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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Apr 30. 2021

(4-3) 옷은 누구와 사러 가나

함께 쇼핑한 적 있나요

나의 쇼핑메이트는 어머니였다. 사다 주는 옷만 입던 '꼬꼬마' 시절을 지나면서, 어머니가 사다 주는 옷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옷이 필요할 때면 어머니와 함께 날을 잡아 길을 나섰다. 비장한 마음을 품고 길을 나선 그런 날은 꼭 싸웠다. 출발할 땐 기분 좋게 집을 나서도, 쇼핑몰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매번 싸웠다. 내 눈에 예뻐 보이는 옷을 어머니가 사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걸 입기엔 아직 어려."

너무 많이 들어 아직도 기억나는 어머니의 말. 옷만 고르면 늘 '아직 안된다'고 말씀하셨었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 평생 자랄 키가 그때에 다 커 버린 나는 아동복 매장에서는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른옷 매장에 가야 했고, 그곳에서 '예뻐 보이는' 옷을 고르면 늘 어머니가 입을 대셨다. 돈을 주고 옷을 사는데 왜 안 예쁜 것을 사야 하는지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아직 학생이야"하는 어머니와 "이 옷이 어때서"하던 나는, 쇼핑몰 한 중간에 서서 곧잘 싸우곤 했다. 내가 고르면 어머니가 반대했고, 어머니가 고르면 내가 시큰둥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쇼핑몰을 돌다 보면 둘 다 지치고 화가 났다. 결국 어머니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100% 흡족하지는 않은 옷들을 사게 됐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뚱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쇼핑 독립을 꿈꿨지만 쉽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쉽사리 내 의상 선택권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17세 어느 날 갑자기 쇼핑 독립을 거머쥐게 되었다. 어머니가 입원하시면서, 쇼핑메이트 자리가 비게 됐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 옷이 필요하다 말했더니 쿨하게 카드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어떤 옷 샀는지 보게 그 옷 입고 주말에 와."

뭘 샀는지는 봐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아무튼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혼자 쇼핑길에 나섰다. 친구에게 같이 가 달라고 할 말주변도 없었기에 혼자 가리라 마음먹었다. 예쁜 걸 고르고 카드 내면 끝이지 뭐, 쉽게 생각하고 쇼핑몰로 들어섰다.


쉽지 않았다. 옷들을 보며 통로로 걸어다니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한 가게에 들어가 점원과 단 둘이 마주치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 층을 뱅뱅 돌며 몇 개의 옷을 마음에 담았지만, 섣불리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해 주춤거리고 있던 상황.

"학생, 이거 보고 있지?"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가게 안에서 딱 어머니 또래로 보이는 분이 나오셨다. 아마도 내 상황을 간파하신 듯 "거울 앞에서 한 번 대봐"하며 부드럽게 나를 이끄셨다. 못 이기는 척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지? 한 번 입어봐."

엉거주춤 서 있다 거절도 못하고 탈의실로 입장하게 됐다. 그때 내 손에 들린 건, 처음 입어보는 하얀 바지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어머니가 보셨다면 못 입게 할 것이 너무나 분명해 망설이던 찰나였다. 흰색 주제에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 재질. '학생스럽지 않음'이라고 쓰여 있는 듯한 옷이었다.


하얀 바지를 입고 이리저리 거울을 보고 있을 때 "위에는 이걸 한 번 입어보면 어때?" 사장님이 또 다른 옷을 권해주셨다. 이번엔 모자가 달린 검정 민소매 티셔츠였다. 예뻤다. 하지만 소매 없는 옷이라니. 어머니가 입을 댈 게 뻔했다. 17살이나 먹었지만, 외출복으로 민소매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보면 뭐라고 하실 것 같아요."

"에이, 이 정도는 요즘 다 입지. 위에 카디건을 입어주면 되잖아. 카디건도 한 번 입어봐."

가게 앞을 서성일 때 여러 번 살펴본, 마네킹이 입고 있던 한 벌 그대로였다. 일단 시키는 대로 몽땅 갈아입었다. 거울 앞에 서서 몸을 돌려볼 땐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 걸 입기엔 아직 어려.'

그때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아줌마도 너만한 딸이 있어. 이거 그대로 입혔는데 예쁘더라."

오호라.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 뭐 어때. 입어보자 싶었다. 사실, 이옷저옷 다 입어본 주제에 계산도 안하고 그대로 나와버릴 뻔뻔함도 없었다. 멋지게 카드를 긁었다.






성공적 쇼핑으로 용기를 얻고는, 과감히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어머니가 주신 카드가 아니라, 모아둔 용돈으로 물건 하나를 더 샀다. 모자였다. 5~6월쯤일 거라 기억되는 시기. 눈부시게 날씨가 좋은 날들이었지만, 어머니는 늘 병원에 계셨다. 멀쩡한 사람도 저렇게 누워만 있으면 병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고, 어떤 계기나 희망이 있으면 밖으로 나오실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암 환자의 컨디션 같은 건 짐작하지 못하고, 혼자 희망노선에 올라타 있었다. 희망을 품으면 기적도 일어난다잖아, 햇볕을 직접 받으면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하며 고른 것이 모자였다.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카락도 숨기고, 눈부신 햇빛도 가리고, 미래를 꿈꿀 희망도 품고. 그런 다용도로 모자를 하나 사 드리고 싶었다. 그날 밤엔 편지도 썼다.

