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ral recipe (July 10th, 2019)
치앙마이에서 귀국을 하며 한국의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친구가 웃긴다며 해 준 이야기. 어느 초등학생이 그린 한국 지도에는 한반도 한가운데 동그라미를 쳐서 서울이라고 적혀 있고, 38선 위쪽 영역으로는 '적', 제주도로 예상되는 곳에는 '귤'이 표기되어 있다고 했다. 나머지 38선 남쪽 영역에는 '시골'이 적혀 있다는데... 이토록 많은 시골 중에 어디로 갈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았던 지역을 제외한다, 추위를 많이 타니 따뜻한 남쪽으로 간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계속 적어 나가며 그 조건에 속하는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 때 몇 번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던 선택 사항이 있었다. 바로, '바다 동네인가-아닌가-'였다.
나는 해산물을 무척 좋아한다. 한 때 시장에서 어물전 장사를 하셨던 할머니의 밥상과 젊은 시절 학비를 벌려고 탔던 고깃배의 밥상에 길들여진 아버지의 식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 해수욕장이 유명한 동해안 바닷가를 여름철엔 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겨울 바다만 안다. 겨울은 각종 회와 해산물이 맛있는 계절이라 겨울철에 주로 바닷가를 찾았기 때문이다. 꼭 겨울철이 아니어도, 아버지는 내게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기회를 자주 선사했다. 직접 요리까지 하면서...
해산물을 맘껏 즐기려면 바닷가 시골로 가야 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바닷가 동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살아 본 적도 없으면서 그 쓸쓸함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지리산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식욕이라는 원초적 욕망이 이상향을 쫓는 머리에 의해 생긴 욕망에게 지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구례로 왔다.
기본적으로 구례는 산골이다. 식욕을 꺾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도 산골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5일장 찬스가 있었던 것이다. 구례는 남쪽으로 순천과 여수, 북쪽으로 남원과 곡성에 인접한다. 예전부터 생선 장돌뱅이들은 대체로 구례까지만 올라와 생선을 팔고 내려갔다고 한다. 구례를 지나 남원과 곡성까지는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남원이나 곡성 사람들이 큰 어물장을 보기 위해, 구례 오일장을 찾았다고 한다. 물론 전통 오일장은 어디나 축소되고 있다. 구례 오일장도 예전의 그 위상은 아니지만, 5일에 한 번은 순천, 여수, 고흥 등에서 올라온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시장에서 장 보는 법이 익숙지가 않았다. 현금으로만 결제하는 것도 불편하고, 잘 비교할 줄도 몰라서 관광객들처럼 손해를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제는 어느 집에 어느 물건이 좋은지, 몇 시에 가면 좀 싸게 살 수 있는지, 그 시기 제철이 무엇인지 정도는 파악하는 실력이 생겼다. 오일장 어물전에는 내가 모르는 해산물도 많다.
"그 생선은 뭐래요?"
" 빨간 고기 몰러? 구워도 먹고 조려도 먹고 맛있어~
라거나,
"이 장어는 어떻게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아 살짝 익혀서 믹서기에 곱게 갈어. 그리고 시래기 넣고 된장 풀어 끼려 먹으면 몸에 좋아~"
와 같은 대화를 하며 하나씩 배운다. 동해가 익숙한 내가 서쪽 남해에서 먹는 해산물의 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조개는 종류 별로 맛보며 산다. 꼬막, 소라, 피조개, 맛조개, 새조개, 백합, 가리비 등등이 각자의 제철마다 고등어, 갈치, 조기, 갑오징어 등과 같은 스테디셀러들 옆에 두 세 대야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장에는 제철은 약간 지났지만, 물을 뿜어대며 움직이는 싱싱한 바지락 대야에 꽂혔다. 집에 와서 해감을 한 번 더 하고, 여러 번 씻어낸 뒤 반은 냉동실에 넣는다. 국이며 찌개에 이 바지락 몇 개만 넣어도 맛이 달라진다.
결정적으로 바지락을 산 건, 비가 내리고, 열무김치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육수에다가 겨울을 이겨 내고 봄에 피어났던 표고버섯과 텃밭 야채들 몇 개를 썰어 넣는다. 동네 할머니들은 면도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드시지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엔 닿질 못해 건면을 쓴다. 건면은 따로 삶아 낸다. 바지락이 선사하는 맑은 육수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곁들이는 열무김치.
칼국수는 흔하고 싼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시원한 장맛비 소리 들으며 먹는 이 한 끼는 소박하기보단 거하다는 느낌이다. 산과 바다가 만난 한 그릇이니까. 장맛비가 그치고 나면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 있을테다. 닭까지 잡지 않아도, 이 풍성한 한 그릇으로 충분하다.
rural recipe
1. 각종 짜투리 채소로 가벼운 채소 육수를 만든다
2. 마늘을 다져 놓고, 칼국수에 넣으면 좋을 여러가지 채소들(당근, 호박, 버섯, 대파 등)을 썰어서 준비한다.
3. 다른 냄비에 칼국수면을 삶는다. (되도록 냉동된 생면을 사용한다)
4. 채소 육수에다 익는데 걸리는 시간 별로 준비해둔 야채를 순서대로 넣고, 간장과 액젓을 이용해 간을 맞춘다.
5. 다진 마늘과 해감해 둔 바지락을 넣는다. 대파와 기호에 따라 청량고추를 마지막으로 넣는다.
5. 바지락이 모두 입을 활짝 벌렸을 때 삶아 놓은 칼국수 면을 넣고 바로 그릇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