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이름, 그리고 음악

무엇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글로벌 흥행을 만들었을까?

by Ananke


무엇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까?


원작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만들기가 참 어렵다. 특히 그 원작이 이렇게 인기 높은 작품일 경우에는 더 그런 듯하다. 팬들은 상상 이상의 애정을 원작에 쏟으며, 글자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가슴에 새겨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명작으로 손꼽히는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도 팬들의 비판은 존재했다. 당장 지금도 HBO의 새로운 해리포터 드라마가 여러 비판을 직면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그려지던 그 수많은 상상들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자주 되새기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를 보고 필자는 깨달았다. 원작을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지 않아도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분명히 원작 소설과 분명히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원작이 이 영화 속에서 훼손되지 않고 살아 숨쉬는지에 대해, 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원작 팬들과 원작을 모르는 사람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던 이 영화의 힘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과 어째서 해당 차이점이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부터 먼저 살펴보자.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은 그레이스와 로키의 과학 능력치가 상당히 축소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레이스는 처음에 깨어나고 난 후, 자신이 누구인지, 그곳이 어디인지,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가 있던 곳에는 창문이 없어서, 영화에서처럼 창 밖을 보고 우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도 없는 상황. 메인 조종실로 이동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말해서 음성 잠금을 해제해야 한다는 제약이 걸려 있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이름을 아직 기억해내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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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변에 있는 시험관을 허공에 던져보다가, 떨어지는 모습이 자신의 상식과는 다르게 왠지 거슬린다는 점 하나에 착안하여 실험을 시작한다. 시험관을 특정 높이에서 떨어뜨려 보며 떨어지는 시간을 이용해 중력가속도를 확인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험관이 정상 지구에 비해 빠르게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이 있는 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대한 원심분리기 등 반대 가설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고, 여러 가지를 확인한다. 그레이스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과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장면들은 영화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의 그레이스는 깨어나 버둥거리면서 움직이다가 창 밖의 우주를 확인한다. 그리고 계산을 통해 자신이 있는 태양계가 지구 태양계가 아님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바로 연결된다. 원작에 비해서 아주 단순한 과정이자,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영화에서 그레이스가 했던 중력 실험과 계산을 모두 다루는 건 아마 적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시각적으로 배경 정보를 전달하고 다음 시퀀스로 넘어가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해당 각색은 잘 선택되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우주에 있음을 관객들에게 빠르게 시각적으로 납득시키면서도, 그레이스갸 기본적으로 과학과 관련된 능력치가 출중한 사람임을 간편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레이스가 원작처럼 창 하나 없는 선실에서, 화이트보드와 펜만을 이용해 우주에 와 있음을 알아냈다면 일단 아름다운 우주의 풍경을 관객들에게 한참 후에나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차이점으로는 캐릭터들의 성격이 보다 둥글게 수정되었다는 점이다.


양화에 등장했던 스트라트의 노래방 장면이 몹시 화제였다. 하지만 소설 속 스트라트였다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엄청난 원칙주의자에 효율을 중시하는 캐릭터였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지구의 멸망을 늦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던 사람이았다. 노래방 파티에 가서 직접 노래를 부른다? 사실 스트라트 원작 캐릭터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스트라트의 이런 성격을 정말 잘 보여주는 원작 속 장면 중 하나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완성을 위해 스트라트는 그야말로 세계의 모든 기술과 연구를 끌어다 사용한다.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없을 리 없었다. 저작권 존중에 대한 내용으로 소송이 들어오는데, 스트라트는 법정에 나가서 자신은 여기 올 이유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효율성을 위해 이미 국제조약에 따라 지구에서의 모든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으며, 미 대통령으로부터도 미국 관할지역 내에서의 모든 혐의에 대한 사전적 사면을 받았다고 말이다. 지구를 구해야 하는데 이런 사소한 불만을 상대할 이유가 없지만, 모두가 모여 제기한 소송이니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다른 분쟁의 싹을 일찍이 자르기 위해 출석은 했다고 말하며 바로 법정을 떠나는 그녀. 이렇게 일방적으로 법정을 나갈 수 없다는 법정 관리인의 말에 그녀는 말한다.



