도로와 경계가 되어 내부를 감춰주는 벽의 재료는 돌도 시멘트도 아닌 빽빽한 나뭇잎이었다. 사철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것이다. 안쪽으로는 모양이 제각각인 돌들로 화단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나지막한 틀이 되어 있었다. 아마 주인 어르신이 여기저기 다니실 때마다 적당해 보이는 돌들을 주워와 조금씩 완성한 것처럼 보였다. 화단 중간에는 고인돌처럼 크고 널따란 바위가 하나 떡 하니 놓여 있었다. 햇볕이 검은 바위를 달궈 놓았는지 바위 위에 앉으니 온 몸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이 들어왔다. 볕에 뭐든 말리기에도 완벽해 보이는 큰 바위가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화단에는 나무가 종류별로 심겨 있었다. 단감나무 두 그루, 대봉 두 그루, 산수유, 목련, 앵두 그리고 이름 모르는 나무 두 그루.          

'집 안에서 지낼 테니까 집 외관이 내 눈에 계속 보이는 건 아니잖아! 집 창 밖으로 화단은 계속 보이니까, 화단이 멋진 게 더 좋은 거지!' 라며, 집 외관을 아주 중요시하는 평소 소신을 한 번에 포기했다. 그렇게 화단에 꽂혀 이 집을 결정했다.   

나는 화단에 있는 다양한 나무들이 참 좋았다. 이사 와서 맞이하는 첫 봄- 노란 산수유꽃, 흰 앵두꽃, 아이보리의 목련꽃이 차례대로 피는 것을 구경했다.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열릴 테니, 하나씩 따서 바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나무 두 그루가 눈에 걸렸다. 대문 바로 앞에 한 그루, 반대편 끝에 또 한 그루가 떡 하니 서 있는데, 봄에 꽃도 피질 않았다. 거기다 줄기부터 가지까지 날카롭고 굵은 가시가 빽빽하게 박혀 있는 모습이 그다지 이쁜 나무에 속하질 않았다. 화단을 꾸며 놓은 주인 어르신의 감각을 높이 평가했던 나는 이 두 그루의 나무 배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다 4월 어느 날. 주인 어르신이 잠깐 집에 들르셨다 가시면서 화단을 보시더니 한 마디 하셨다. "아, 엄나무 순 올랐네! 어여 저거 따 먹어~ 저게 두릅순보다 귀하고 맛도 좋아! 우리는 두릅은 쳐주지도 않어!" 꽃은 안 폈는데 가시 박힌 가지의 끝마다 새순이 올라와 있었다. 가시나무의 정체가 엄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다. 그제서야 미적 감각이 뛰어난 주인 어르신이 왜 하필 화단에 이 못난 나무를 앞 뒤로 심으셨는지 이해가 됐다. 미적 감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미신이었다.       

가지부터 줄기까지 굵은 가시가 있는 두릅나무과의 엄나무(음나무, 엄목, 자추 등으로도 불린다)는 전국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세시 풍속의 주재료 였다고 한다. 엄나무 가지를 대문이나 상인방에 걸어 잡귀나 역병 등을 쫓는 역할로 썼다. 그런데 주인 어르신은 가지를 다발로 만들지 않고, 아예 대문 바로 앞에 엄나무를 심어 버리신 것이다. 뒷집 할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저승사자 도포자락이 길잖여~ 그런데 저 엄나무가 있으면 그 긴 도포자락이 가시에 걸려서 귀찮여~ 그래서 저승사자도 엄나무가 보이면 안 들어온다 했어!" 저승사자도, 처녀 귀신도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엄나무의 가시 돋친 외관이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르신의 말대로 갓 올라온 순을 똑똑 손으로 꺾었다. 가지에 가시가 박혀 있는 탓에 순을 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두릅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낱장의 잎들을 감싸는 받침이 분홍색을 띠며 다발을 만든다. 낱장의 잎은 펼쳐보면 단풍나무처럼 생겼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선명한 초록색으로 변하는 순간까지만! 데친 엄나무순을 먹어 본다. 두릅순 보다 향이 훨씬 강하고 연하다. 독특한 맛, 설명하기 힘든 맛에 익숙해지려 하자, 시즌이 끝나 버렸다. 순이 펴 버린 것이다.

다시 4월이다. 작년과 달리 꽃나무보다 가시 박힌 엄나무만 바라보고 서 있는 날이 많다. 새순이 올라오는지 잘 보고 있어야 했다. 엄나무순은 생각보다 고가의 식품이었다. 정체를 알고 나니, 읍내 장이나 인터넷에서 엄나무순을 파는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800G~1KG에 3만원 정도였다. 귀하고 비싼 식재료인걸 알게 된 탓이기도 하지만, 나의 입은 엄나무순의 맛에 눈을 뜬 상태였다. 일년에 딱 열흘 정도 순을 맛볼 수 있는데 하루라도 놓칠 수 없었다.       

엄나무순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틀을 더 두고 키웠다. 마침내 새순을 똑똑 꺾는다. 순간, 엄나무에게 미안해졌다. 이리도 맛이 있으니 예전부터 산짐승의 먹이가 됐을지 모른다. 동물들로부터 새 순을 보호하기 위해 엄나무의 가시가 더 날카롭게 진화되었을까? 이제 동물들은 엄나무의 새 순을 건드리지 못하지만, 이 못된 사람의 손과 입은 피할 수 없다. 그리 맛있는 순을 틔우는 나무로써의 운명이다.          

빽빽하게 굵은 가시로 귀신도 쫓는 엄나무. 꽃도 화려하지 않고, 가지 뻗은 모양새도 볼품없는 엄나무. 그러나 오랫동안 악귀와 잡병을 쫓아준다며 이 땅의 민초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했던 나무다. 그리고 봄철 사람들 입맛을 즐겁게 하는 보드랍고 향기로운 순을 먹거리로 제공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사람만 외모로 평가해선 안 되는 게 아니라, 나무도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 화단의 화룡정점은 바로 이 엄나무가 찍는다.




새순은 열흘 정도 살짝 데쳐 먹고 (좌), 좀 펴 버린 것은 엄나무순의 맛을 일 년 내내 즐기기 위해서 장아찌를 담아 둔다 (우





[덧붙여] 4월의 공짜 밥상 기록

4월에는 채취를 통해 얻은 먹거리로 밥상을 채웠다. 그야말로 공짜 밥상이다. 가장 사랑한 레시피는 역시나 모둠 산나물 샐러드. 씁쓸한 맛이 강한 잎일 때는 드레싱을 조금 달달하게 만들기도 했다. /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나물로 먹을 때는 처음에는 소금으로만 간해서 산나물 본연의 향을 즐겼고, 이후에는 된장, 고추장, 액젓 등 다양한 방식으로 버무려 더 어울리는 양념을 찾아보기도 했다. / 떡은 잘 안 하는데, 쑥이 지천이라 가장 간단한 쑥버무리를 해봤다. 나는 성격상 버무리로 형태 없이 뭔가를 만드는 게 어색했다. 결국은 모양을 잡아 주고야 말았는데 그러다 보니, 떡케이크가 탄생;;;

(좌측부터) 민들레+곰보배추+쑥부쟁이 샐러드 / 머위된장무침 / 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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