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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r 30. 2019

양귀비꽃보다 먼저 피었네

rural scenery #04 (March, 2018)


구례는 지리산으로 유명하지만, 보석 같은 섬진강이 흐리고 있기도 하다. 섬진강은 다른 강들과 달리 정비가 덜 되어 있는 편이다. 섬진강이 우리나라 4대강 안에 들지 않고, 다섯번째 큰 강인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4대 강을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ㅠㅠ) 매일 섬진강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 느끼게 된다. 그 이유가 섬진강은 여전히 자연 하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까닭인 것 같다.

다른 강들은 정비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강물이 흐르는 옆 주변을 시멘트나 타일 등을 깔아 물이 흐르는 길만 직선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 가로수나 가로등을 설치하고 강이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알 수 없게 변했다. 하지만 섬진강은 강물 주변이 여름이 되면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미지의 숲처럼 느껴질 만큼 그대로 둔 편이다.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갈수록 더 크게 느끼게 한다.

섬진강 지류 중에 서시천이 있다. 서시천은 구례 산동에서 시작해 남서쪽으로 흘러 4개의 면을 지나 구례읍까지 닿는다. 지리산 둘레길 중, 오미~난동 구간에 바로 이 서시천변을 걷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다. 둘레길에도 포함되어 있고, 주민들도 자주 산책하는 길인 서시천변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한 폭의 그림으로 옆에 끼고 걸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길이다. 그런데 이 서시천변의 일부는 구례군에서 좀 다른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한다. 바로 꽃을 인위적으로 심는 것이다.    

서시천변은 봄이 되면 먼저 유채꽃밭이 된다. 오월이면 양귀비 꽃밭으로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가을에는 코스모스 대궐이 만들어진다. 섬진강 옆에다 꽃을 심어 마치 꽃강을 만드는 것 같다. 꽃강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환경에 해가 되진 않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지역에 비하면 그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관광객들이 들끓어 지역에 피해를 주는 수준도 아니다. 그래서 구례 지역민들이 오히려 이 꽃강을 기대하고 기다리기도 한다.     

날씨가 따뜻해져 오랜만에 서시천변을 산책했다. 걷다가 엉덩이에 앉은뱅이 의자를 차고서 줄지어 밭을 매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강변에서 뭘 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요즘에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할머니들에게 무조건 물어본다. 시골에선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누가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나 책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모르면 즉시, 잘 아는 분에게 묻자는 신조가 생겼다.   

"뭐하고 계셔요?"

"꽃밭 매지."

"무슨 밭이요? 꽃밭?"

"여기다 양귀비 씨앗을 뿌려놨는디, 꽃이 이뿌게 필라믄 이래 밭을 매 줘야햐~ 꽃 이뿌게 필겨. 놀러와잉~"

먹는 것을 키울 때만 밭을 매는 줄 알았는데, 보는 것을 키우기 위해서도 밭을 매고 계셨다. 양귀비꽃은 아직 피지도 않은 밭을 나는 한참 보고 섰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지 사람이 어떻게 꽃보다 아름답냐며 반박했다. 그저 이쁘게 폈다가 소리 없이 지며 흙으로 돌아가는 꽃이 세상에 피해만 끼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았다. 그런데 양귀비 꽃보다 먼저 핀 꽃님들이 더 이뻐서 그 뒷모습을 한참 보고 서 있었다. 할매들의 생이 양귀비꽃만큼 이쁘면 이뻤지, 못할게 뭐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들의 생은 고단하고 고달팠을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산에서 들에서 무언가를 돌보며 살았던 생이다. 칠십 넘고, 팔십이 넘어서도 양귀비꽃이 이쁘게 필 수 있도록 두 손으로 밭을 매는 능력을 가진 할매들이 시골에는 가득하다. 아무래도 할매들 곁에서 좀 오래 살아 봐야겠다. 나도 꽃보다 이쁜 생을 가진 할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두 달 후, 할머니들의 말은 증명되었다. 이리도 이쁘게 양귀비 꽃대궐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할매들이 더 이뿌다. (2018년 5월)


#나의작은숲 #시골살이 #구례 #꽃밭 #봄 #시골풍경 #양귀비 #서시천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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