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헤르만 헤세, <크눌프>
정말로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있다고 해봐.
만일 지금이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녀가 늙을 것이고 죽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을 거야.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동정심도 함께 느낀다네.
어쩌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는 낡아지고 사라질 그것에 대한 슬픔이나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부신 그것이 색이 바래고 더 이상 빛나지 않는 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반짝여 보인다는 것을.
얼마 전 첫사랑의 SNS에서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을 봤다.
회사 팀원들과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20대에 그렇게 빛났던 그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클릭해 확대해 보니 비슷하게 생긴 한 남자가 찌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시 원상태의 사진으로 되돌려 그를 보니 머리가 반쯤 벗어진 40대 중년 남성이 불룩해진 배에 간신히 걸쳐 있는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짚어넣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미친 듯이 사랑했던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예상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지금의 나를 봐도 같은 느낌일까?
그가 좋아했던 미소를 지으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아무리 단장해도 나이를 숨길 수 없는 중년의 여자를 알아보기나 할까?
사랑했던 그때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서로가 전혀 다른 인격체인 것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게 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름답다고 느낄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슬픔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너무 당연한 수순으로 늙어가고 있는 그와 나를 보는 일이 낯설고 조금은 아팠다. 지속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 진 우리의 젊음이 얼마나 기쁜 순간이었는지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연약해서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걸, 금세 다시 사라져 버릴 거라는 걸 왜 몰랐던 건지.
그러면서 동시에 20년 후의 내가 바라볼 지금의 나를 보게 되었다.
20년 후에 보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더 낡아지고 사라질 것이 남아 있는 지금 가진 것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그것이 외모이든 건강이든 권세이든 아직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든.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이 아름다운 건 앞으로 다가올 슬픔과 두려움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름다운 건 앞으로 슬픔과 두려움이 오더라도 지금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매일 아름답고 매일 즐거울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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