"퇴원해서 이거 쓰고 같이 놀러 가요. 햇볕이 좋아요." 그런 내용을 담았다.


주말. 새로 산 옷을 '풀 장착'하고 문병을 갔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 옷을 훑는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딱 알았다. 역시 과했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지금이 바로 욕먹을 타이밍이구나. 뭐라고 입을 여시려는 그 순간, 몸을 움직여 쇼핑백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눈길이 쇼핑백으로 향했다.

"이건 내 돈으로 산 거야. 엄마 주려고."

모자를 꺼내 보고 편지를 읽으신 어머니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셨다. 환하게 웃을 줄 알았는데 웃지 않았고, 그렇다고 울지도 않는 그런 표정이었다. 쇼핑백 안으로 다시 모자를 넣길래, "잘 보이는 데 두고, 볼 때마다 퇴원할 생각만 해" 하며 침대 옆 탁자에 올려뒀다. 병실에 있는 동안 내 옷을 보는 어머니 시선은 느꼈지만, 입을 대지는 않으셨다.


이제야 생각해본다. 어머니 눈에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임종을 향하고 있는 어머니 마음 같은 건 모른 체하며, 돈 들여 모자를 사 오는 딸이 어떻게 보였을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아직 어리구나 싶으셨을까. 얘를 두고 어찌 떠나나 싶으셨을까. 이 와중에 옷 같은 건 상관 말자 하셨을까. 으이구, 니 멋대로 해라, 놔두고 싶으셨을까.

그 모자는 장식품처럼 병실 탁자만 지켰다. 바깥 구경은커녕 햇볕 한 번 만나지 못한 채 덩그러니 그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먼지만 쌓인 모자를, 몇 달 후 내 손으로 버렸다.






결혼 후 맞은 시아버지의 첫 생신에 옷을 선물했었다. 춥고 추운 겨울, 땀을 뻘뻘 흘리며 백화점을 돌고 돌아 코트 하나를 샀었다. 그때 생각했다. 난 내 아버지에게 옷 한 벌 사 드린 적이 없구나. 그럼에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시아버지 옷을 고른 스스로가 의아했고, 다음엔 꼭 아버지 옷도 사드려야지 생각했었다.

그렇게 작정하고 '효도데이'를 만들었다. 이날만큼은 싸우지 않고 화내지 않고 남들처럼 '화목하게' 하루를 보내보자, 한 번은 해야 후회 안 한다는 그 효도 나도 한 번 해보자, 마음먹었다.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다. 아버지와 약속을 잡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옷을 사 드리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영화 예매부터 난관이었다. 단 둘이 보는 첫 영화. 살색이 난무하는 부끄러울 장면은 절대 나오지 않을 영화를 찾아내야 했다. 고르고 골라 예매한 것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전쟁영화였다. 2시간 내내 비행기가 미사일을 떨어뜨리며 날아다녔고, 군인들이 총을 쐈다. 폭탄도 끊임없이 터졌다. 영화 보는 내내 아버지 반응을 살폈지만 조용하셨다.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아버지가 던진 한 줄 감상평은 "요새 애들은 다 귀가 먹었냐?"였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귀가 안 들리셨던 아버지. 보청기는 필요 없다고 하셔서 쓰지 않았고, 일상에서도 큰 어려움은 없으셨다. 하지만 2시간 내내 소음 폭격을 퍼붓는 영화관에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신 것 같았다. "여기서 느그 엄마랑도 영화 봤었다"하며 기분 좋게 들어가셨지만, 나올 때 아버지 기분은 '바닥'이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기분이었다. 초밥을 먹으러 가서도 아버지는 내내 멍했다. 말을 걸어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피곤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효도데이를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식당을 나와 다음 코스 백화점으로 아버지를 이끌었다. 아버지는 백화점에 가자는 내 말에 정색하셨다. 정색하는 아버지 표정에 나도 순식간에 마음이 식어버렸다. "집에 갈란다. 다음에 사자" 하며 달아나듯 몸을 돌리는 아버지를 붙잡지 않았다. 비행기가 폭격을 퍼부은 듯 갑자기 끝나버린 효도데이였다. 이날 귀가 후 아버지는 내리 2시간을 주무시고서야 기운이 좀 났다며, 다시는 영화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큰 결심으로 준비했던 '빅 이벤트' 효도데이가 끝나고, 피날레를 장식해야 했던 쇼핑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겨울옷을 사려다 "여름옷이라도 삽시다" 했지만, 임신을 했고 아이가 태어났고 정신없이 시간들이 흘렀다.

요즘도 가끔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시던 아버지가 떠오를 때면, '다른 건 몰라도 쇼핑은 했어야 했는데'하는 마음이 든다. "취향을 몰라서", "정확한 사이즈를 몰라서"라는 이유들로 옷을 사다 드리지도 않았었다. 한 번쯤은, 딱 한 번쯤은 예쁘게 입혀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즐겨 듣던 노래 가사처럼 '그 흔한 옷 한 번 못 사주고' 모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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