"선생님, 법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제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나라 군대를 동원할 생각인가요?"


스트라트가 물었다.

군복을 입은 무장한 남성 다섯 명이 법정으로 들어와 스트라트 주위에 늘어섰다.


"저한테는 미군이 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되게 괜찮은 군대죠."


이랬던 그녀가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파티 현장에 직접 나타나 노래까지 부른다? 원작 팬이라면 사실 이 장면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의아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마찬가지로 그레이스의 캐릭터도 변화한 부분이 있다. 지성이 돋보이던 부분은 간단하게 넘어갔고,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 외에 다른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은 아예 묘사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트라트가 억지로 그레이스를 헤일메리 호에 탑승시킬 때...


그레이스 박사의 저항은 원래 훨씬 더 강했다. 독방에 며칠 갇혀 있기도 할 정도였으니. 스트라트를 향해 당신은 날 살해하는 거라고, 이렇게 날 보내면 내가 임무에 협조할 거라고 어떻게 믿냐고 말하기도 한다. 원작의 스트라트가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그러니까 인간적인 면모를 처음 드러내는 것도 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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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의 스트라트는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를 강제로 우주선에 타게 만든다. 당신을 믿기에 이렇게 한다면서. 원작에서도 스트라트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고, 막상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신에게 엄청나게 화를 낼지언정 결국 우주에서 맡은 일을 수행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옳은 일을 결국 할 사람이란 걸 99퍼센트 확신한다고. 하지만 그 혹시 모를 1퍼센트에 대비하기 위해, 역행성 기억상실을 일으키는 약물을 사용해 그레이스가 억지로 왔다는 사실을 잊게끔 할 거라고도 말한다.


아마 영화 속 스트라트의 면모는 이 장면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편린을 조금 더 확대한 것이었을 테다. 소설에서 맥락적으로, 독자들의 상상으로만 보였던 부분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관객들이 보다 수월하게 스트라트의 선택을 이해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레이스의 저항이 축소된 면 역시, 그의 거부감을 쉽게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보여 주고 그레이스가 결국 지구를 구하는 데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는 그 희생의 무게를 지나치게 깎아내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비인간적으로 보일 만큼 효율을 중시하던 스트라트의 철혈 같은 면모 사이로 비치던 평범한 인간의 모습들, 찌질하다고 할 만큼 두려움이 많아 피하고 숨기만 하던 그레이스의 성격 사이로 비치던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지구를 위한 사명감, 이런 부분들을 영화에서 원작의 속도로 고스란히 보여주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각색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성격 중 공감할 만한 부분들, 본받을 만한 부분들을 조금 더 확대하여 묘사하고 관객이 그에 이입할 수 있게끔 유도, 영화 자체의 몰입감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영화를 보다가 악역이 아닌 캐릭터의 장면에서 '저 사람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해?' 이런 생각이 든다면...글쎄, 그 영화는 관객을 잡아끄는 힘을 이미 잃어버린 셈이다.


소설에서는 영화에 비해 인물들의 결점도, 날카로운 면모도 세세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를 사랑하게끔 만들 시간도 페이지도 충분한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시간적 한계가 있기에 캐릭터들을 조금 더 둥글게 묘사하는 것이다.


로키의 능력치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보다 어른스럽고, 장난스러움보다는 진지한 면모가 많았던 소설 속 로키는 훨씬 생동감 있고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스크린 속에 등장한다.


