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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ug 01. 2019

풍선이 빵 하고 터지면, 핀다, 그 꽃이

rural flower (July 20th, 2019)



텃밭 농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어느 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감자꽃과 고추꽃도 몰랐다. 선물로 주는 꽃다발, 화분에 심긴 풀, 정원에 심긴 나무가 아닌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도 그토록 이쁘게 다양한 모습으로 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농사를 시작한 첫 해, 밭에 있는 작물들의 꽃과 잎의 생김새부터 알자고 결심했다. 내가 직접 키워야 빨리 배울 것 같아서 한 평씩, 두 평씩 심은 것까지 포함하면 1년 동안 30가지 정도 종류의 작물들을 키웠다.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 잎을 보고, 꽃을 보고, 열매를 보며 배우는 나날이었다.

무더운 7월. 작물들의 꽃은 주로 풍성해진 잎들 사이에서 핀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무슨 꽃이 폈는지도 보기 힘들 만큼 초록으로 덮인 밭들. 어느 날 동네를 걷다가 한 여름 초록의 밭에 보라색과 흰색 꽃이 줄지어 만발한 것을 보게 됐다. 내 밭에는 피지 않은 꽃이 동네 할머니들 밭 이곳저곳에 핀 것이다. 내가 무슨 작물을 놓쳤을까? 할머니들이 텃밭에 심은 것은 나도 대체로 다 심었는데...! 궁금증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보라색과 흰색의 꽃잎 다섯 장이 하늘을 보며 열려 있는 꽃의 정체를 뒷집 할머니에게 확인했다.

"쩌거? 도라지꽃이잖여~ 도라지 금(값)이 좋지."

도라지였다. 도라지는 먹을 줄만 알고, 경기 민요인 타령만 알았다. 심심산천(深深山川)에 흰 도라지가 폈다고 노래했으니, 도라지 꽃은 우리네 땅에서 본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었을 텐데, 몰랐었다. 도라지 꽃이 이토록 이쁘다니! 이리 이쁜 꽃을 볼 수 있는데, 나도 도라지를 좀 사다 심을걸... 후회가 됐다. 더군다나 도라지는 돈으로 바꾸기 좋은 작물이라고 하니 더 후회가 됐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의 표현방식이다. 도라지를 시장에 내다 판다고 하지 않고, 돈으로 바꾼다고들 표현하신다.) 

며칠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집 화단 감나무 아래에서 삐죽하게 서 있는 풀이 보였다. 20개 정도만 자라고 있어서, 잡초라기 보단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 심어 둔 무언가 같았다. 풀의 줄기와 잎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낯이 익으니 함부로 캐 버리지 말고 그냥 두기로 했다. 키가 쑥쑥 크더니 줄기 끝에 다이아몬드 같은 망울이 생겼다. 다음 날은 이 망울이 오각형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다음 날엔 보라색으로 변했다. 보라색 풍선이었다! 다음 날 아침, 화단으로 나왔더니 아침 햇볕에 풍선이 터졌나 보다. 다섯 장의 꽃잎이 열리며 꽃가루가 묻은 암술 다섯 개도 드러났다! 이 정체불명의 풍선꽃이 바로 동네 할머니들 밭마다 보이지만 내 밭에는 없는 줄 알았던... 도라지 꽃이었다.

도라지를 먹기 위해서였다면 할머니들처럼 밭에다 심었어야 한다. 감나무 아래라 작물은 잘 자랄 수 없는 화단에 20개 정도만 심어 놓은 것은 도라지 뿌리를 캐 먹기보다 꽃을 보기 위해서 심었던 것 같다. 도라지 꽃이 이리 이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아니, 도라지 꽃이 피는 과정이 이리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풍선꽃 아니 풍선이 빵 터지면 피는 꽃을 올 해도 기다렸다. 동네 밭에는 다 폈는데도 우리집 도라지는 다이아몬드만 생기고 보라색 풍선은 생기질 않았다. 감나무 아래에 뿌리를 내리느라 햇볕을 많이 받질 못하고, 새 주인은 퇴비도 따로 주질 않으니 개화를 포기할 만도 하다. 하지만 도라지는 키를 계속 키우며 볕을 받을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을 변화시켰다. 마침내 보라색 풍선이 부풀었고, 풍선은 빵 하고 터졌다. 지난해에는 도라지꽃을 알았고, 올 해는 우리 집 화단 도라지꽃들은 다른 도라지들보다 더 힘겹게 핀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굴은 본 적 없지만, 먼저 이 집에 머물다 간 사람 덕분에 도라지꽃이 피는 과정을 즐기는 기쁨을 누린다. <나무를 심는 사람> 이야기가 떠 오른다. 나도 조금씩 나무와 풀을 심으며 살아야겠다.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가 언젠가 그 나무와 풀로 인해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건 멋진 일이란 걸 알았으니까!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세상에 멋진 일 하나는 만들 순 있을 것 같아서, 풍선꽃처럼 내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도라지꽃이 피는 과정. 재미있고 신비롭다 ^^ (2019)


#나의작은숲 #시골살이 #구례 #꽃 #여름 #도라지 #나무를심는사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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