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우리의 마음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나르치스가 가진 학식 때문이 아니라 평정한 마음, 초연함과 평화가 부럽다고 말하는 골드문트에게 나르치스는 평화를 재정의해 준다.
“자네는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공부할 때 싸우는 모습도, 기도실에서 싸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헤르만 헤세라는 대작가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입시를 앞둔 나는 가고 싶은 대학에 응시할 수 없는 부족한 성적, 수능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성인을 앞두고 있는 나이 등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했다. 공부만 하면 되는데 교과서나 문제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평화’ 로운 마음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당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시립 중앙 도서관으로 가서 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공부했었던 나는 심란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을까 싶어 교과 공부 대신 대출실에 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책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였다.
주인공인 나르치스의 매력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고 며칠 동안 공부 대신 책을 읽었다.
평화를 찾고 싶었던 내게 평화가 무엇인지 가르쳐준 나르치스 덕에 내가 가진 심란함과 복잡한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잘못되거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고 덜 성숙한 마음이 아님을 알게 됐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다고 해서 잔잔한 호수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게‘ 평화라는 것을.
같은 책을 다시 읽은 건 30대 후반, 글쓰기에 몰입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월급을 포기하고 친구들을 멀리했던 그때, 시간이 지날수록 굳게 먹은 마음을 교란하는 수많은 번민과 싸워야 했다. 이런다고 내가 헤르만 헤세가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러다가 몇 명 되지도 않는 친구들까지 다 잃는 건 아닌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평정심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나르치스를 만났다. 그는 내게 말했다.
“내가 알려줬잖아. 평화가 뭔지. 마음의 평화는 지금 니가 겪고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싸워 나가는 그 삶이라고.”
가진 것이 없고 가질 수 있는 것에서 멀어져 불안했던 나는 불안과 매일 싸우는 지금이 평화로운 삶이라는 것을, 그 과정이 있어야 평온한 마음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10년이 지나고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며 나날이 새롭게 쟁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쓰럽고 심란한 삶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한 나는 ‘평화’가 깃든 상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화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보이지 않게 투쟁하는 ‘평화‘로운 사람이다.
마치 두 발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우아한 백조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원래 평화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보이기까지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평정심, 초연함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싸우고 매일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
‘평화’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오늘보다 행복한 날은 없는 것처럼]
목 [영감 헌터]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토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일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