원작에서의 로키는 그레이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그 우주를 떠돌며 에리드를 구할 답을 찾고 있었다. 훨씬 오랜 시간 홀로, 살아남지 못한 동료들의 곁에서 원인을 찾았던 로키가 영화 속에서처럼 장난기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영화 속 로키는 아주 귀엽고 장난스럽다. 그레이스보다 어리게 느껴질 정도로 활발해 보인다. 왜 굳이 이렇게 각색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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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그레이스와 로키는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함께한다. 많은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 실험하고, 발견한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의 관계는 천천히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작은 농담, 큰 고민거리, 일상적 이야기들이 층층히 쌓아 올려지고 독자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는 매체다. 그렇기에 영화 속 주인공들 혹은 주인공의 친구들 중 한 사람이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귀여운 느낌을 담당하게끔 설계되는 작품들이 많은 것이기도 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루트와 로켓, <스타 워즈>의 츄바카나 알투디투와 같은 캐릭터들, 디즈니 공주들과 늘 함께하는 동물 친구들이 대표적 사례이다. <반지의 제왕>의 메리와 피핀,<해리 포터>의 론, 위즐리 쌍둥이처럼 주인공 친구 중 한 사람은 푼수 혹은 장난꾸러기인 경우는 무수하게 많다. 가장 자연스럽게 줄거리의 무거움을 잠시나마 가볍게 하고, 관객의 기분이 마냥 심해로 가라앉지 않게끔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도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줄거리는 기본적으로 지구를 구하기 위한 편도 여행으로, 아주 다크한 편에 속한다는 것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로키와 그레이스가 관계를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로키를 훨씬 적극적이고 장난스러운 성격으로 변화시킴으로서 과정의 진행 속도 자체를 앞당기는 효과 역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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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관객은 로키의 귀여운 모습을 통해 보다 쉽게 두 사람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에 몰입한다. 후에 그레이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로키를 뒤쫓아 갈 때도 왜 저러냐는 반응 대신 그래 이거야! 하며 박수를 쳐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소설에 비해 관객을 빠른 시간 안에 납득, 몰입시켜야 한다는 핸디캡을 가진 매체다. 소설에 비해 너무 가벼워졌다는 비판이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각색이 없었더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가 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로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적용된 각색은 지금까지 본 사례 중 손꼽을 정도로 좋았다. 원작이 가진 메시지나 주요 이벤트는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전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들까지도 몰입할 수 있는,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원작 팬들에게는 상상밖에 할 수 없었던 우주외 에리드, 로키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제 원작의 각색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작품 자체에 대해 보다 깊은 부분을 한 번 들여다보려 한다.



" 이름 (Name) "



필자는 글을 쓸 때, 주인공의 이름에 캐릭터의 성격이나 운명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축이다. 그래서인가 이렇게 감명 깊은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이름에 대해 쓸데없이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역시 등장하는 이름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인공의 이름은 라일랜드 그레이스이다. 영어로 표기하면 Ryland Grace.


필자가 너무 과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의 이름에는 분명하게 의미가 담겨 있는 걸로 보인다.


Ryland는 rye-land 라는 오래된 영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리고 여기서 rye는 무슨 뜻인가? 바로 호밀이다. 호밀빵을 만들 때 쓰는 그 호밀, 밀과는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그 호밀이 맞다.(호밀밭의 파수꾼 할때 그 호밀도 맞다.) 따라서 라일랜드는 호밀밭, 호밀의 땅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호밀이 밀과 무슨 차이냐 하면...


바로 내한성(耐寒性)이다. 추위에 강하다는 말이다. 온도 변화에 강하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극한의 추위를 가진 러시아에서도 멀쩡히 재배되고, 고온의 여름에도 잘 버텨내는 강한 작물이 호밀이다. 워낙에 잡초처럼 살아남아 내는 생명력을 가졌기에 거칠고 퍽퍽하며 독특한 맛을 낸다는 인식이 있는 작물이기도 하며, 보드카의 원료이기도 하다.(그레이스가 마신 보드카가 일류키나의 것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 빙하기가 찾아올 운명을 맞이한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그의 운명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 듯한 이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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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신 분들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해당 소설은 퇴학당하고 방황하던 주인공 홀든이 3일간 뉴욕으로 가출하여 돌아다니며 우울함을 떨쳐내려고 하지만, 어디에든 위선적인 어른들만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고 여동생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은, 홀든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 <호밀밭의 파수꾼> 中


그레이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학계에서 소외되었던 과학자이자, 학교의 교실에서 새로운 열정을 찾아 누구보다 기쁘게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영화판에서도 그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지만, 소설에서는 그의 애정이 좀 더 명확하고 깊게 드러난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이 대사에 그레이스 박사도 아주 잘 어울린다. 아이들이 재앙 가득한 미래로 떨어지지 않게끔 잡아 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결국 라일랜드라는 이름은 호밀이 자라는 땅.


