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다시 한번 ITF 833일차 ㅡ 스승의 날을 기리며

by Aner병문

그 유명한 삼국지의 관우 운장은, 팔십두근의 청룡도를 기대어두고 오로지 춘추를 즐겨읽었다는데, 좌씨전의 한 대목을 알지 못하여 초야에 묻혀 후학을 기르던 왕년의 장군 노식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다. 단 한 대목을 깨우쳤을 뿐인데도 관우는 크게 감복하여 노식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모습을 또한 눈여겨본 이가 돗자리 짜며 큰 뜻을 숨기던 유비 현덕이었다. 이문열 삼국지에서는, 저자에서 의형제 장비와 관우가 서로 창칼을 맞대며 자웅을 겨루는데 이때 두 사람보다 무공이 처지는 유비는 노식을 들먹이며 관우를 만류한다. 한 대목을 익혀도 스승은 스승이라던 선비께서는 이 유비를 잊으셨습니까?



한 대목을 익혔어도 그럴진대 하물며 칠 년을 사사한 태권도겠는가.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형편따라 모일만큼 모였다. 곧 비가 온다하여 찌던 밤에 도복이 젖도록 훈련하고, 요즘 휴일도 없이 일하여, 총각 시절 나처럼 늦은 밤에 이른 아침에 도장 나와 혼자 훈련량을 채우는 밥 잘하는 유진이는 업장에서 퇴근하며 혼자서 수랏상을 차려왔다. 버섯과 무 넣은 갈비찜에, 청경채무침에, 구절판에, 곱게 다진 떡갈비에, 두툼한 해물파전에, 칼칼한 조개국에, 보쌈에 샐러드에, 음식을 다 세도 모자라 은박지에 뭘 뭉쳐 숨기길래 그건 뭐냐 했더니 아, 이건 내 도시락, 점심 먹다 남은거, 별거 아냐 했지만 유부를 잘게 찢어 마요네즈에 살짝 무친 뒤 청양고추 썰어 만 김밥 역시 절품이었다. 총무 누님이 만두대장인 나를 위해 사다주신 소은이 머리통만한 왕만두까지 얹어 밤새 술을 마시면서 사범님도 우리들도, 태권도는 할수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그렇게 마음을 다졌다. 아무리 닳고 부서져 비만 와도 앓아 무너지는 나약한 몸을 지녔어도, 욕망과 유혹에 휩쓸려 졸렬한 소인배의 마음일지언정, 기껏해야 도장 밖에서는 몇 권의 책과 말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에 지나지 않는 나조차도, 사범님 모시며 겨우 태권도의 시작에 들었다. 몸과 마음이 다하는 날까지 소심한 단련이나마 계속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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