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 - 벼랑 끝 전술에 대처하는 법

직장인의 작은 경영학 #1

by 구형라디오

“부사장님께서 오늘 석식은 하지 않으시겠답니다.”

중요 고객과의 오전 미팅 도중, 고객 실무자가 보낸 한 줄 메시지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부품사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 간 리더십 미팅.
우리는 한 달 전부터 자료를 갈아 넣었고, 부사장님 한 분 한 분의 식습관·알레르기까지 파악해 석식 의전까지 완벽히 준비했다.
호텔 근처로 할지, 조금 멀어도 입소문 난 맛집으로 할지, 좌석 배치도 수십 번 바꿨다.

그런데 당일 아침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고객 부사장은 작정하고 우리를 몰아붙였다. 목소리도 높아졌다. 핵심 기술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오전 미팅이 끝나갈 무렵, 그 메시지가 날아왔다.
“부사장님께서, 석식 취소하시겠답니다.”
→ “석식 자체를요?”
→ “네, 전부 취소입니다.”

40석짜리 유명 호텔 레스토랑 전체를 예약한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석식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관계의 마무리,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걸 거부한다는 건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라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내부는 초비상. 점심시간도 없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결국 오후 회의에서 우리는 상당 부분 고객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오후 3시경, 다시 메시지가 왔다.
“부사장님께서, 그래도 석식은 진행하시겠답니다.”

우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석식 자리에서 웃으며 사진 찍고, 술잔 기울이며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고전적인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이었다.

고객은 오전 내내 벼랑 끝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석식 취소’라는 극단적 신호로 협상의 공을 우리 쪽에 넘겼으며, 우리가 당황해 양보하자 슬쩍 철회하면서 실리를 챙겼다.

우리는 왜 그렇게 당황했을까?
그리고 다음번엔 어떻게 덜 당할 수 있을까?
이론대로라면 이렇게 대응했어야 한다

1. 감정부터 끊기
“알겠습니다.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 시간 확보

2. 비용 계산
고객이 잃을 체면 > 우리 위약금. 블러핑일 확률 80%

3. 대안 제시로 주도권 되찾기
'그럼 6시 반에 라운지에서 간단히 한 잔만 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4. 시간 압박 역이용
“호텔에 확인해 보니 오후 3시까지 취소 가능하다고 합니다. 3시까지 회신 주시면 바로 취소 처리하겠습니다.”

5. 철회 순간이 진짜 협상 시작
“다행이네요. 그럼 그동안 미뤄뒀던 조건 이번에만 조정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나 현실.........

- “내가 뭘 잘못했지?”
- “분위기 깨지면 다음 회의도 끝인데…”
- “휴... 살았다. 조건 좀 양보하자.”

이게 99%의 직장인 반응이다. 나도 그랬 우리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몇 번은 무조건 당한다.
그게 정상이다.
수차례 반복되면 “아… 또 시작이네?” 하고 피식 웃게 되고, 10번째쯤 되면 “또? 이번엔 뭐 달라고 할 건가” 하며 미리 준비하게 된다.

완벽히 안 당하는 사람은 없다.
'모르고 당하는 것과 알고 당하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억울함과 답답함,
나를 포함한 수많은 직장인이 똑같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조금씩 경험 쌓이다 보면 언젠가고객이 “석식 취소하겠다”라고 할 때 속으로만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 겁니다.

“아, 또 시작이네. 이번엔 뭘 얻으려고?”

그날이 오면 당신은 이미 고수입니다.
모르고 당하지 말고, 알고 덜 당하는 직장인이 됩시다.

화이팅!
(우리 모두 오늘도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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