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새벽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건 일년에 몇 번 뿐이다. 나는 잠을 자지 않으면 고장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 취침 시간은 밤 10시 쯤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우연히 라디오에서 하는 영화음악실을 듣게 된 후로 12시까지 자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렇게 라디오의 세계에 빠져 들어 영화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곡은 녹음을 해가며 나만의 밤을 만들어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영화음악을 들으며 과연 어떤 영화일까 상상을 해가며 사춘기 소녀시절을 흠뻑 취해 지냈다. 그 당시 내가 볼 수 있는 수준의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나 <빠삐용> 같은 것이었다. 무언가 탈출을 꿈꾸는 그들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로마의 휴일>의 아이스크림이나 <빠삐용>의 나비 같은 것이 어떤 의미일까 너무 궁금해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다행히 EBS에서 하는 세계의 명화에 그 영화들이 자주 상영되곤 했다. 라디오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게 했고 티브이에서 하는 영화는 이 부조리한 나의 학창시절에 또다른 새상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영화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대학시절 나는 운좋게 영화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부조리한 현실은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외계인을 만나 소통하고 싶었고 탈출하고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지하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음울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 터널을 통과하여 빛을 볼 무렵 라디오 프로에서 일일 디제이를 제안받았다. 내가 매일 듣던 라디오에 내가 출연을 하다니 이 또한 꿈만 같았다. 그것도 새벽 세시에 방송이 되는 거라 듣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열심히 원고를 쓰고 그에 맞는 노래를 선곡했다. 내가 크게 기뻐한 이유는 라디오 전파가 우주로 쏘아올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만의 SETI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SETI 프로젝트는 외계인과의 통신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다. 유의미한 신호는 없었다고 하지만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피디님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녹음을 하고 방송되는 날 새벽에 내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오는 걸 들었다. 나의 호흡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였다. 어떤 외계인이 내 목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아주 조용하고 깜깜한 새벽 나의 아픈 이야기에 누군가 공감을 보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라디오를 들을때는 정신이 혼미한데 잠이 안올때이다. 책을 읽기에는 졸립고 새벽이라 퉁탕거리며 돌아다닐 수 없을때 나는 라디오를 듣는다. 가끔 디제이에게 문자를 보내면 반응을 해줄때가 너무 신기하다. 새벽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디제이들도 대강 아는 것 같다. 이제는 영화음악실이 새벽 두시 넘어 하기에 자주 듣지는 못한다. 그리고 나의 열정도 중학교 시절만 못하다. 그때는 왜 그리 세상에 대해 궁금해 하고 환상에 젖었는지. 그 당시의 호기심과 열정이 다시 온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살아보니 어떤가. 다시 젊어지고 싶은가. 아니면 지금이 좋은가. 나는 지금에 한표를 던진다. 너무 시니컬한가? 아마도 탈출해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로마의 휴일> 속 공주처럼 언젠가는 다시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쳤나보다. 지금 생각하니 그 영화도 꽤나 현실적이다. 그런 건 있다. 단 하루라도 영화같은 일탈이 내게 주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공주도 결혼하면 그때는 공주가 아니지. ㅋ 이젠 그런 생각 뿐. 추석 연휴에 현실적이 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을 탓하며 새벽에 대해 제대로 된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새벽. 그 새벽의 공기에 취해보고 싶다.