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카오 Dec 14. 2022

카카오의 벤처 투자 10년사

사람과 아이템, 자본과 타이밍의 시너지로 만드는 새로운 가치


#‘문제’에 예민한 사람들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 일상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의 문제는 잠시 불편한, 그리고 휘발되고 마는 이벤트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다르다. 예민하게 집중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한다. 아무도 해결하지 않고 지나치던 문제들은 해결책을 만나 대중들에게 효익을 준다. 벤처캐피털은 이 과정을 더 빠르고 힘 있게 만들어준다.


스타트업, 벤처캐피털, 시리즈 A부터 B, C, D를 넘어가는 투자 라운드, 그리고 엑시트(Exit)라는 업계의 표현들은 어느덧 시사용어처럼 자리 잡았다. 표면적 원인은 창업 생태계가 빠르게 성숙해진데 있다. 그러나, 집요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힘을 실어준 벤처캐피털들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창업자들이 익명으로 평가한 벤처캐피털 리뷰 사이트에서 최상위 평점을 기록 중인 카카오벤처스는 지난 10년간 어떤 기록을 남겨왔을까?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자들의 부기장(CoPilot)을 자처하는 이들이 ‘비행’한 흔적을 살펴본다.


※글 전개 편의상 카카오벤처스의 전 법인명인 케이큐브벤처스를 혼용 표기합니다.


#부러움과 결핍

“변화의 시기에 ‘이것이 괜찮겠다’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회사를 시작했다. 인큐베이팅 단계부터 참여해 지분투자를 하고 컨설팅을 하는 식으로 100명의 CEO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좋은 아이템이 산고에 있을 때, 벤처 캐피털이 찾아와 투자하는 것이 미국에서 제일 부러웠던 부분이다. 사람과 아이템, 자본이 타이밍과 붙어서 폭발하는 것이 부러웠다.”


브라이언(Brian. 현 카카오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이 2011년 3월 28일 포도트리(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서비스 카카오페이지의 전신) 글로벌 앱 기자간담회 환영사를 통해 풀어놓은 이야기들이다. 카카오톡 출시 1년 열흘이 지나 1천만 이용자를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아이위랩(카카오의 전 법인명)이 설립 이후 3년여간 히트작 없이 고전했고, 모두가 지칠 때쯤 카카오톡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사재로 투입한 자본금을 소진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극 초기 기업이 벤처캐피털이나 전략적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요즘과 같은 풍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향한 부러움, 창업 과정에서 경험한 결핍은 전에 없던 벤처캐피털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카카오톡 이용자가 4천만 명을 넘어서고 선물하기, 플러스친구, 이모티콘, 카카오스토리 등 서비스들이 연이어 생태계의 싹을 틔울 무렵인 2012년 3월 28일, 케이큐브(K Cube) 벤처스(현 카카오벤처스의 전신)가 설립됐다. 여전히 ‘적자 회사’였던 카카오의 창업자 브라이언이 자본금을 댔다. ‘안 하면 안 된다’는 또 한 번의 절박함이 있었다.


#저마다 플랫폼이 되는 시대의 개막

케이큐브 벤처스는 초기 자본금 50억 원을 투입해 인터넷, 모바일, 게임, 선행기술기업 등 창업 1~2년 차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브라이언이 초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NHN과 아이위랩, 두 회사의 창업 과정에서 느낀 초기 투자 자금의 필요성이 그 배경이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스타트업 투자’라는 용어는 흔히 쓰이지 않았다. ‘벤처 캐피털’이 존재했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IT 서비스나 첨단 제조업 관련 분야에 투자하는 형태가 보편적이었다.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전, 혹은 법인 설립 이전 단계인 IT 서비스 기업에 집중 투자해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험난한 과정을 함께하겠다는 모험자본 본연의 각오는 새로웠다. 언론은 케이큐브벤처스의 출범을 일컬어 ‘포스트 김범수 육성’이라는 미션을 품고 있다고 표현했다.