끝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 목표한 것을 이뤄내고야 마는 그의 강인함이,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그의 지속성이 그대로 들어 있다.


그렇다면 그의 성인 그레이스는요 영어로 적어 보면 아주 명확해 보이는 단어다. Grace.


말 그대로 은총이다. 기독교/천주교 문화권인 서양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국의 국가인 Amazing Grace와도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잠깐 가사를 한 번 살펴보자면 이렇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놀라운 은총이여 그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

That saved a wretch like me

나 같은 망가진 놈을 구하여 낸 그 소리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나 한때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찾았고

Was blind, but now I see

한때 눈이 멀었으나 이젠 볼 수 있게 되었네...(중략)


....Through many dangers, toils and snares

수많은 위험과 역경, 그리고 유혹을

We have already come

우리는 이미 거쳐 왔다네

T'was grace that brought me safe thus far

그 은총이 나를 안전하게 지금 여기까지 이끌었고

And grace will lead me home

그리고 그 은총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줄 것이오...(중략)


...The earth shall soon dissolve like snow

이 땅은 곧 눈처럼 녹아 내릴 것이며 The sun forbear to shine

태양도 더 이상 그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오

But God, who called me here below

그러나, 이 낮은 곳에 있던 나를 불러주신 주님께서는

Will be forever mine

영원토록 나의 주님이시리라

When we've been there ten thousand years

우리가 그곳에서 만년이 지나도록

Bright shining as the sun

저 태양처럼 밝게 빛난 이후에도

We've no less days to sing God's praise

앞으로 우리가 주님의 찬양을 노래할 날은 영원무궁하리라

Than when we first begun.

우리가 처음 노래한 그날에도 그러했듯이


아주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기억을 잃었던 그레이스가 다시금 기억을 떠올려가며 지구를 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고, 로키와 함께 일하며 수많은 위험을 거치고 결국에 집을 찾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앞부분의 가사와 꽤나 잘 어울린다.


눈처럼 녹아 내릴 땅과 빛을 일어가는 태양에 대한 부분은 또 어떻고요? 지구의 상황을 너무도 우연하게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결국 찬양을 노래할 날이 영원하리라는 곡의 마무리까지도 희망을 찾게 되는 지구를 너무 닮았다.


라일랜드 그레이스를 합쳐서 연결해 보면 호밀밭의 은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의 그레이스 박사는 지속성에 대한 축복이자, 견뎌내는 힘에 대한 찬사를 이름으로 받은 셈이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는 이름부터 지구를 구해내고야 말 적임자였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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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스트라트의 이름은 훨씬 더 쉽게 풀이 가능한 이름이다.


서구권에서 에바, Eva라는 이름은 이브, 성경 속 첫 번쩨 여성의 이름에서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브는 '원죄'를 저지른 자로, 인간이 낙원을 떠나 거친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원인이라는것이 기독교적 설명이 되겠다(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에바 스트라트 역시 이런 역할을 한다. 멈추지 않는 추진력과 강인함으로 모든 것이 무사할 거라는 환상에 젖어 살던 사람들을 차가운 현실로 끌어내는 역할입니다. 그레이스마저 다른 과학자들이 해결할 거라고 애써 외면하던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게끔 그녀는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스트라트라는 성은 또 어떤가. Stratt는 Street, 오래된 영어로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Roman street에서 온 이름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오래된 어구처럼, 스트라트는 없으면 길을 만들어서라도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출 수 있게 한다. 이 프로젝트 헤일메리 안에서만큼은 에바 스트라트의 권한을 뛰어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거부하는 그레이스에게 약물까지 써 가면서 강제로 헤일메리 호에 탑승시킬 만큼 정말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그녀는 남극에서 핵폭발을 일으켜 지구온난화를 앞당김으로서 헤일메리가 해결책을 찾아내기 전까지 빙하기를 조금이나마 늦추려고 시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물론 낙진 등의 피해가 없는 방법을 사용하기야 했지만, 빙하를 녹이고 공기 중으로 엄청난 양의 메탄이 퍼져나가게끔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결국 에바 스트라트는 죄를 지어서라도(인류를 구한다는 목적 하에 저지른 죄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들을 이끌어 목적지까지 다다르게끔 만드는 사람의 이름이다. 소설판만 고려한다면 완전한 선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녀 같은 사람이 없었더라면 지구는 아마 생존할 수 없었을 테다.


