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의미 ‘신선함과 기대감’

by and Jin


질문

과묵하고 섬세한 그는 주재원을 고려하면서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중국 주재원 자리에 지원을 하면 어떨까?" "나는 중국에 관심 많고 새로운 거 좋아하니까 너무 좋지." "애들도 적응 잘할까?" "애들은 엄마 정서 영향 많이 받는데 내가 괜찮아서 애들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답변은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답이었다. 나는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움직이는 편이다. 단순하고 즉각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직관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따지며 망설이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불필요한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준다.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기에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 자신의 감각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해 왔던 사람으로, 이러한 태도는 삶을 더 역동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믿는다.

중국 기술연구소로 부임 결정이 된 남편은 7월 15일 중국 연태로 출국을 했다. 해외 입국자는 완전히 고립된 3주간의 자가격리 기간과 호텔 내에서 제한적 이동이 가능한 1주간의 격리 기간 총 4주의 격리기간을 보내고 그 동언 수차례의 pcr 검사를 받는다. 그는 이 모든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출근을 시작해 일상생활 중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수시로 화상전화로 소식을 전해준 턱에 아빠가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맨날 보는데 뭐가 보고 싶어요”라는 배부른 소리를 한다.


2000년 전후에 해외에서 국제 전화를 하려면 -지금 생각하면 큰 차이 없었겠지만-조금이라도 통화료가 저렴하거나 보너스 크레딧이 많은 인터내셔널 전화카드를 비교해 사서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했다. ‘크레딧이 얼마 안 남았어(요)~' 하며 통화를 제한, 종료하던 기억이 있다. ‘보고 싶은 또는 사랑하는 딸...'로 시작하는 그리움이 가득 담긴 엄마의 편지와 소포,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와 소포에 위로받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방인으로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면서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느낄 때마다 공감해 줄 수 있는 가족, 친구들에게 일기 쓰듯 길게 써 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실시간 나눔이 가능해진 지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편지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쓸 필요가 없다. 그만큼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 감정의 빈 구멍이 커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잊지 않으려고 되새김질하며 일상을 자잘하게 글에 담아내던 아날로그 감성은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다.



롱 디(Long-distance)의 삶도 가능할 거 같아

아이들이 눈뜨면 이미 출근하고 없는 아빠, 주중 두 번 정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아빠는 없지만 매일같이 손주들 등굣길을 함께 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태권도, 피아노를 마치고 가까운 조부모님 댁에 들르면 ‘강아지들 왔냐’며 반겨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다. 그리고 조부모님 댁에서는 덤으로 엄마 눈치 보지 않고 게임도 할 수 있다.


나 역시 익숙한 동네, 오래된 이웃들, 나의 일, 퇴근을 기다릴 사람 없이 혼자 만의 시간이 늘어난 덕에 미뤄두었던 체력 관리와 새로운 취미 생활도 누리고 있다.


평소 '굿 리스너'인 남편이 격리 기간 동안 수시로 연락을 취해왔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옆에 없어도 불편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격리가 해제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세팅하느라 바빠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삶을 나누는 순간들이 확연히 줄어드니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가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이 공백이 조금은 아쉽다.



중국 주재원?

과묵하고 섬세한 그는 주재원을 고려하면서 나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중국 주재원 자리에 지원을 하면 어떨까?"

"나는 중국에 관심 많고 새로운 거 좋아하니까 너무 좋지."

"애들도 적응 잘할까?"

"애들은 엄마 정서 영향 많이 받는데 내가 괜찮아서 애들도 괜찮지 않을까?"


그의 질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매우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앞뒤를 재기보다 먼저 움직이는 편이다. 단순하고 충동적인 판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나의 태도는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직관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따지며 망설이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불필요한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준다. 복갑하게 계산하지 않기에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 자신의 감각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해 왔던 사람으로, 이러한 태도는 삶을 더 역동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믿는다.


나에게 환경의 변화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아닌 ‘신선함과 기대감'이다.


남편과 나는 기본 성향과 자라 온 환경이 다른 편이다. 남편의 본가는 새 아파트 입주부터 현재까지 30년 넘게 주소지가 변하지 않았고, 출가한 자녀들도 본가와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반대로 친정 부모님은 삼 남매의 학업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귀향하셨고, 자녀들은 각지에 흩어져 학업을 하며 한 자녀의 가정이 귀국하면 바통 터치하듯 다른 자녀의 가정이 출국을 해왔다.


남편은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직장에서 근속해 온 사람이다. 반면 조직문화가 없고 프리랜서 성향이 강한 영어 강사였던 나는 익숙해지고 루틴이 되면 편함보다는 변화를 추구해 온 사람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안정과 변화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부모님을 끔찍이 생각하는 '효자 남편' 덕에 시부모님 곁을 비울 일도, 또 서초동을 떠날 일도 없을 것 같았는데 ‘효자 남편'의 해외 부임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