페이스북(현 meta)이 이용자 4천만 명, 직원 수 13명의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에 인수한 것도 이 무렵이다. 브라이언은 이 M&A에 관해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모바일은 웹이 확장된 게 아니라는 걸 마크 저커버그가 깨달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웹 인터넷 시대에는 검색창을 중심으로 기득권이 형성됐는데, 모바일 시대에는 작은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소자본 서비스들이 저마다 플랫폼화 될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 스마트폰 보급률이 50%를 넘어서며 변곡점이 오고 있다는 점도 ‘시드부터 시리즈 A단계’라는 케이큐브벤처스의 투자 타깃을 명확하게 하고 있었다.


#안목과 기다림으로 꾸려낸 벤처 생태계

스타트업과 소기업 창업의 구분 잣대는 혁신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토대로 고속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즉, 성장의 토대가 되는 창업 멤버를 발굴하는 눈썰미와 발품이 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의 경쟁력이다. 투자 대상이었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서비스가 소멸되더라도, 성공하는 서비스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은 눈썰미와 발품으로 쌓은 확신이다.


인터뷰 테이블에 앉은 카카오벤처스 준(Jun)이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가 투자해 유니콘으로 성장한 회사 중에는 현재와 전혀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스타트업이 처음 내놓은 서비스와 뒤이어 내놓은 서비스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얻지 못했죠. 하지만 사업을 전개한 논리가 탄탄했고, ‘최고의 엔지니어’라는 창업자 평판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극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 일부 존재하고 있었지만, 케이큐브벤처스는 자기 자본금에 LP(Limited Partner. 펀드 출자자)의 자본을 더해 보다 본격적인 행보를 걸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사업 모델이 구동되기 전, 팀 구성과 아이디어에만 집중해 투자하고 육성하는 점도 특별했다.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찾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겠다’는 투자 철학이다. 이런 배경에서 초창기에는 매주 한 건씩 신규 투자를 진행할 정도로 빠른 흐름이 나왔다.


속도감 있는 투자 집행에 비해 펀드 청산 주기는 중후기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털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느리기도 하다. 시리즈 B 이후 단계에 투자하는 VC들은 대체로 5년을 주기로 펀드를 청산하는데, 카카오벤처스는 2012년 6월에 결성한 ‘케이큐브(현 카카오벤처스)-1호벤처투자조합’ 펀드를 2021년 12월에 청산한 것이 단편적인 사례다. 수익률 방어나 위험 회피에 집착하지 않는 방식이다. 후기 투자에 집중해 ‘숫자’를 중요시하는 VC들의 관점에서는 카카오벤처스의 이 같은 방식이 “구멍이 많아”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최초로 수익률 100배를 기록한 벤처 펀드가 카카오벤처스에서 나왔다는 점을 보면, 누군가가 본 ‘구멍’ 옆에 매우 큰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2014년 4월 당시 케이큐브벤처스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CEO Day에서 브라이언과 패밀리사 대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미 한 두 차례 ‘엑싯(exit)’을 경험해 비교적 자본금이 넉넉했던 창업자들도 케이큐브벤처스의 이런 철학에 공감해 투자를 유치했고, ‘패밀리’가 됐다. ‘패밀리’들은 2012년 8월 이래 코로나 확산 전까지 거의 매달 모여 결속을 다졌다. 공동 창업자가 일에 몰입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프로모션 협업을 어떻게 할지, 서비스 회사와 기술 회사가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지 등 생생한 고민들이 오갔다. 때로는 일 이야기는 접어두고 진탕 술만 마시는 날도 있었다. 당근마켓이 ‘남의 집'에 투자를 한다거나, 넵튠이 ‘오울 블루’를 인수하는 등 패밀리 안에서 선순환이 일어난 배경이다. 창업가가 새로운 창업가들을 서포트하는 연쇄반응은 사회 분위기 전환을 이끌어 냈다. ‘어디’에 소속되느냐 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를 중요시하는 인재들이 스타트업을 열었다.


카카오벤처스의 주요 패밀리 기업 CI



#후속 투자를 이끄는 지표가 되다

좋은 팀을 발굴해 고집스럽게 성장시키는 역량이 증명되면서 카카오벤처스는 투자 업계에서 일종의 보증 브랜드가 됐다. 준은 “스타트업들이 후속 투자 라운드를 진행할 때, ‘카카오벤처스에게 투자받은 기업이면 우리도 들어간다’는 분위기가 읽힌다”고 말한다.


