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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Sep 15. 2019

공장이 아닌, 부엌에서 만든 사각 덩어리의 맛

rural recipe (Februry 9th, 2019)


시골로 이사를 온 뒤, 나는 어머니가 많아졌다. 동네에 이웃하고 사는, 사회적으로 할머니에 속하는 분들을 '어머니'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도시에 있는 나의 (친)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셔서 어머니란 호칭이 딱 맞진 않다. 그렇다고 '할머니'라 부르기엔 내 나이가 머쓱하다. 아직 겨울 기운이 맹렬한 어느 오후였다. 마을의 새(new) 어머니들 중 한 분인 뒷집 어머니께서 문 앞에 서 계셨다.

"이 뚜부 한 번 먹어 봐 봐, 내가 만든겨~"

뒷집 어머니는 물컹한 뭔가가 들어 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뚜부'라고 하셨다. '뚜부가 뭐지? 두부를 말씀하시는 건가? 두부도 직접 만드신다고?' 봉지 속에는 하얀 사각 덩어리가 보였다. 예상대로 두부가 맞았다. 구례 사투리는 두부를 뚜부라 소리 내는 듯하다.

"아니 어머니, 뚜부를 직접 만드셨다고요? 뚜부 만들기 힘들 텐데~"
라고 말하니 바로 받아치신다.

"뚜부는 꼭 내 손으로 맹글어 먹제이~ 농사지은 걸로 겨울에 요로코롬 맹글면 꼬숩고 맛나~ 사 먹는 건 맛이 없더만! 양념장 맹글 줄 알지? 양념장 맛나게 해서 먹어 봐이~"

식탁에서 비닐봉지를 벗겨 낸 뒤 뚜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직접 만든 뚜부.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해 봐서 잘 안다.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힘과 정성이 들어 가는지. 체험 마을에는 기계도 갖춰져 있고, 도와주는 손이 많은데도 작업이 만만치 않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고, 짜고, 생긴 콩물을 계속 젖고 거품을 걷어내며 끓이고, 적당한 시점에 간수를 넣고, 몽글몽글 굳어 가는 순두부를 사각 틀에 붓고,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물을 빼내며 덩어리로 만드는 과정. 이 많은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것이 두부 덩어리다.

뚜부를 만드는 데 사용된 콩 역시 뒷집 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콩이다. 뜨거운 여름철 주변 잡초 없애가며 키워 알알이 여물면 수확해 콩깍지에서 털어 한 알 한 알 얻은 백태. 콩을 키워, 수확하여, 만만치 않은 작업을 변변찮은 기계도 없이 올해 팔십인 어머니 혼자서 해 낸 결과물이 바로 이 뚜부 덩어리인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뚜부를 관찰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두부들처럼 규격화된 크기가 아니다. 어머니 마음 가는 대로, 손 닿는 대로 칼로 조각을 냈다. 칼날이 닿은 표면은 매끄럽지만, 그렇지 않은 면은 울퉁불퉁하다.

어머니 말대로 후다닥 양념장을 만들었다. 두부를 숭덩숭덩 잘라 양념장을 찍어 먹어 본다. 마트에서 사 먹는 두부와는 비교가 어려운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더 놀라운 것은 두부의 단단함이다. '단단한 부침용 두부'를 사도, 막상 먹으면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 맛이 대부분인 공장 두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식감이다. 들기름 두른 팬에 노릇노릇 구워 먹으며, 내 입이 이 식감을 기억하지 못하길 바란다. 두부 만들 재주는 없으니 계속 사 먹어야 하는 운명인데, 먹을 때마다 이 맛이 떠오르면 속상할 것 같다.

다음 날 뒷집을 찾아갔다. 어머니표 뚜부를 맛 본 소감을 전하고 싶었다.

"어머니~ 뚜부가 정~말 맛있더만요. 어머니가 직접 키운 좋은 콩을 많이 넣어 만든 뚜부라 그런가~ 꼬숩기도 엄청 꼬숩고 딴딴하데요. 아니 혼자서 뚜부를 어째 그리 잘 만드셨데요! 뚜부 만들기 진짜 어렵던데!"

내 칭찬 섞인 소감은 진심이었다. 어머니 기분이 좋으신지 입 꼬리가 올라가신다.

"펴엉~생 맹글어 먹었는데 뭐시 힘들어. 옛날부터 겨울 되면 일 없고 한가쪄서 우리들은 뚜부고 묵이고 다 쑤어 먹었지~ 아, 묵을 한 번 해야 쓰겄네! 도토리묵 좋아혀?"

그렇게 해서 나는 며칠 후 뒷집 어머니가 주시는 검은 비닐봉지를 또 받게 됐다. 이번에는 흰색의 사각 덩어리가 아니라 진한 갈색이다. 도토리묵이다. 도토리묵 만드는 과정도 두부 못지않다고 알고 있다. 도토리묵 만들기는 체험도 못 해 봐서 상상도 잘 되질 않는다.

도토리는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많이 주울 수 없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산이나 동네 뒷산에서 겨울 동안 묵을 만들 정도만 주워 오시곤 하는 듯하다.

"어머니 묵이며 뚜부를 매번 이렇게 만드셔요?"

"콩 키우고 도토리 주워다 놓고 맹글어 먹제이~ 일 없는 겨울에 맹글고, 설 명절 때랑 제사 때 꼭 허고."

"어머니 자식들은 좋겠어요. 이렇게 맛있는 뚜부며 묵을 먹잖아요. 먹고 싶다고 말만 하믄 어머니가 또 만들어 주실 거 아녜요!"

"명절에 왔다 갈 때마다 싸 줬었제~ 근데 이제 우리 아들들도, 손주 놈들도 줘도 안 묵어싸~ 하긴 워~낙 맛나고 좋은 것들이 많은 세상이잖여"

"아니 왜요! 어머니 뚜부랑 묵이 제일 맛나는구먼!!"

"아녀. 안 묵어 싸~"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풍족하고 편리한 세상이 좋지만 한편으로 나는 번거롭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먹거리에 더 관심이 간다. 솔직히 말해서 한 번 맛을 보고 나면 그 맛 때문에 관심과 애정이 생가지 않을 수 없다. 공장에서 기계가 만든 먹거리와 밭에서부터 부엌까지 이어진 먹거리는 다른 차원이다. 직접 키운 농산물로 부엌에서 만든 재료 본연의 맛이 충만한 먹거리가 주는 맛을 능가하는 요리사도 만능 소스도 잘 없다.

새로 생긴 어머니들의 부엌이 궁금하다. 그녀들이 수십 년간 부엌에서 만들어온 먹거리들의 맛이 궁금하다. 공장에서 못 만들어 낼 먹거리가 없는 세상이지만, 오랜 시간 수고롭게 부엌에서 만들어 온 다양한 음식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릴까 봐 걱정된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들 부엌 탐방을 시작해 봐야겠다.



(위) 뒷집 어머니의 작품1. 콩으로 만든 뚜부 (아래) 작품2. 도토리로 만든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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