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제외한다면, 단연 음악을 좋아한다. 글 쓰는 사람치고 음악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소리를 좋아한다. 관찰하듯 소리를 본다. 계기가 있다. 대학 시절 수강했던 전공 과목 중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제작한 영상에 다양한 폴리들을 삽입하고 매치하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배우는 동안 소리가 주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쓸 때에는 이미 짜놓은 판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지만, 소리를 들으며 쓸 때에는 내가 직접 집을 짓는 것 같다. 그러한 이유로 초고에서는 소리를 듣고, 퇴고에서는 글에 맞는 음악을 듣는다.
즐겨 찾는 소리들 :
전철 안에서 들리는 백색소음.
골목길을 걷는 구두 소리, 하이힐 추가.
리볼버 권총을 겨누는 소리, 발사 포함.
레스토랑에서 식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잘 마른 침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소리.
한밤의 풀벌레 소리.
버걱버걱 조기떼 우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 더하기 뱃고동 소리.
특히 빗소리를 좋아한다. 빗소리도 바람을 곁들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여섯 단어로 소설 한 편을 완성했던 헤밍웨이처럼, 소리 몇 점이면 이야기 하나가 금세 마음샘에 고인다.
그러나 가장 기대하는 것은, 트랙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찰나이다. 무엇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순간. 분주했던 두뇌 속 뉴런을 잠시 누르고, 소리의 여백 위에 존재의 지문을 남긴다. 허공에 시를 적는다.
어둠에게 빚을 지고 빛나는 불꽃처럼, 온전한 적막을 느끼기 위해 소리의 노예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image_©Zygmunt Andrychiewicz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어요.
_Ernest Hemingway
Scene in <Immortal Belo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