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 끊겠다고 약조한 후로는 냄새조차 맡지를 않았다는데. 곧이 믿기지는 않지만, 비칠비칠 맥을 못 추는 것이 금단증상 같기도 하고, 저러다 골로 가겠다 싶네. 쯧쯧. 모다깃비 퍼붓는 궂은 날씨를 탓하며 옜다 모르겠다, 즐겨 찾는 국밥집으로 지기를 이끌었다.
아니 죽어도 밖에서 마셔야겠다 고집을 피우는 통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처마 아래 야장을 치고 앉았다. 신 김치와 뜨끈한 고깃국을 안주 삼아 잔을 돌리니, 신이 나서 입맛을 쩍쩍 다신다. 쫓기는 폼으로 연거푸 강술을 들이키기에,
“천천히 들게. 탈 나겠어.”
“술은 괜찮아.”
“물도 체하는 법.”
“차게 마셔도 속에서는 열불 나는 기 술!”
“얼씨구.”
“뻥뻥 뚫리거나, 죄다 게워 내거나.”
주절주절 궤변을 늘어놓는가 싶더니만, 눈 깜짝할 새 탁주 한 동이를 해치운다. 얼큰하게 취기가 도는지, 버릇처럼 제 품을 뒤적거린다. 또. 또. 또. 낡아빠진 하모니카를 꺼내 주정하듯 불어 대기 시작한다. 누가 악사 아니랄까. 그 모습이 퍽이나 딱하였다. 술 한 잔 거들지 못하는 이 몸뚱이 역시 갸륵한지고.
“미안하오. 내 변변찮아서.”
“선비가 한량이랑 있어주는 게 어디-”
“낭인이기는 매한가지일세.”
“그니까, 오래오래 살아. 나랑 놀아줘.”
“아서. 날개옷만 찾으면 냉큼 뜰 테니.”
“키키키. 타락 천사여.”
먹구름이 숨을 돌리는 사이, 짬을 못 참고 풀숲에서 기척이 난다. 아마도 버러지들. 버러지들?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우리도 그러하겠지. 젖은 밤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청승맞게 좋기도 하네.
‘궁상’각치우. ‘궁상’각치우.
정신 나간 사내의 연주와 합을 이루니, 그 가락이 심히 애절타. 어느새 가을이 왔는가… 다시금 하늘이 침을 뱉는다.
image_©Andrew Wy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