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묵자, 자유문고, 2007 증보판, 한국

by Aner병문

어느 나라는 신의 이름을 빌어 제 땅은 강철의 돔으로 덮어 씌운 채 보복성 폭격을 계속하고 어느 나라는 민주주의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국민을 지켜야할 총칼로 오히려 제 땅에서 피를 흘린다, 유사 이래로, 아니, 선사 이전에도 인간들은 필요 이상의 골육상쟁을 벌여왔다. 구약에 적힌 최초의 살인, 최초의 분쟁ㅡ카인과 아벨의 싸움은 바로 이러한 피의 비극을 알리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끔찍한 폭력의 시대에 나는, 쟈니 애플씨드(Johnny Appleseed, 본명 쟌 채프먼 John chapman, 1774~1845,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군인과 카우보이, 인디언들에게까지 사과묘목을 나눠주며 평화와 자연보호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마냥 훨씬 그보다 앞선 시대에 반전을 위해 싸워온 협사 중의 협사를 알고 있다. 성은 묵, 이름은 적, 생몰연도는커녕 국적조차도 정확치 않으며 남긴 글들 또한 진시황의 손길을 피할 수 없어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으나 춘추전국시대에 교육과 사회 운동에 헌신했을뿐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무공 훈련과 병법 창안, 무기 개발에도 힘써 폭력이 있는 곳이라면 어데든 앞장서 손수 서민들을 보호했기에 당대의 인기는 맹자보다도 대단했다고 한다.



본디 그 스스로도 기술자이며 농민을 기반으로 하는 유가보다 상공업자들을 더 우선시했던 이인만큼 그의 글은 담백하고 간결하고 웅혼하고 정확하다. 힘은 아래로 떨어져 강제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마치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떠올리게 하는데, 중력의 개념과 함께 계급의 지배력까지 함께 꿰는 묵자의 통찰력이 엿보인다. 일부 실전된 그의 병법에서는 성문의 두께까지 정확한 수치로 재어 전하듯, 그의 사상 또한 스스로 경험하여 판단한 결과가 주를 이룬다. 배우지 않고 세상을 판단하려 함은,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원판에 서서 돌면서 천지사방을 헤아리려는 것과 같다 하였고, 어느 점쟁이가 북쪽은 흉사가 있으니 북으로 가려는 묵자를 말리자, 그는 과학적으로 근거를 들어 이를 물리친다. 묵자의 경험론적, 귀납적 판단력은 특히 예악을 중시했던 유가와 크게 부딪혀 공맹자, 정자(?), 고자(??) 등과 논쟁을 벌였던 기록 또한 남아 있다. (노자 보면 노자에 깨지고, 묵자 보면 묵자에게 깨지는 불쌍한 공부자 선생..ㅜㅜ춘추 전국의 전투력 측정기..ㅜㅜ)



당대 최고의 무기 개발자였던 공수반(현대 도교에서 공수거자 등으로 추앙받는 기술자들의 신이기도 하다.) 과의 일전은 지금도 마블 영화마냥 사내의 마음을 뒤흔드는 호협과 의기가 가득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화는 따로 있다. 한 떼의 젊은이들이 묵자를 흠모하여 그의 궁술을 전수해주기를 청하지만, 남자라면 마땅히 먼저 공부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한 뒤 무공을 익혀야 한다고 그들에게 먼저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세상에 의를 행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부터 의를 행해야한다고 부르짖었던 묵자의 글을, 올해 다섯 달 걸려 다 읽었다!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