카카오벤처스가 10년간 우직한 행보를 이어오는 동안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을 둘러싼 환경도 변해왔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던 2010년대에는 웹에서 모바일로의 전환만으로도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시장은 성숙해졌고, 세상 모든 문제를 모바일 서비스만으로 풀 수 있을 것 같던 시대는 지났다. 대기업 산하의 벤처 캐피털도 여럿 생겨났다. 게다가 2022년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는 갑작스러운 ‘벤처 빙하기’를 불러오기도 했다. 복합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카카오벤처스의 관점을 준이 설명했다.


“되는 이유 하나를 찾고, 나머지는 채워준다는 투자 철학은 공고합니다.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통한 디지털 트랜스폼이라는 변화의 큰 방향성은 여전히 유효하죠. 비논리적 투자가 횡행하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2010년대의 모바일 기술은 세상의 많은 부분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어요. 뇌 과학, 메타버스, 우주 기술, 무엇이 ‘넥스트 빅 씽(Next big thing)’일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모험자본 본연의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야생성을 띌 때, 다음 변화를 보다 잘 맞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카카오벤처스가 생각하는 ‘투자 실패’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멤버 간의 반목이나 창업자의 과한 열정으로 인한 내부 갈등 등 기업이 어려워지는 원인은 다양해요. 하지만 가장 곤란하게 보는 경우는, 적당히 생존할 정도로 수익을 내며 유지되는 기업입니다. 그러려고 창업한 건 아니었잖아요. 폐업이나 서비스 중단만이 실패는 아니라고 봐요.”

 

#비행(Aviation)을 이어가는 힘

가장 잘 나가는 벤처캐피털이 어디인지는 특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먼저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중 하나가 카카오벤처스임은 분명하다.



케이큐브벤처스란 이름을 마지막으로 달았던 2017년까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700억 원을 넘는다. 당시 운용자산(AUM)은 1100억 원 정도였다. 포트폴리오에 담은 투자기업은 120개 이상이었다. 2022년 말이면 이 수치는 240여 개 회사, 누적 3600 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벤처스가 지난 10년 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온 이야기를 마치며 준이 말했다.


“기존 VC들이 하지 않았던, 하지 못했던 실험들을 해오고 있어요. 실험 성과들이 가시화된 지금, 카카오벤처스 크루들은 앞으로 10년 간 어떤 발자취를 만들지 생각하며 설레어합니다.”

 



#‘패밀리’가 말하는 카카오벤처스

“가게에 단골손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몇 명이나 되나요?”

“거래처에 곧 줘야 할 미지급금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밤낮없이 일하는 사장님들도 대답을 망설이기 십상인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실시간으로 챙겨주는 회사가 있다. 관련 시장의 독보적 1위, 한국신용데이터(이하 KCD) 이야기다. 2022년 10월 기준 누적 약 1600억 원 투자를 유치한 ‘유니콘’ KCD는 카카오벤처스가 2016년 시드 투자를 한 기업이다. 대표 서비스이자 첫 제품인 ‘캐시노트’를 2017년 5월 출시하기 전의 일이다.


동네 가게 사장님이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 성장시키는 모든 과정을 쉽게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KCD는 5년 만에 시장 1위에 올랐다.  KCD 김동호 대표가 카카오벤처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던 2016년도 이후 ‘함께 비행’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카카오 _ 2011년 창업한 오픈서베이를 성공적으로 키워내 창업 자금이 부족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신용데이터를 창업하면서 지분 희석을 하면서까지 시드 투자를 받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동호 대표(이하 김) _ 투자 유치를 전략적 협업의 시작점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캐시노트의 초창기 서비스는 카카오톡 안에서 이뤄졌는데, 이후 독립 앱이 출시되기까지 여러 측면의 교류를 할 수 있었어요. 또 다른 시드 투자자인 디캠프는 은행연합회가 출자한 창업 재단인데요. 마찬가지로 금융권과 다양한 협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었죠. 초기 스타트업에게 부족한 백오피스 역량이나 미디어 대응, 후속 단계 투자자와의 연결,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카카오 _ 국내 금융 관련 기업이나 통신사가 한국신용데이터의 사업 영역에 직접 진출하거나 해외 유사 사업자와 경쟁하는 상황도 걱정됐을 것 같습니다. 해자(moat) 구축은 어떻게 하셨나요?


