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 에라토스테네스와 아리스타르코스
코스모스와 칼 세이건
《코스모스(Cosmos)》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명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책은 1980년에 미국 PBS에서 방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Cosmos: A Personal Voyage》에 맞추어 같이 집필 되었는데, 위 다큐멘터리와 함께 20세기 후반 대중들 사이에서 천문학과 우주 과학의 붐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바 있다.
워낙 유명했고 지금도 유명한 책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 이 책은 무려 70주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 있었고, 현재를 기준으로 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 서적이라고 한다.
나는 1980년대 초반에 TV에서 방영하던 다큐로 먼저 《코스모스》를 접하고, 책은 대학생이 되어 80년대 말경에 읽었는데 두 번 모두 엄청 흥미로웠고 그 내용이나 영상의 퀄리티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고 지금 집에 있는 건 2006년경엔가 다시 서점에서 사서 이제는 꽤 변색된 책과 최근에 특별 컬러 양장본이 나와 소장용으로 산, 두 권의 책이다.
칼 세이건의 생애
칼 세이건은 1934년 11월 9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유대계와 러시아계 이민자들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16세에 시카고 대학에 조기 입학하면서 석학사 시절에는 자유전공, 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논문도 생명학에 대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역시 15세에 시카고대학에 조기 입학한 또 다른 천재 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세포내 공생설로 유명한 생물학자, 1938~2011)와 만나 1957년에 결혼하여(칼 세이건은 23살, 린은 당시 19살이었다!) 두 아들을 낳았으나 이혼을 하게 된다.
그가 천문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시카고 대학 박사과정에서인데 여기서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 ‘프레드 휘플’ 박사의 눈에 띄어 하버드 대학 교수로 가게 되었으나 이름이 알려지고 방송활동 등 바깥활동이 잦아진 칼 세이건을 못마땅하게 여긴 건지 종신교수 채용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이때 코넬 대학교에서 바로 칼 세이건을 스카우트하여 그곳에서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면서 코넬 대학교 천문학 및 우주과학과의 데이비드 덩컨 석좌교수로 재직하였다. 이후 그는 NASA에서 마리너(화성, 수성, 금성 탐사), 파이오니어(목성 탐사), 보이저(그랜드 투어의 외우주 탐사선), 바이킹(화성 탐사), 갈릴레오(목성 탐사), 패스파인더 화성 탐사선 등등 온갖 우주 탐사선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 과정에서 2번째 부인(린다 잘츠만) 그리고 3번째 부인 ‘앤 드루얀(Ann Druyan)’을 만났는데, '앤'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와 책이 바로 《코스모스》이다. 그래서 이 책 첫 장에는 아래와 같은, 그녀에 대한 멋진 봉헌글이 쓰여 있다.
"앤 드루얀에게 바친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의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최근에는 그녀가 쓴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Possible Worlds)》이 출간되기도 했다. 역사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던 과학자들을 끄집어내서 그 의미를 다시 조명해 주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비슷한데, 중간중간 아들 이야기나 칼 세이건과 연애하던 시절 이야기 등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칼 세이건의 업적은 과학에 대한 연구 그 자체보다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는 면모가 강하나, 이러한 대중적 이미지와 달리 연구 업적이 부족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현대 우주생물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지목되는 사람이 칼 세이건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불멸의 업적을 인류사에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칼 세이건은 화성 탐사선 계획인 마스 패스파인더(Mars Pathfinder) 프로젝트에 관여하던 중, 2년간 투병해 온 골수이형성 증후군의 합병증인 폐렴으로 1996년 12월 20일에 별세했다.
그가 죽고 나서 몇 달 후인 1997년 7월 4일 그가 심혈을 기울였던 ‘마스 패스파인더’[무인 착륙선과 로버 소저너(Sojourner, 아래 동그라미)로 구성]는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했으며 그 중 착륙선(아래 사진 화살표 부분)은 고인을 기려 '칼 세이건 기념 기지(Carl Sagan Memorial Station)'로 명명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유해의 일부가 달에 있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가 평생 동안 교수로 재직하던 코넬 대학교가 위치한 뉴욕 이타카(Ithaca)에 묻혀있다고 한다.