그렇다면 우리의 로키는 어떨까?


그레이스는 바위를 닮았다며 그를 Rocky라고 이름 지어 주었디. 그리고 미국 미디어에는 아주 유명한 또 다른 로키(옛날식으로는 록키)가 있는데-

image.png 록키 빌보아. 복서. 실베스터 스텔론의 대표작 중 하나

록키 빌보아(Robert "Rocky" Balboa). 1976년 개봉작으로 아주 오래된 영화 <록키>의 등장인물이다.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겨내는 복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로키의 이름은 이 캐릭터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붙여 준 그 짝의 지구식 이름은 에이드리언이었다. 이 영화에서 록키의 연인(후의 아내)이 가진 이름이 바로 에이드리언이다(Adrianna 'Adrian' Pennino).


바위처럼 든든하게 포기하지 않았던 해당 영화 주인공과 우리의 로키는 상당히 닮아 있다. 친구인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 독이나 다름없는 지구의 공기에 노출되는 것도, 그레이스의 무사 귀환을 위해 본인의 연료를 나눠주는 것도, 표정을 알아볼 수 없지만 누구보다 다정하고 강인한 로키의 이 모습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서도 인간미까지 갖춰 한때 모든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복서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실제로 영화 중에 영화 <록키>의 OST로 유명한 "The Final Bell"이 삽입되기도 했다. 아마 제목은 모르시더라도, 들어보시면 아 이 노래! 하고 다 알게 되실 만큼 유명한 BGM이다.


https://youtu.be/GS_tOd2bnS0?si=xkVkW50YlCSwvb-r


야오 리지에 선장의 이름은 정확한 한자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중국어로 '야오yao'라고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要. 중요하다, 필요하다, 원하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 혹은 藥, 약, 말 그대로 치유의 의미다. 선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편도 원정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로 선정되었던 그의 중요성을 그대로 담아낸 이름이다.


일류키나의 풀네임은 Olesya ilyukhina. 여기서 Olesya는 남성 이름 Oles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Oles는 Alexander에서 온 것이다. 그리스어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형은 Alexandros, 인류의 수호자라는 의미를 가졌던 이름을 만나게 된다. ilyukhina는 ilyukhin의 여성형 이름으로, 해당 이름은 히브리어 Elijah에서 나왔다. 한국어로 풀이하자면 '나의 신은 야훼이시니'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일류키나의 이름은 신을 향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의미가 되겠다.


이름들의 의미를 생각하며 다시 돌아보면 역시나 완벽한 작품이었다.


사실 이번 영화화 과정에서 그레이스 박사의 과학적 성취에 대한 면모는 살짝 축소된 감이 있다. 소설 속에서 그레이스 박사는 창문 밖 한 번 내다보지 않고 몇 차례의 계산을 통해 주변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 우주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아낼 만큼 통찰력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그레이스 박사는 거대한 절망을 마주한 인간의 모습을 보다 '인간적'으로 그리며, 일반 관객들이 그의 막막하고 비참한 마음에 더욱 이입할 수 있게 그려졌다. 스트라트 역시 소설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개인적 고뇌와 갈등이 영화 속에서 표현되며 보다 인간적인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소설 속 스트라트였다면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며 노래방 파티 자체에 참석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결국 자신의 이름이 가진 그 뜻을 끝까지 지켜 나가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갑자기 캐릭터 아크를 바꿔 버린다거나, 성격과 설정 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말로 돋보였다고 하겠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이미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독특하고 아름다운 배경음악으로 여러 차례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뮤지컬 장르의 영화가 아닌데도 여러 삽입곡이 주목받고, BGM의 작곡 비하인드 인터뷰마저 화제가 되는 중이다. 우주의 고요를 특별한 음악이 가득 채울 때, 관객은 텅 빈 우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모든 곡이 탁월했으나, 이번에는 대표성과 스토리 연관성이 높은 3곡만 우선적으로 추려서 자세히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Wind of Change - Scorp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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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노래방 파티 장면에 등장한 곡이다. 스트라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를 부르기 전 등장했었다. 우선 가사를 먼저 살펴보자면-


