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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Mar 22. 2019

시골집 구경

rural hobby #03 (March 21st, 2019)



면 단위로 이사를 온 뒤, 공공기관 업무를 보거나 장을 보기 위해선 읍내로 나가야 한다.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아직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건강진단서와 주민등록 초본이 필요해 두세시간을 예상하고 읍내에 나갔다. 보건의료원에 도착해서 접수 및 수납부터 세 과를(임상병리과 - 방사선과 - 건강검진과) 거쳐 검사를 하데 걸린 시간은 총 15분. 기다림이란 단 한 번도 없었다.      

다음은 읍사무소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떼야하는데, 하필 12시 20분.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니 좀 기다려야겠거니 하고 (도시적으로) 생각하며 읍사무소에 들어가니 불이 거의 꺼져있다. '설마 점심시간에는 아예 업무를 안 하는 건가!' 했더니, 텅 빈 공간 속에서 직원 두 분이 일어나 "무슨 업무 보시게요?" 한다. 아무래도 점심시간엔 사람들이 (피치 못하게 그 시간에만 가능하거나 어쩌다 오게 된 나 같은 사람을 빼곤) 업무를 보러 오지 않나 보다. '당신들도 밥을 먹어야 하고, 나도 밥부터 먹고 일을 봐야지~' 하는 분위기다. 역시나 필요한 서류들이 내 손으로 들어오는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끝나 버린 읍내 업무. 그냥 집으로 돌아가긴 아쉽다. 어떻게 나온 읍내인데! 우연히 생긴 여가 시간, 내 취미 중에 구례 읍내에선 더욱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 취미로 시간을 보내면 완벽하다. 구례로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나의 오랜 취미인 (아파트를 제외한) 집 구경이 구례에선 시골집 구경으로 구체화됐다.    

우리 동네도 대부분이 시골집들이다. 그런데 구례 읍내에는 훨씬 더 많은 집들이 밀집해 있고, 집들이 모여 형성된 골목들이 남아 있다. 폭 1미터도 안 되는 꼬불꼬불 골목길을 걸으며 시골집들을 구경한다. 옛집들 중에는 지붕을 개량하거나, 외벽을 바꾼 경우도 많다. 헐고 양옥으로 새로 지은 집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도시의 읍내와는 다르게, 새로 지은 집들도 옛 것과 조화를 이루며 전체 풍경을 해치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 다층의 빌라나 상가건물도 있지만, 키나 규모가 아주 커서 위화감을 주는 경우도 없다. 읍도 면 단위 마을에서와 마찬가지로, 지붕 위로는 건물 대신 하늘과 지리산이 보이는 풍경이다.       

사실 집은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공간, 아주 사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 사진을 찍을 때, DSLR같이 티가 나는 카메라를 쓰지 않고 핸드폰을 이용해 살짝 찍는다. 몰래 찍는 것 자체로 이미 예의가 아니지만, 대놓고 침범하기보단 잠깐 밖에서 구경하는 정도로 집주인의 용서를 구해 본다. 마치 대문은 열어 두지만, 다 보여 줄 수는 없어서 커튼을 쳐 놓는 집주인의 마음 앞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소심한 양해다.    

아무래도 시골집 중에는 당장 살기엔 어려운 상태의 빈집도 많다 [1]. 나는 이런 빈집에 유난스러운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넌 괜히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거야~ 저기 살 수나 있겠어?"라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집은 살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살아왔던 공간, 버텨줬던 공간으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영정사진을 찍듯이 스러져 가는 집의 마지막 모습을 찍어 댄다.    

독립 이후, 나는 아직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집에 머무르다 다시 다른 누군가의 집으로 옮겨 다녔다. 이곳에도 내 집은 없고, 모두 남의 집들일 뿐이다. 그러나 시골집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해진다. 화려하거나 크진 않아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집. 추억과 이야기를 간직한듯한 집. 시골집들을 통해 나는 혹시라도 내가 집을 가지게 된다면 바로 이런 집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런 집 하나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꿈꿔 본다.     

추위가 물러가고 걷기에 충분히 좋은 봄날, 거기다 아직 본격 농번기로 접어들진 않은 3월. 나는 틈만 나면 사람들의 마음이 머무는 따뜻한 공간, 시골집 구경으로 취미 생활 중이다.



[1]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김진애 박사의 2017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1,800만 호의 집들 중에 130만 호가 빈집이고, 전남은 더욱 심각해서 20%에 육박하는 빈집이 있다고 한다 (2019년 3월 21일 방송)


#나의작은숲 #시골집 #취미 #구례 #취미생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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