칼 세이건의 저서
그의 경험과 관심사는 《코스믹 커넥션: 우주에서 본 우리(The Cosmic Connection: An Extraterrestrial Perspective), 1973》,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1977》, 《혜성, 1985》, 《창백한 푸른 점, 1994》 등 30여 권의 대중과학서 집필로 이어졌다.
1985년에 출간된 그의 첫 SF 장편소설 《콘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로 나오기도 하였으며, 《에덴의 용: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로 퓰리처상(논픽션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12월 말부터 KBS에서 다큐멘터리 《Cosmos: A Personal Voyage》를 매주 목요일 밤에 방영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중학생이었는지 고등학생이었는지(처음 방영할 때부터 봤는지 나중에 재방송을 봤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여간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보면서 우주라는 환상적인 주제와 다양한 흥미로운 내용들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과 그때의 멋진 칼 세이건의 모습과 해설 장면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 다큐는 60여 개국 5억여 명이 시청하였다고 하며 ‘에미상’과 ‘피버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다큐와 책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서문에서 쓰고 있듯이,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후 (우주인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바이킹 탐사선의 화성 탐사 프로젝트가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해 정부 예산 확보에도 애로를 겪고 있던 1976년경의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제작하였다고 한다.
물론 엄청난 대성공이었고 칼 세이건도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당시 우리 세대들에게 우주와 천문학은 엄청난 탐구심을 자극하는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왔었다. 이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우주 프로젝트가 계속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마침 최근에 최신 사진들과 자료들을 업데이트한 컬러 양장본이 나와 그 책의 사진들을 위주로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고 흥미로웠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앞으로 이 글에서 책의 페이지는 특별히 ‘기존본’이라고 표시하지 않는 한 ‘컬러 양장본’을 기준으로 한다).
컬러 양장본은 컬러 사진이 많아 우주의 멋진 사진들을 즐기기에 좋기는 한데 좀 크고 흰색 두꺼운 용지를 사용하고 있어 백과사전을 보는 느낌이고 독서를 하기에는 기존 책이 훨씬 편하고 가독성도 좋은 것 같다.
제1장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앎은 한정되어 있지만 무지에는 끝이 없다. 지성에 관한 한 우리는 설명이 불가능한, 끝없는 무지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 섬을 조금씩이라도 넓혀 나가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 - 토마스 헉슬리, 1887년
칼 세이건은 먼저 코스모스가 얼마나 광활한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 안에서 얼마나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고대부터 인간이 코스모스를 이해하려고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우리가 바로 이 바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하게 품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광속에 대해 설명한다.
"빛은 1초에 약 18만 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8분이면 온다. 빛은 1년이면(1광년) 10조 킬로미터, 약 6조 마일을 간다."
그리고 코스모스의 크기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코스모스의 어느 한 구석을 무작위로 찍는다고 했을 때 그곳이 운 좋게 행성 바로 위나 근처일 확률은 10의 33 제곱분의 1이다."
"행성이나 별이나 은하들은 대부분 은하단이라는 집단을 이루며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코스모스의 암흑 속을 끝없이 떠다닌다. 지구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 우리가 우주의 중간쯤으로 알고 있는 머나먼 저곳이 성운들의 세상이란 말이다."
“은하는 기체와 티끌과 별로 이루어져 있다. 수십억 개에 이르는 별들이 무더기로 모여 은하를 이룬다. 별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태양일 수 있다."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10의 11 제곱) 개 있고 각각의 은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모든 은하를 다 합치면 별의 수는 10의 22 제곱 개나 된다. 게다가 각 은하에는 적어도 별의 수만큼의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칼 세이건은 먼 우주에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다가가는 상황을 설정하며 코스모스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코스모스 항해는 지구의 천문학자들이 ’국부 은하군‘(Local Group of galaxies)이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지름이 몇 백만 광년 정도이고 10~20개의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다(1,000억 개의 은하 중 10~20개 정도이니 얼마나 작은 일부이고 주변인지).