The world is closing in 세상이 다가오고 있어

And did you ever think?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That we could be so close? 우리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을 거라고?

Like brothers 마치 형제처럼 말이야

The future's in the air 미래가 다가오고 있어

I can feel it everywhere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어

Blowing with the wind of change... 변화의 바람과 함께 불어오잖아...(중략)


The wind of change blows straight 변화의 바람이 곧게 불어와

Into the face of time 시대를 향해서

Like a storm wind that will ring the freedom bell for peace of mind

마음의 평화를 위한 자유의 종을 울릴 폭풍의 바람처럼

Let your balalaika sing 너의 악기(러시아 전통악기)가 노래하게 해

What my guitar wants to sing 나의 기타가 노래하길 원하는 것을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나를 이 순간의 마법으로 데려가 줘

On a glory night 이 영광스러운 밤에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share their dreams with you and me

내일의 아이들이 우리와 꿈을 나누는 곳으로

Take me to the magic of the moment 나를 이 순간의 마법으로 데려가 줘

On a glory night 이 영광의 밤에

Where the children of tomorrow dream away in the wind of change

내일의 아이들이 변화의 바람 속에서 꿈꾸는 곳으로


미국, 독일, 중국, 러시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섞인 과학자들이 술잔을 부딪히고 이마를 맞댄 채 부르는 이 노래. 몇십 년 전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독일이 막 통일되고, 소비에트 연맹(소련)이 붕괴되기 직전 발표되었던 곡이다. 서로 가까울 수 있으리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대와의 가까워짐과 그로 인한 마법 같은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나누며 협력하고 있는 작중의 상황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가사다. 어떤 시대의 변화가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의 아이들이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한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머리를 맞대고 모든 것을 바치는 과학자들의 모습 그대로가 이 노래에 담겨 있었다.


Sign of Times - Harry Styles


그 다음으로 바로 이어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 스트라트가 부르는 Sign of Times다. 이 노래는 해리 스타일스의 싱글 데뷔곡으로도 유명한데, 사실 Sign of Times는 영어/성경 문화권에서는 아주 유명한 관용구다. 시대의 징조라고 해석 가능한 이 말은, 성경에서 종말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이 부분을 생각한 채로 가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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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 sign of the times 이제 종말이 가까이 왔어

Welcome to the final show 마지막 쇼에 온 걸 환영해

Hope you're wearing your best clothes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왔길 바래

You can't bribe the door on the way to the sky 하늘로 가는 길을 돈으로 살 순 없지

You look pretty good down here 이 아래서 넌 정말 좋아보이지만

But you ain't really good 그게 진짜는 아니야


If we never learn, we been here before 우리가 이미 다 겪고도 배우지 못한다면

Why are we always stuck and running from 우리는 왜 언제나 같은 곳에 붙잡혀

The bullets? The bullets 총알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걸까...(중략)

Just stop your crying 그만 울음을 멈춰

It's a sign of the times 이제 종말이 가까이 왔어

We gotta get away from here 우린 여기서 벗어나야만 해

We gotta get away from here 우린 여기서 벗어나야만 해

Just stop your crying 그만 울음을 멈춰

It'll be alright 다 괜찮을 거야

They told me that the end is near 그들이 끝이 가까이 왔다고 말해 주었지

We gotta get away from here 우린 여기서 벗어나야만 해


Just stop your crying 그만 울음을 멈추고

Have the time of your life 네 삶을 즐겨

Breaking through the atmosphere 이 대기권을 뚫고 벗어나

And things are pretty good from here 여기서 보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여

Remember everything will be alright 기억해 모든 건 다 괜찮아질 거야

We can meet again somewhere 우린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Somewhere far away from here 여기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중략)...


