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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wi Cho Nov 05. 2019

일과 노동의 차이

장병규씨의 100시간 드립의 근원이기도 하다

필자는 잘 다니던 회사원 생활 때려치고 벌써 5년째 스타트업 해보겠다고 고군분투 중이다. 아마 내 블로그 맨 첫 글 (이거 뭐 써먹을데가 있어야지..)부터 애독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듯. 내가 스타트업 하고 있는 이유는 남들처럼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걍 솔직하게 인생 역전하고 싶은 욕망이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누르는 상태일 뿐.


내가 아직 인생역전의 발톱 언저리에도 도착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나름 이바닥에서 수 번도 넘게 역전을 일구어낸 창업가들을 많이 겪어보다 보니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한가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건 바로 일과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방식의 차이이다.


내가 하는게 일인가 노동인가?

 


일과 노동의 차이를 아시는가?


이게 말이냐 방구이냐고 되물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과 노동의 정의는 아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선, "일"은 유/무형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내 물리적/금전적 자원을 쏟는 행위를 통틀어서 일이라고 부른다 (물론, 국립국어원에서 정해준 정의가 아니고 언제나처럼 필자의 개똥철학에서 나오는 정의라는건 알아서 참고해 주시길). 쉽게 말해 내가 오늘 아침에 가족을 위해 밥상 차려주는것도 일, 지하철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웹툰을 본 것도 일, 심지어 속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xD을 본것 역시 "일"이라고 부른다.


반면 "노동"이라 함은 내가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수단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되겠다)을 얻기 위해 내 한정된 시간 자원을 쏟는 행위를 노동이라고 부른다. 꼰대같은 차장/부장 요구사항을 꾸역꾸역 소화해내며 야근하고 있는 것도, 순탄한 회사생활을 위해 가기 싫은 상무님과의 등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것 역시 내가 먹고 살기 위한 돈이라는 놈을 벌기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는 행위이고, 이 시간은 내가 열혈강호 70권을 읽어야 할 시간을 희생해서 상무님과 등산길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우리는 노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일과 노동은 아주 중요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지천에 널려있다.


내가 하는 행위에 "시간"단위를 결합하면 노동, 사용 되는 시간과 관련 없이 행위의 "결과물"이 중요하면 일


좀더 쉽게 말해서, 당신이 하는 행위를 자꾸 단위 시간을 들여 계산하고 있다면 그건 노동 행위가 되는거고, 시간의 투여와는 관계 없이 당신 행위의 결과물이 목표한 바 대로 달성 됐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중요한 거라면 그게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위의 예시에서, 내가 회사에서 살아남는것 자체가 너무 중요하고, 그걸 위해 상무님과 등산길에 오르는게 그 결과물을 얻는 최선의 방법이 되는 상황에서 내가 주말 전체를 할애하는것 따위는 그리 아깝지 않는 사람한테 저 행위는 "노동"이 아닌 "일"이 된다.



단위 시간 투여와 무관한, 결과물에 대한 갈망


내가 어떤 업무를 함에 있어서 결과물을 손에 쥐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단위 시간의 투입따위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일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일에 대한 개념이 굳이 "업무 시간" "야근" 등의 개념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렇게 일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성공한다면 인생이 참 쉽겠지만, 이렇게 일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인생 역전에 실패한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그런 열망의 사이클을 여러번 돌리다가 종국에 대박을 터뜨리는 사이클 패달을 밟게 되더라.


이렇게 일을 하는 사람들의 궁극의 경지는 바로 본인의 일에대한 "결과물"을 갈망하는 경지이다. 일에대한 특정 결과물을 집착해서 그걸 달성하기 전까지 주야를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사람들의 경지를 말한다. 우리가 동경하는 대부분의 성공한 회사, 스타트업, 조직의 파운더들은 이런 "일"의 결과물을 갈망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엄청난 쩐주가 있었거나..)