김 _ 금융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회사는 창업 당시에도 많았죠. 하지만 다들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했고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없었어요. 선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단독으로 움직이기엔 거대한 영역이라고 판단했고, 국내 메신저 플랫폼 1위인 카카오나 신용카드 1위인 신한카드, 소상공인 대상 1위인 KB국민은행, 유선 통신 선두기업인 KT와 LG유플러스 등을 한국신용데이터의 주주가 되도록 해 생태계를 꾸려왔어요. 그 결과, 고객인 사장님들에게 입체적인 좋은 제안을 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올라갔고, 한편으로는 유사 사업자의 진입을 방어하게 된 거죠. 기존 사업자와의 경쟁에 대해서 말하자면, 두 번의 창업 때마다 해당 업종의 레거시 사업자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진 않는 걸 경험했어요. 비즈니스 모델의 가치가 증명되고 우리의 해자가 어느 정도 구축된 후에 시장 진출을 검토하는 식이었죠.

 

카카오 _ 첫 제품 출시 후 4개월이 걸리지 않아 가입 매장 1만 곳, 5년 만인 2022년 4월 말에는 캐시노트가 100만 번째 가입 매장을 확보했는데요. 성장의 핵심 열쇠는 무엇이었나요?


김 _ 자영업을 한다면 매일매일 들여다봐야 하는 지표들이 있어요. 어제 매출 중 단골 고객과 신규 고객이 각각 몇 퍼센트를 차지했는지, 카드 매출의 객단가는 얼마인지, 배달앱 매출 중 온라인 결제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같은 요소들이죠. 이런 것들을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캐시노트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한 답변이겠지만, 고객 눈높이에서 만족스러운 사용자 경험을 준 게 주효했다고 생각해요. 현재도 캐시노트의 프로덕트 리드인 안태훈 님 아내분이 당시에는 자영업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분의 업장에서 수집한 생생한 경험들도 제품 설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카카오 _ 과학 영재학교 출신, 24세에 첫 창업 후 성공적으로 엑싯, 두 번째 창업으로 유니콘 등극. 단편적으로 표현하자면 ‘비단길’만 걸어오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두 번의 창업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어떤 게 있었나요?


김 _ 삶이란 멀리서 보면 영화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큐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만 24세가 되던 해에 창업을 했어요. 사회 경험이 무척 짧았고 어렸죠. 오픈서베이의 경우 직원 수가 70여 명 규모로 늘어날 때까지 재직했는데, 구성원들을 매니징 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두 번째 창업인 한국신용데이터의 경우 첫 창업에서 겪은 문제들은 어렵지 않게 지나왔는데, 금융 관련 업종 특유의 다양한 규제들이 새로운 도전 과제였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자회사를 인수 합병한 뒤 조직 문화를 일치시키는 일도 처음 경험하는 숙제였고요.

 

카카오 _ 고 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등 어려운 국면이 진정되면 창업과 투자는 계속될 텐데, 후배 창업가들에게 ‘이런 VC를 만나라’ 같은 Tip을 주실 수 있을까요?


김 _ 주주 구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자주 간과되는 문제 같아요. 긴 호흡으로 같이 갈 수 있는 투자자의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개인 앤젤 투자자, 혹은 긴 시간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벤처 캐피털을 만나야겠죠. 담당 심사역에게 그런 경험이 있는지도 중요하겠고요. 펀드가 들어온다면 청산까지 남은 기한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카카오벤처스는 한국신용데이터의 기업 밸류에이션이 수십억 원 수준일 때 시드 투자자가 됐고, 이후 100배 이상의 가치로 성장했을 때 재투자 한 VC입니다. ‘코 파일럿(CoPilot)’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죠.

매거진의 이전글 위협이 발생할 곳에 미리 방어벽을 구축하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