은하수 은하
그중 하나가 지구에서 ‘200만 광년’ 떨어진 ‘M(메시에)31’이라는 ‘안드로메다 은하(Andromeda Galaxy, 지구에서는 '안드로메다자리'에서 관측되는데 거대한 바람개비 모양이고 작은 위성 운하를 둘 거느리고 있다)이고, 그 너머로 그와 비슷한 모양의 나선 은하가 나선 팔을 2억 5000만 년마다 한 번씩 돌리는 바로 우리 ‘은하수 은하(Milky Way Galaxy)’이다.
우리 '은하수 은하'에는 별들이 4000억 개 정도 있는데, 그중에는 별들의 집단들도 있고(태양 1만 개 또는 지구 1조 개나 들어갈 수 있는 크기도 있다), 크기는 작은 마을만 하지만 그 밀도는 납의 100조 배나 되는 것도 있다. 태양처럼 홀몸인 별도 있지만 동반성과 함께하는 별이 더 많다. 별들은 주로 두 별이 서로 상대방 주위를 도는 하나의 쌍성계를 이룬다(대부분 태양과 목성 정도의 거리).
초신성(Supernova) 같이 저 혼자 내는 빛이 은하 전체가 내는 빛과 맞먹을 만큼 밝은 천체가 있는가 하면, 블랙홀과 같이 겨우 몇 킬로미터만 떨어져도 보이지는 않는 어두운 별이 있다. 우아하고 장중하게 자전하는 별이 있는 반면, 팽이같이 지나치게 빨리 돌다가 제 형체마저 찌부러뜨린 별도 있다.
푸른색의 별은 뜨거운 젊은 별이고, 노란색의 별은 평범한 중년기의 별이며, 붉은 별은 나이가 들어 죽어 가는 별이고, 작고 하얀 별이나 검은 별은 아예 죽음의 문턱에 이른 별이다.
항성계(Stellar System, 우리 태양계도 그중 하나)의 경우 별 셋으로 이루어진 항성계에서 시작하여 수백만 개의 구성원을 뽐내는 거대한 구상성단(globular cluster)까지 천차만별의 항성계들이 은하에 있다.
태양계 행성들
이제 우리는 지구에서 ‘1광년’ 떨어진 지구의 뒷마당에 이르렀다. 이제 태양계의 행성들에게로 다가가 보자.
명왕성(Pluto)은 메탄 얼음으로 덮여 있는 행성으로 '카론'이라는 대형 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2006년 8월 24일, 국제천문연맹은 새로 발견된 '에리스' 행성과 더불어 명왕성이 태양 주위를 돌고 구형인 천체지만 공전 구역 안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지나친 타원형)는 이유로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제외하고 왜행성(Dwarf Planet) 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반해 해왕성(Neptune), 천황성(Uranus), 태양계의 보석인 토성(Saturn) 그리고 목성(Jupiter)은 거대한 기체 덩어리들이다. 이 행성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얼어붙은 위성들을 주르르 거느리고 있다.
목성을 지나 따뜻한 ‘내행성계’로 들어가면 암석지대를 만나는데 붉은 화성(Mars)에서는 화산이 솟아오르고 깊은 협곡이 입을 쩍쩍 벌리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래 폭풍이 행성 전체를 휘감는다.
이 모든 행성들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와 헬륨 기체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용광로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용광로가 태양계를 두루 비추는 빛의 원천인 것이다.
드디어 행성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대한 탐험은 바로 여기, 지구에서 시작될 것이다. 인류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100만 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거둬들이고 축적해 놓은 지혜로 우주 탐사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여기 지구이다. 이제 인류는 자신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감히 그 기나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것이다.
에라토스테네스
지구가 ‘조그마한 세계’라는 인식은 현대인들이 기원전 3세기라고 부르는 시절에 당시의 거대 도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는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책임지고 있는 도서관장인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가 살고 있었다.
그는 파피루스 책에서 ‘남쪽 변방인 시에네(Syene, 현 이집트의 아스완) 지방에서는 6월 21일 정오에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그때 깊은 우물 속 수면 위로 태양이 비춰 보인다’(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있다는 뜻이었다)고 씌어 있는 것을 읽는다.