We don't talk enough 우린 충분히 얘길 하지 않아

We should open up before it's all too much 너무 많은 게 쌓이기 전에 마음을 열어야 해

Will we ever learn? 우리가 배울 날이 오긴 할까?

We've been here before 우린 이미 이걸 다 경험했고

It's just what we know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야


Stop your crying, baby 울음을 멈춰, 아가

It's a sign of the times 종말이 다가오고 있어

We gotta get away 우린 여기서 벗어나야 해....


해당 곡이 영화에 삽입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자, 이 곡을 두고 했던 해리 스타일스의 인터뷰 역시 다시 유명해졌다. 해당 곡의 가사는 출산 직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는 말을 상상하며 쓰여졌다는 것. 때문에 이 노래를 애절한 이별의 말로 해석하시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 역시 맞겠지만, 필자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푹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 더 해석을 덧붙여 보겠다.


이 노래에서는 의외로 경고의 느낌도 진하게 느껴진다. 여기 가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If we never learn, we been here before 우리가 이미 다 겪고도 배우지 못한다면

Why are we always stuck and running from 우리는 왜 언제나 같은 곳에 붙잡혀

The bullets? The bullets 총알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이미 이 모든 걸 경험하고서도 배우고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한탄과 이제는 나아가야 한다는 경고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곳에서 벗어나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스트라트는 그레이스를 강제로 우주로 보내면서 말한다. 전 지구의 모든 국가가 협력을 해도 버텨내기 어려울 위기를 맞이하겠지만, 그들은 결코 협력하지 않고 서로 싸우고 전쟁을 벌여 모든 것을 더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고.


그렇기에 이 노래는 스트라트가 불렀을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그로 인해 끝내 오고야 말 비극을 이미 예측하고 있으면서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스트라트의 신념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곡이니. 그러면서도 당장 앞에 놓인 삶을 즐기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는 가사 역시 들어 있어 스트라트가 영화 속에서는 끝내 온전히 버리지 못했던 인간적인 마음까지 함께 보여준다.


결국 스트라트는 노래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자리를 벗어난다. 이 곡은 편도 임무를 위해 떠나는 우주 비행사 3명에 대한 작별 인사이기도 했기에. 야오 선장과 일류키나는 끝내 여정을 살아남지 못했고, 그레이스 역시 임무에는 성공했으나 지구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을 확률이 높기에 정말로 마지막 인사가 된 셈이다.


스트라트는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지구를 위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프랑스 감옥에 수감되는 수감자들에게서 보이는 수감자 문신을 목 부근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스스로 예측했듯이 국가들의 갈등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같은 곳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You can't bribe the door on the way to the sky 하늘로 가는 길을 돈으로 살 순 없지


그녀가 노래했던 이상향을 향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곳으로 가기 위해 스트라트 역시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레이스가 보낸 발견으로 인해 아마도 그곳에 다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많은 마음의 짐과 국제 사회의 외면을 딛고, 스트라트가 맞이했을 그녀만의 해피 엔딩 역시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The Two of Us - Th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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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of us riding nowhere 우리 둘은 정처 없이 가고 있어

Spending someone's hard earned pay 누군가 힘들게 번 돈을 낭비하면서

You and me Sunday driving 너와 나는 일요일처럼 여유롭게 운전하고 있지만

Not arriving 도착하고 있지는 않아

On our way back home 우리는 집에 가는 길이야

We're on our way home 우리는 집에 가는 길이야

We're on our way home 우리는 집에 가는 길이야

We're going home 우린 집에 가는 거야...(중략)



You and I have memories 우리에겐 기억이 있어

Longer than the road that stretches out ahead...(중략) 우리 앞에 펼쳐진 길보다도 훨씬 더 기나긴 Two of us wearing raincoats 우리 둘은 비옷을 입고