반면, 당신의 일에 "단위 시간"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는 "노동"이 되고, 당신의 직장생활 (혹은 사업)이 이런 "노동"으로 채워져 있다면, 아쉽지만 당신의 인생역전의 꿈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한 이번 생은 글렀다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일의 가치가 단위 시간 투여에 따른 금전적 수입의 유무에 의해 평가될 것이고, 누가 말하는것 처럼 주 100시간씩 일하는건 이런 견지에서는 전혀 수지 타산에 맞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노동만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기준으로 단위 시간의 근로소득 범위 내에 있는 업무만을 처리하기를 선호할 것이고, 만일 고용주가 그런 범위를 벗어나는 목표의 업무를 들이댈 경우 당신 일의 만족도는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아쉽게도 사람의 생이란 자판기 처럼 돈을 천원 넣으면 포카리스웨트를 마시고 이천원을 넣으면 에비앙을 마시게 되는 그런것이 아니다. 천원, 이천원, 오천원을 넣어도 포카리스웨트만 마시다가 궁극의 물을 마시고 싶다는 갈망 하에 계속 천원씩 백만원 이상을 넣은 시점에서 갑자기 아우룸 79라는 한병의 수십억원하는 물이 떨어질수도, 아니면 포카리스웨트만 너무 많이 마셔서 배탈나서 병원비가 더 나오게 되는 삶을 살 수도 있게되는게 사람의 생이다.


즉, 노동을 중시하는 삶은 비록 인생 역전은 힘들지라도 최소한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바퀴 역할을 해 주기에 그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가 한번은 들어봤을 토스, 배민, 쿠팡같은 회사를 만드는걸 꿈꾸고 있거나, 한 분야에서 누구나 모셔가기를 원하는 프로페셔녈이 되려는 사람인데 내가 이번주에 근무한 시간이 52시간 이상인지를 계산해 보고 있는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다.



"결과물"에 대한 갈망 없이 일을 오래 하는게 최악의 인생이다


여기서 절대로 오해하면 안되는게, 일과 노동의 차이가 당신의 행위에 "단위 시간"이 붙느냐 "결과물"이 붙느냐의 차이이지, 일을 하는 시간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일을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던 40시간을 일하던간에 그게 노동이 될수도 일이 될수도 있는거지, 일을 오랫동안 하는거는 1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쌍한 인생은 바로 결과물에 대한 갈구하는 마음 없이 무조건적으로 일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내가 회사에서 하는 크고 작은 업무들에 아무런 결과의식 없이 그냥 무조건적으로 일을 받아 먹어서 야근/주말근무에 점철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회사에서 저런 사람들을 한 트럭 넘게 봐 왔고, 저런 사람들이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아서 연차가 꽉 찬 차/부장이 되어 조직에 군림하는 순간 그 조직은 생명줄을 잃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일에 중독된 사람들, 그리고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들처럼 보이기 쉬운데, 사실 저런 사람들이 오히려 회사의 야근수당을 갉아먹고, 조직 문화를 망치게 되며,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좀비 사원처럼 만드는 주범이 된다.


이런 사람들은 가끔 "노동"의 가치를 매기고 단위 시간 만큼 착실하게 금전적 리턴만 계산하며 일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꼰대질을 하기도 한다.


"왜 너는 맨날 야근 수당을 타가려고 하니?"

"내가 신입사원때는 말이야,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고..."

"위에서 시키면 일단 이해 안가도 그냥 하고 보는 거야"


이런 최악의 인생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조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는 마리아나 해구로 떨어지고 능력있는 노동자들은 결국 단위시간 대비 수익이 높은 회사를 찾아 떠난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생을 살면서 회사의 대부분의 운영을 책임지고, 회사는 그에대한 합당한 보상을 함으로써 고용주-피고용주의 원만한 사이클을 통해 사업을 영위하게 되는건데, 저 결과의식 없이 일하는 좀비 차/부장들이 그 사이클에 독을 끼얹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은 조직에서 1순위로 제거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장병규씨의 100시간 드립을 보는 시각차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어제-오늘 내 페북을 뜨겁게 달군 이슈중 하나는 바로 장병규씨의 100시간 드립이다. 전문은 이 인터뷰 기사에서 읽어볼수 있겠으나,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다.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는 뺏는 거다. 내가 2년 동안 일한 다음에 훨씬 오래 일한 대기업 차·부장급과 대화가 됐다.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그 사람들한테 안 밀리는 거다. 압축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출처: 중앙일보] [김동호의 직격인터뷰] "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


물론 장병규씨 정도 되면 저정도 발언의 파문은 예상하면서 의도적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는거고, 나름 이슈화 시켰으니 목표를 달성했다고 본다. 참고로 주 52시간 근무제가 뭐냐면, 쉽게 말해 돈을 더 퍼 주더라도 5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일주일에 52시간 이상 일을하게 되면 사업주는 범법자가 되는거다. 스타트업에 이걸 강제하는게 옳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팀원 모두가 어떤 결과물에 미쳐서 그들이 투입한 시간따위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채 일만 하며 사는 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를 되물어 보고 싶다.