에라토스테네스는 6월 21일 정오에 자신이 살던 알렉산드리아에 막대를 수직으로 꽂아 실험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그림자가 생긴다’였다. 그 결과를 토대로 그는 지구의 표면이 곡면이라는 것을 유추하였고(아래 그림 참조), 그림자 길이의 차이로 따져 보니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는 지구 표면을 따라 각도가 7도 정도 떨어져 있음을 계산하였다(360도 기준 50분의 1).
그리고 사람을 시켜 보폭으로 시에네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대략 800킬로미터임을 확인하고 따라서 지구의 둘레가 그 50배인 4만 킬로미터 정도라는 것을 계산해내었다(실제는 40,075km이다. 2,200년 전에 단지 막대기, 눈, 발, 머리 만으로 이 정도로 정확하게 계산하다니!!!).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용감하고 대담한 선원들이 여러 번 지구 대항해 시도를 했지만 마젤란이 나타날 때까지 어느 누구도 지구를 일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만들어진 지구의(地球儀, 지구본)는 탐험이 잘 된 지중해 지역은 기본적으로 정확했지만 거기에서 벗어날수록 부정확했는데, 1세기의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n)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에라토스테네스는 대서양의 넓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인도까지 바다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살기 적합한 땅이 온대 지방에 한두 개 정도 더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만약 (세상의 저편에) 누군가가 산다면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니, 우리는 그곳을 또 다른 세계로 보아야 마땅하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칼 세이건은 기원전 300년경부터 약 600년 동안 인류를 우주의 바다로 이끈 지적 모험을 잉태하고 양육한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지금은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고, 오늘날에는 당시 별관에 불과했던 세라피움(Serapeum)이라는 축축하고 잊혀진 지하실만 남아 있다. 이곳은 본래 세라피스 신에게 받쳐진 신전이었는데 후대에 지식에 봉헌된 성전으로 바뀐 셈이다.
당시 도서관 소속 학자들은 코스모스 전체를 연구하였는데, 코스모스(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카오스(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여기서 활동하던 학자들 중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에라토스테네스’ 외에도 다음과 같은 당시의 최고의 석학들이 있었다.
- 별자리의 지도를 작성하고 별의 밝기를 추정한 ‘히파르코스’
- 기하학의 ‘유클리드’
- 언어학의 ‘트라키아의 디오니시우스’
- 생리학자였던 ‘헤로필로스’
- 톱니바퀴 열차와 증기 기관을 발명하고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를 저술한 ‘헤론’
- 원추곡선에 관해 연구한‘아폴로니우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전 최고의 천재적인 공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
-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우스’ 등이 있었다고 한다.
- 이 중에는 위대한 여성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히파티아’도 있었다(폭도들이 대도서관을 불 태울 때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도서관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 책이 50만여 권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중 에라토스테네스의 친구였던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기원전 310년경 출생 추정)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모래를 헤아리는 사람》에 의하면, 아리스타르코스의 책에서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다. 이 책은 소실되었고 코페르니쿠스에 이르러 이 사실을 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또한 당시 바빌론의 사제인 베로소스(Berosos)가 쓴 3권짜리 세계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천지 창조에서 대홍수까지 다루는 제1권에서 그 기간을 구약성서의 연대기보다 100 여배나 긴 43만 2000년으로 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베로소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빌로니아를 통치하던 시기(기원전 330~323년) 또는 그 이전에 태어났으며, 가장 이른 연대는 기원전 340년으로 추정됩니다. 현재는 사라진 고대 바빌로니아 기록과 문헌을 이용하여 기원전 290~278년경에 마케도니아/셀레우코스 왕 안티오쿠스 1세 소테르의 후원으로, 바빌로니아카(Babyloniaca, 바빌로니아사)를 3권으로 출판했습니다. 그의 원작은 분실되었지만 서기 4세기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카이세리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글에서 일부 인용문으로 단편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제1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약 150억~200억 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최근에 알려진 가장 정확한 나이는 137억 년이라고 한다)."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지능이 높은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나와서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환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