Standing solo in the sun 태양 아래 홀로 서 있어

You and me chasing paper 우리 둘은 종이를 쫓지만

Getting nowhere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있지

On our way back home 집에 가는 길에

We're on our way home 우리는 집에 가는 중이야

We're on our way home 우리는 집에 가는 중이야

We're going home 우린 집에 가는 거야


이 곡은 그레이스가 로키를 향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정을 떠날 때 나오는 노래이다.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소설을 읽던 사람들도 그레이스의 무사 귀환을 생각하고 있었을 순간에 앤디 위어는 급커브를 틀어 새로운 문제 상황을 제시했다. 그레이스는 고민하지만, 결국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친구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레이스가 지구를 향해 '비틀즈'에 발견한 정보를 정리해서 보내고, 로키를 구하러 떠나는 순간이다.


비틀즈는 이 노래에서 정처 없이 가고 있고,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둘은 집에 가고 있다는 이 가사가 계속 반복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레이스는 사실 지구로 돌아가는 게 목표였기에, 로키에게 가는 것은 본 목적지의 상실이자 집으로의 귀환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그레이스는 소중한 친구와 친구의 행성, 지구를 모두 구했고, 에리드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된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고 고생스러웠든지 간에, 결국 그레이스는 새로운 집을 찾았다. 지구에는 가족도, 키우는 동물도 없다며 편도행 임무에 던져졌던 그레이스이지만 이제는 그를 현실에 머무르게 할 관계들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에 그레이스는 마지막에 이젠 집에 돌려보내 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로키의 말을 듣고서도 바로 집에 가겠다며 길을 나서지 않는다. 에리드가 그에게는 이제 집이 되었기에.


앤디 위어의 전작인 마션에서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온갖 사투 끝에 끝내는 지구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마크와 그레이스의 차이라면 마음을 의지할 동료가, 친구가 어디에 있었느냐는 차이일 것이다. 마크의 동료들은 그를 구하러 우주선을 돌려 돌아오고 있었고, 그의 가족은 지구에 남아 있었습니다. 반면 그레이스는 지구에서도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부평초처럼 떠도는 삶을 살던 사람이다. 물론 원작에서는 매주 만나는 친구가 있었고, 원작에서든 영화에서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의 집이 되어 줄 만한 존재가 있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로키와의 유대가 그레이스에게는 새로이 집을 만들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집은 결국 공간이 주체가 아닌,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을 주체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크의 결말은 동료 우주비행사들이 있는 우주선 헤르메스 호에 탑승하는 순간 귀환을 완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레이스의 결말은 에리드에 꾸린 새로운 터전인 것이다.(작가의 다른 작품인 아르테미스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주인공이 집으로 귀환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언젠가는 이 역시 언급할 기회가 있기를...)


결국 앤디 위어의 주제의식은 <진정한 집으로의 귀환>이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3가지 곡 역시 이 주제의식의 연장선 위에 있는 곡들이다. Wind of Change에서는 꿈꾸는 이상향을 향해 가고자 하며, Sign of Times는 머무르는 곳에 작별을 고하며 더 나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Two of Us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노래다. 현재 '집'에 있지 않지만 집을 찾고 있고, 더 나은 집을 만들고자 하며, 집으로 귀환하는 노래. 이렇게 절묘한 곡 선정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더 진한 감동을 더했다.



사실 주인공들의 이름도, 음악도,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소한 부분들이 없다면 영화는 결코 완성될 수도, 명작이 될 수도 없다.


무엇이 명작을 만드는가? 오늘 우리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필자는 "조화"야말로 명작을 만든다고 답하겠다. 수많은 요소가 완벽한 화음처럼 어우러지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저런 점이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아쉬웠다고 말할 테니까 말이다. 좋은 영화라는 것은,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이 영화의 단점이 아닌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게끔 몰입감을 유지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힘을 가지려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흐름으로 맞물려 불협화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코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원작의 흐름 역시 유지해내면서도 고유한 아름다움을 스크린 위에 구현하는 데 성공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최근 개봉했던 영화들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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