스타트업이라는건 당장 죽기까지의 시한부 인생이 있고 (보통 후속 투자까지, 혹은 BEP달성까지 마련해 놓은 자금이 있고 이걸 런웨이라고 부른다), 이 시한부 인생의 후반부에는 슈퍼마리오 8-4까지 가면 나오는 쿠퍼왕 수준의 어마무시한 레벨의 결과물 달성이 기다리고 있다. 이걸 넘지 못하면 "수고 했어요~" 하고 끝나는게 아니라 그냥 인생이 x박살난다. 이건 굳이 파운더 뿐 아니라 거기 합류한 직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대기업의 안정적인 커리어를 포기하고 스타트업에 합류했는데, 수년을 꼴아 박고도 해당 기업이 망해버리면 그사람 후속 커리어가 다 꼬이기 때문이다 - 물론 받을때 휴지조각 취급한 스톡옵션이 정말 휴지조각이 되는건 덤).


이런 시한부 인생에서 인생 한판을 걸기 위해 모인 사람들한테 주 52시간을 준수하면서 일하라고 국가에서 강제하는 모습은 장병규씨가 보기에 지나친 간섭이자 혁신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법안이다. 열정 페이를 악용해서 스타트업 치장을 하고 "노동"을 하려고 들어온 근로자한테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스타트업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 이 바닥에서, 그들을 족치려고 저렇게 인생 한판 건 사람들의 모임에 52시간 제약을 걸어버린 꼴이기 때문이다.


보통 토스급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있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직원들도 아무나 뽑지 않는다. 흔히들 초기 기업은 급여나 복리후생이 좋지 못해서 좀 덜 떨어진 직원들만 들어갈거라 생각하곤 하는데, 토스급 잠재력 있는 팀은 절대로 아무나 초기 직원으로 합류시키지 않는다. 파운더 본인이 24시간 잠 안자고 일을 더 했을 망정,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초기 직원은 추후 기업이 스케일 날 때를 대비해서 "C"레벨이 되야 하는 능력자를 데려온다. 스타트업이 망하는 가장 큰 두가지 이유는 첫째는 PMF (Product-Market Fit)의 실패지만, 두번째가 바로 이 스타급 초기 직원 영입 실패에서 온다.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5명 고용할 돈으로 1명을 고용하는 과지출을 해서라도 스타급의 직원을 영입하게 되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포기하고 모인 스타급) 팀원들이 과연 내가 하루에 몇시간을 일했는지를 계산하며 일을 할까?


차라리 추가 근로에 대한 비용을 더 비싸게 해서 추가 근로에 관계 없이 "일"을 미친듯이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더 지급하라고 하는 법안을 만들지언정, 오히려 거꾸로 그 미친사람들에게 강제로 일 못하게 하는 법안이란건 마치, 수능 시험 만점이 너무 절실해서 하루 18시간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한테 하루 8시간만 공부하고 시험 만점 받으세요~ 하는거랑 비슷한 상황이다. 모두가 하루 8시간만 공부하니 수능이라는 경쟁 시험의 공정성은 담보될 수 있겠으나, 수능 만점을 받는 학생들의 숫자는 수능 시험 난이도 자체를 낮추지 않는한 현격하게 줄어들게 명약관화하다.






글쓴이는 노마드태스크 (Nomadtask)라는 퀘스트 기반의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 플랫폼의 Co-founder 및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기획자로 일하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본업을 스타트업 파운더+디자이너로 전향했는데, 그 과정에서 득템한 다양한 스킬들을 연재하고 있다.


노마드태스크 - https://nomadta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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